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 미술 불교회화 새 지평
“세상 위안 주는 작품 만들고 싶어”

장소영 작가가 곱게 간 돌가루를 섞은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고 있다. 
장소영 작가가 곱게 간 돌가루를 섞은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고 있다. 

곱게 간 돌가루와 섞인 물감이 하얀 캔버스를 물들인다. 거침없이 뿌려진 색색의 물감. 규칙 없이 캔버스 위에 흩뿌려진 듯하지만 어느새 조화를 이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드리핑(Dripping)’과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을 통해 작품을 구현하는 이 추상화는 바로 ‘한국의 잭슨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이라 불리는 장소영(34)의 작품이다.

국내에서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카루젤 드 루브르 아트쇼핑(Carrousel du Louvre Art Shopping)’에서 최연소 한국인 대표 초청작가로 선정됐던 그녀는 항상 그림을 통해 대중에게 삶의 희로애락을 전하고 싶어 한다. 그녀를 만나 길진 않지만, 굴곡졌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장가 대신해준 불경소리

목탁소리, 풍경소리는 그녀의 자장가였다. 아버지는 충남 아산 어느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사찰의 주지 스님이었다. 어머니는 몸이 유약해 다섯 번의 유산 끝에 딸을 낳았다. 그렇게 태어난 귀한 외동딸이 장소영이다. 젖먹이 시절, 자장가보다 불경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자랐다. 걸음마를 시작하고부터는 신도들과 함께 앉아 아버지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어린 장소영에게 불교는 생활이었다.

법회 때나 주말에는 불공을 올리는 신도나 등산객이 자주 찾아왔지만, 평소 산중 사찰은 인적이 드물어 고요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어린 장소영은 또래와 어울리기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온종일 혼자 놀다가 심심해지면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방에 앉아 붓글씨를 쓰거나 달마도를 그렸다. 아버지 곁에 앉아 붓을 잡고 먹으로 화선지 위에 그린 그림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귀한 놀이 중 하나였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법당에서 관불의식을 하는 장소영과 어머니.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법당에서 관불의식을 하는 장소영과 어머니.

어머니는 또래가 없어 매일같이 혼자 지내는 딸을 안쓰러워했다. 그래서 장소영이 7살 되던 1995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한 해라도 빨리 친구들과 교류하며 뛰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혼자 지내는 게 익숙했던 탓인지 장소영은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간 탓에 동기들에 비해 학습속도가 느렸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수가 적다 보니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더욱이 아버지가 스님이라는 사실은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어머니는 학교 적응에 힘겨워하는 딸이 안타까워 도울 방법을 고민했지만,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사찰이란 특수한 환경이 자녀 교육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초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시점에 외동딸을 천안의 외할머니댁으로 보냈다. 아버지의 반대가 거셌지만, 딸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길 바라는 어머니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천안에 온 장소영은 다행히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중학교를 다닐 무렵, 부모님이 이혼해 잠시 성장통을 겪기도 했지만 점차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공부에도 흥미를 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잠깐의 방황을 겪게됐다. 입학 후 첫 시험에서 미술을 포함한 몇 과목에서 전교 10등 안에 드는 성적을 받았다. 그런데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했던 탓인지, 몇몇 선생님이 ‘부정행위를 한 게 아니냐?’며 의심했다. 해명을 해보았지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홀로 교무실에 앉아 재시험을 치렀다. 재시험 후 오해는 풀렸지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교무실을 나서는 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어요. 저를 믿어주지 않는 선생님들이 미웠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점이 더욱 마음 아팠어요. 마치 제 자신이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처럼 느껴졌어요. 그때 자퇴를 결심하고 한동안 무단결석을 했어요. 담임 선생님께서 매일같이 학교로 돌아오라고 설득을 했어요. 결국 한 달여 만에 학교로 돌아가게 됐지요.”

그 사건 후 장소영은 한층 성숙해졌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화가를 꿈꿨지만,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은 미대 진학을 망설이게 했다. 그녀는 화가와 길은 비슷하지만, 졸업 후 바로 취업할 수 있을만한 직업을 찾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Make-up artist)’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단순히 화장을 하는 작업이 아닌 ‘사람의 얼굴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림이 사람의 내면을 표현한다면, 메이크업은 외면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녀는 실무기술을 쌓을 수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원서를 제출했고, 2007년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뷰티예술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곧장 일을 시작했다.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의 메이크업을 맡았고, 여러 유명 연예인도 만났다. 경력이 쌓이면서 수입이 늘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지만, 여전히 정통 미술에 대한 갈증은 남아있었다. 날이 갈수록 미술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았다. 고민 끝에 2016년 9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미술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색채 마케팅·크로키·서양미술사 등 미술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을 배우는 과정은 즐거웠다. 인물화·정물화 등을 그리며 여러 회화기법을 배우며 실력을 길렀다. 그 과정 속에서 조금 더 동적(動的)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여러 고민 끝에 찾은 방법이 ‘드리핑’과 ‘액션 페인팅’이다.

‘드리핑’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흘리거나 붓거나 튕겨서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이다. 액션 페인팅은 작품의 이미지보다 ‘그린다’는 행위에 방점을 둔 기법이다. 두 방법 모두 정해진 방식이나 규격에서 벗어나 화가가 자유롭게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장소영은 두 기법을 활용해 첫 작품 ‘댄싱 플라워(Dancing Flower, 2017作)’를 완성했다.

“첫 작품을 제작하기 전, 고민이 많았어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아스팔트가 덮혀진 길에 어린 새싹 하나가 삐죽 솟아올라온 걸 봤어요.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마치 제게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내가 피어날 수 있었듯이, 당신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길가에 핀 새싹에게 위로받아 만든 작품이 ‘댄싱 플라워’에요.”

 작품 Untitled(2021 作)와 Dancing Flower.
 작품 Untitled(2021 作)와 Dancing Flower.

추상화 기반한 현대적 불교회화

이 작품을 제작한 뒤 장소영은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의 방향을 보다 명확히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댄싱 플라워’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무렵, 장소영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원에서 크로키 수업을 맡고 있던 교수가 그녀의 그림을 보고 ‘선이 곱다.’며 칭찬하면서 다른 작품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그동안 그린 작품들을 교수에게 보여줬는데 “개인전을 열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 당황스러웠지만, 교수와 학우들의 응원에 힘입어 2017년 12월 첫 개인전 ‘哀(애)’를 개최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이었다. 미술평론가들은 호평을 아끼지 않았고, 전시가 끝난 뒤에는 국내외 주요 아트페어와 갤러리의 초청을 받았다. 특히 개인전을 방문했던 한 갤러리스트(Gallerist)는 해외에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첫 개인전은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장소영은 본격적으로 작가활동을 하기 위해 메이크업 일을 그만두고 창작활동에 몰두했다. 2018년 10월에 두 번째 개인전 ‘감정의 물결’을 개최했고, 12월에는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 뷰테 두 마르탱 칼르메(Galerie beaute du matin calme)’의 초청을 받아 ‘The end and the beginning’ 전을 개최하는 등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까지 전시회를 세 차례 열었다.

졸업 후에는 2019년 10월 갤러리 이즈에서 ‘심안여해(心安如海)’ 전을, 2021년 4월 갤러리 라메르에서 ‘인연(因緣)’ 전을 개최했다. 또 미국 LA아트쇼(2020년)에 참여했고, 2021년에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카루젤 드 루브르 아트쇼핑’에 최연소 한국인 대표 초청작가로 선정돼 참가하기도 했다.

장소영은 작품을 제작할 때 항상 마음속으로 ‘빌 공(空)’자를 되뇐다. 작품 안에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제작을 하는 동안 평온한 마음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작업과정은 그녀의 작품 철학인 ‘공’을 깨달아가는 수행이기도 하다. 작품 구상을 할 때는 경전이나 불교 서적이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법화경〉을 읽으면, 복잡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감을 받아 작품을 구상하면 곧장 제작에 들어갔다.

전시 주제에 따라 작품에 담는 메시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 네 번째 개인전인 ‘인연’ 전에 전시한 작품에는 불교의 ‘연기법’을 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불교회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오방색(五方色)을 활용했다. 그녀는 부처님과 보살·나한·신중 등이 그려진 전통적인 불교회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상적인 개념의 현대적 불교회화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개최한 전시에 조계종포교원장 범해 스님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직관적인 필법은 선(禪)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작가의 정신적 체험의 경지를 직관적인 시각의 세계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불교정신은 현대미술과도 연계되어 있다.”고 축사를 보내주기도 했다.

동국대학교 일산불교병원 정심행 완화의료센터 개소식에서 기증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일산불교병원 정심행 완화의료센터 개소식에서 기증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작은 희망’ 전하고파

장소영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퍼트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등학교 때 국제로터리 회원이었던 새아버지를 따라갔던 봉사활동이 계기가 됐다. 그 후 ‘나눔’과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무재칠시(無材七施)’를 마음에 새기며 작은 선행부터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기술·경험 등을 적극 활용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2019년에는 ‘드림릴레이 강연쇼(이하 드릴쇼)’를 진행했다. ‘드릴쇼’는 꿈과 희망이 필요한 청소년과 청년, 그리고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른을 위한 무료토크쇼다. 이명수 국민의힘 국회의원·이고운 아나운서·최창환 장수산업회장 등이 출연했다.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강연 내용을 녹화·편집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제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 누군가 곁에서 다독여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경험한 적이 있어요. 이때 제가 받았던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 드릴쇼를 기획했어요. ‘누구에게나 인생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겨울에는 동백이 피고, 봄에는 개나리가 피듯이 ‘누구나 자신의 계절에 탐스럽게 피어나는 꽃이 될 수 있다.’는 응원을 하고 싶었지요.”

정기적인 헌혈로 2017년 적십자헌혈유공장 은장을 받는 등 크고 작은 선행에 앞장섰던 장소영. 그녀는 장애예술인을 위한 강연, 한센인 합동결혼식 메이크업 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프리카 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2018)·빛된소리글로벌예술협회(2021)의 홍보대사에 위촉됐으며, (사)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 문화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그녀는 2019년 6월 동국대학교 일산불교병원에 불교호스피스센터인 정심행 완화의료센터가 개소했을 때 ‘심안여해-마음이여, 바다같이 평안하라’ 등 작품 2점과 전시 수익금 중 일부를 환우를 위해 쾌척했다.

장소영의 꿈은 소외계층 학생들을 위한 예술학교 설립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함이다. 이 꿈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노력하게 하는 채찍이자 원동력이기도 하다.

간혹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이 들거나, 작품 구상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면 작업실 인근에 위치한 진관사에 찾아간다. 조용히 앉아 참선하며 나직한 불경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속 번뇌가 서서히 가라앉고, 한층 맑아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림으로 세상에 희로애락을 전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장소영 화가.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봄바람이 되길 바라며 묵묵히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밝은 등불이 되어 세상을 희망의 빛으로 물들여가길 기대한다.

장소영은 “세상 위안 주는 작품 만들고 싶다.”
장소영은 “세상 위안 주는 작품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장소영 작가는 채색한 배경에 물감을 뿌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구현한다. 
장소영 작가는 채색한 배경에 물감을 뿌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구현한다. 
 네 번째 ‘인연’ 전의 전시장 풍경
 네 번째 ‘인연’ 전의 전시장 풍경
전시회에서 제작과정과 각 작품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전시회에서 제작과정과 각 작품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