300호

〈삽화=전병준〉
〈삽화=전병준〉

● 할아버지는 말했다. “사람은 하늘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 조심하듯이 일꾼들을 조심해야 한다. 성인은 ‘밥이 하늘[食而天]’이라고 말씀하셨다. 밥을 성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먹지 않아야 한다. 밥 만드는 일은 성스러운 행위다. 사람은 밥값을 하고 살아야 한다. 농부는 농사 잘 짓는 일이 밥값이고, 어부는 고기 잘 잡는 일이 밥값이고, 머슴은 주인집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밥값이고, 의사는 병 고치는 일이 밥값이고,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밥값이고, 효도하는 것이 밥값이고, 임금은 백성을 가없게 여기고 잘 다스리는 것이 밥값이고, 벼슬아치는 못사는 백성을 살피고 도와주고 청렴하게 사는 것이 밥값이다.”

● 부엌의 살강 위에는 검은 옻칠을 한 개다리소반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옆에는 투박한 분청사기 밥그릇 두 개, 국그릇 두 개, 반찬용 접시 넷, 숟가락 둘과 젓가락 네 짝이 있었다. 평소에 가족들이 사용하지 않았고, 가끔 부리는 놉(일꾼)을 위해서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개다리소반에 대해 어머니가 말했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부엌일을 익히기 시작한 어머니는 그것에 대해 궁금했지만 아무에게도 물을 수 없었는데, 어느 늦은 봄날 아침에야 그 궁금증이 풀렸다. 식구들이 모두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구중중한 해진 옷에 머리가 쑥대같이 부스스한 젊은 남자가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고, 지팡이를 짚어가며, 떠오르는 해를 등진 채 사립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허름한 바가지 하나를 왼손에 들고 있었다. 안방 툇마루에서 밥을 먹고 있던 시할머니가 그를 보자마자 “어서 오시게. 얼마나 시장하신가.”하고는 부엌의 어머니(손자며느리)에게 말했다.

“새악아, 저 양반 사랑방 툇마루로 모시고 밥상 차려 드려라. 살강 위에 있는 소반에다가 깨끗하게 차려라. 소반 옆에 있는 밥그릇이랑 국그릇이랑 숟가락이랑, 그것들 내려서 차려 드려라.” 어머니가 그 남자를 사랑방 툇마루로 모시자, 그는 지팡이를 기둥에 기대놓고 툇마루에 올라앉았다. 어머니는 부엌 살강 위의 소반, 밥그릇 국그릇 따위를 이용해서 밥상을 차렸다. 밥이 부족했으므로 어머니는 자기가 먹던 밥을 퍼서 그릇을 채웠다. 밥상을 들어다가 사랑방 툇마루에 놓아주자, 그 남자는 달게 빠른 속도로 먹었다. 국 한 모금, 밥알 한 개, 김치나 깍두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 치웠다. 이날 아침 어머니는 누룽지를 긁어서 배를 채워야 했다. 어머니가 숭늉을 떠서 들고 가자, 그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절름거리며 사립을 나가고 있었다. 개다리소반을 들고 부엌으로 오자 시할머니가 물었다. “그 양반 숭늉이랑 다 마시고 가셨냐?”

어머니가 “숭늉 들고 가니께 벌써 사립으로 나가셔 버렸어요.”하고 대답하자 시할머니가 밥상을 물리고 있는 텁석부리 머슴을 향해 “만석아, 싸게 가서 그 양반 모시고 오너라.”하고 말했다. 만석이 골목길로 달려나가서 구중중한 행색의 남자를 데리고 왔다. 그는 어리둥절한 채 만석의 뒤를 따라 왔다. 시할머니가 그를 향해 “이 사람아, 밥을 먹었으면 숭늉을 마시고 가야지.”하고 어머니에게 “어서 숭늉 가져다드려라.”하고 명했다. 숭늉을 마시고 난 그는 시할머니를 향해 몇 번이고 굽실굽실 절을 하고 사립 밖으로 나갔다. 시할머니가 그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밥 얻어먹을 데 없으면 언제든지 오소.”하고 짠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고 나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소반하고 밥그릇 국그릇 깨끗하게 씻어 살강 위에 다시 올려놓아라.”

시할머니는 구걸하러 온 거지들을 거지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들이 올 때면 언제나,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바가지에 밥을 담아주지 못하게 하고, 살강 위의 소반과 밥그릇과 국그릇을 사용하게 했다.

〈삽화=전병준〉
〈삽화=전병준〉

● 한 절에 노약해진 고명한 스님이 날마다 남새밭에서 김을 매고 벌레를 잡았다. 그 모습을 안타까워 한 젊은 시자들이 호미와 괭이와 삽을 감춰버렸는데, 일을 하지 못한 노스님은 그날 낮에 공양을 하지 않고 굶었다. 오후에 시자가 감추었던 연장을 모두 내드리자 밭일을 한 다음 저녁 공양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인간은 자기 몸무게로 세상을 누르고 있는 만큼 밥값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노스님은 생각한 것이고 일 속에 깨달음의 삶이 있다고 생각한 것일 터이다.

그 노스님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성한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므로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세상에는 진자리가 있고 마른자리가 있다. 사람들은 진자리에서 하는 일을 피하려 하고 마른자리에서 하는 일을 선호한다. 진자리에서 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밥값을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 밥은 성스러우면서도 포도청처럼 무서운 것이다.

● 나는 이십 대 초반에 오직 밥을 얻어먹기 위해 한 암자에서 6개월 가까이 기숙한 적이 있다. 서라벌예술대학 시절, 자취할 때 양식이 떨어지면 같은 과에 다니던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서울 돈암동 한 암자로 가서 먹고 잤다. 암자의 보살은 나를 친아들처럼 사랑해주었고, 스님은 어려워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스님이 어려워하는 리포트를 작성해주곤 하는 것으로 밥값을 했었다.

스님은 어린 시절 머리를 깎은 ‘올깎기’였고, 그 절의 주지였고, 음식을 만드는 보살님은 스님의 어머니이거나 이모쯤 되는 듯했다.

자다 새벽에 깨면 스님이 보이지 않았고, 대웅전에서는 염불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나는 느직하게 일어나 스님과 겸상해서 여느 여염집에서 먹는 밥상을 받곤 했었다. 고기가 없을 뿐, 두부·야채·된장국이 올라오는 정갈하고 소박한 밥상이었다.

나는 스님 몰래 불교 공부를 하기 시작했었다. 무엇보다 스님에게서 풍겨오는 순수한 스님 냄새가 내 몸에 스미고 배어들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끼마다 얻어먹는 밥과 더불어 피와 살이 되고 있었다.

● 스님들이 대중생활을 하면서 사용하는 발우(나무로 된 공양 밥그릇)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먼 훗날이었다.

밥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너의 손은 부처님 손인데 왜 다리는 나귀다리냐?’라는 화두를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21년 전, 바닷가 토굴에 똬리를 튼 첫날 밤에 득량만 바다의 도깨비 한 놈이 찾아와서 던진 화두이다.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도깨비가 제안을 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히고 젊은 한 생을 새로이 산 파우스트처럼, 너도 그런 삶을 살아 보아라. 너의 영혼을 우리 도깨비나라 은행에 저당 잡히고, 너희 산술로서는 계산할 수 없는 많은 돈을 빚내다가, 네 토굴 마당에서 내다보이는 모든 하늘과 바다와 산과 섬과 들판과 거기에 내리는 빛과 어둠과 비와 바람과 안개와 거기에 서식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생명을 다 사서 주인 노릇을 하고 살아라. 물론 네가 사버린 그 영토의 사용료는 그들에게 영원히 자유로이 외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 좋다!”하고 내가 말을 하자, 도깨비가 말했다.

“단 하나, 조건이 있다. 네가 아직까지 읽어내지 못한 책들을 읽는 일, 너의 시와 소설 쓰는 일에 아주 확실하게 미쳐버린다는 조건이다.”

그 도깨비와 나의 거래는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는데,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고 그 화두를 깜빡 잊어버렸다.

그런데 한 스님이 그 화두를 떠오르게 해주었다. 천일기도를 마친 다음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한 스님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 스님은 그 현장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렇듯 가슴 아파했을까? 중생이 아파하므로 보살인 그도 아팠던 것일까?

● 이 세상의 모든 밥과 권력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쪽 얼굴은 잔인한 나귀 다리 같은 얼굴이고, 다른 한쪽은 부처님 미소 같은 얼굴이다.

모든 국가의 얼굴은 복지사회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나귀다리적인 얼굴은 지저분하고 괴죄죄하게 보이는 것들을 쓸어내고 화려한 것들을 건설하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후미진 곳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집을 가진 자들의 편을 들어준다. 셋집을 살던 사람들은 거기에서 밀려나 몇 푼의 보상비를 받아 변두리로 밀려나 지하실이나 반지하방으로 들어간다. 권리금을 내고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한 푼의 권리금도 챙기지 못한다.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아야겠다고 버티던 사람들을 국가가 강제로 몰아냈고, 그 과정에서 사상자들이 생겼다. 국가는 그들을 무시하고 외면한 채 복지정책이란 것을 편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꽃과 나귀다리’라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내 손은 왜 부처님손이고 다리는 왜 나귀다리인가?’

이 화두에 대해 고명한 스님이 읊은 게송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허허로운 눈벌판에서 발우 하나 들고 서 있느냐?”

● 어느 이른 봄날, 장흥 천관사 주지 지행 스님이 찾아와서 “선생님 제 토굴에서 봄을 잡수시지 않으실랍니까?”하고 선문답 같은 말을 던졌다. 경관이 수려하고 장엄한 천관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많은 불사를 했다면서, 봄의 산나물 밥상을 전문으로 차리는 보살이 점심 준비를 할 거라고. 그리하여 천관사에 가서 봄을 먹고, 시 한 편을 썼다.

천관사에 가서 봄을 먹었다
보랏빛 오랑캐 꽃을 먹고
분홍빛 꽃잔디 꽃을 먹고
황금색 배추꽃을 먹었다.
질경이도 두릅도 먹고 칡 순도 먹었다.
꾀꼬리 울음소리 휘파람새의 울음소리
비둘기 소리 장끼 소리도 먹었다.
삼층 석탑도 먹고, 범종도 먹고, 대웅전 안의
부처님도 관세음보살님도 먹었다.
나는 거대한 한 송이 꽃이 되어 가슴 두근거리며
해우소에 가서 가랑이를 벌리고
봄의 교향시를 휘갈겼다.

- 자작시 ‘봄을 먹었다’ 전문

한승원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소설 원효〉·〈초의〉·〈다산〉·〈산돌 키우기〉 등 다수의 소설을 쓴 이 시대의 대표 소설가다. 고향 율산마을에서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한 작품을 써오고 있다. 현대문학상·한국문학작가상·이상문학상·대한민국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한국해양문학상·한국불교문학상·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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