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구법 여행기 속에
중생의 성불 과정 담아내

명(明)대의 오승은(吳承恩, 1500-1582)이 지은 소설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하나이며 대표적인 신마소설(神魔小說)이다. 현장법사가 천축(天竺, 현재의 인도)에 가서불경을 구해온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야기다. 오승은이 모두 지은 것은 아니고, 당(唐)대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송(宋)대의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 등 민간에 전해 오던 각종 설화·전설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허균(許筠)·홍만종(洪萬宗)·이규경(李圭景) 등 많은 문인이 탐독하고 비평했다. 한글로도 번역돼 널리 읽혔다.

문학의 예술성과 불교

예술은 사람의 감성에 작용하기에 그 마음을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감동을 바탕으로 건강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문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예술의 여러 영역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오고 큰 영향을 끼치는 예술형태는 문학입니다. 시·수필·소설·희곡 등 언어 문자를 매개로 미(美)를 창조하는 문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정의되기도 하는 인간의 예술 활동에 근본이 되고, 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 속에 세계로 퍼져나간 불교는 여러 형태로 문학에 반영됐고, 가공되었습니다. 그렇게 문학 속에 구현된 불교는 다시 불교의 역사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주었지요. 그런데 문학은 예술의 한 형태이고, 예술은 미(美)를 창조하는 분야이기에 불교가 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 속에 갈무리되고 표현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움 속에 표현된 불교는 그 아름다움을 통해 강렬하게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지만, 그러한 미적인 감동 속에 정확히 불교의 어떤 측면이 갈무리되고 표현되었는가는 알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술성 속에 표현된 내용을 분석하고 쪼갠다면 정말 재미없는 결과가 나오겠지요.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재미’라는 것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힘이고, 문학의 예술성 또한 ‘재미’라는 측면을 통해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것에 삭막한 분석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재미’를 죽여버리는 참혹한 결과를 낳겠지요.

반면 단지 분석을 위한 분석이 아니라, 그 예술성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하고,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을 더 크게 느끼기 위한 앎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학 속에 불교의 어떤 가르침과 정신이 갈무리되었고 표현되었는가를 알게 되면 문학의 예술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감동 또한 크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본다면,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작품에 표현된 불교가 반드시 불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작가의 불교 이해가 깊지 않으면 문학성·예술성은 높이 평가받을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불교 정신은 천박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문학평론의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불교적 측면에서의 평가는 낮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글은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문학 속의 불교에 대해 올바르고 깊이 있는 이해를 해보려는 시도입니다. 문학적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진 평론을 넘어서 문학 속에 표현된 불교의 심층을 제대로 드러내고자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의 예술성 속에 혹시 불교가 왜곡돼 있지는 않은가?’하는 관점을 적용하면서, 조금은 엄하게 불교를 중심으로 한 평론까지 나가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 작업의 큰 원칙은 ‘재미’입니다. 재미를 통해 감동을 전달하는 문학예술의 장점을 없애가면서 불교적인 요소를 탐색한다는 것은 본말의 전도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대상이 된 문학작품을 읽으면 더 재미있고, 그래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써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부담 없지만, 재미있는 방식으로 써보려 합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겠지요. 아무튼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 재미있는 문학작품의 불교적 측면을 탐색하고자 합니다. 힘닿는 데까지요.

〈서유기〉의 한 장면이 중국 북경 이화원(頤和園) 벽에 그려져 있다.
〈서유기〉의 한 장면이 중국 북경 이화원(頤和園) 벽에 그려져 있다.

인격 형상화한 세 주인공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오승은이 지은 〈서유기(西遊記)〉가 첫 번째 작품입니다. 〈서유기〉를 모르시는 분 없으시죠? 불자가 아니어도 모두 아실 것입니다. 혹 〈서유기〉를 모르더라도 손오공·저팔계·사오정은 아실 겁니다. 그만큼 만화·애니메이션·영화 등으로 많이 소개된 작품입니다. 그 친숙한 우리의 친구들이 주인공인 〈서유기〉를 불교적인 눈으로 한번 뜯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유기〉는 〈삼국지〉·〈수호지〉·〈금병매〉와 함께 중국 사대기서로 꼽힙니다. 그런데 〈서유기〉는 불교적 관점에서 제대로 뜯어보고 읽으면 재미가 몇 배로 올라가는 소설입니다. 반대로 그 속에 갈무리된 불교적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정말 수박 겉핥기가 되는 책이지요. 그래서 이번 연재의 첫 소재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불교에 대해 조금 지식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하!”하고 무릎을 칠만한 대목, 즉 〈서유기〉가 정말로 불교를 알면 몇배나 재미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몇 대목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 진행을 위해 먼저 손오공·저팔계·사오정은 여러 가지 인격 중 어떤 측면을 요괴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중 손오공은 우리 마음을 대표하는 존재로, 어리석음과 지혜라는 두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음이요, 깨달으면 지혜인 것이지요. 손오공은 원숭이 왕이 되어 영화를 누리다가, 삶이 영원하지 않으며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는 길을 찾아 나서지요. 수없이 먼 길을 헤매다가 드디어 수보리 조사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납니다.(10대 제자 중 수보리존자가 아닙니다. 신선술을 가르쳐주는 신선입니다.)

그런데 수보리 조사가 사는 곳이 어디일까요? ‘영대방촌산(靈臺方寸山)’, ‘사월삼성동(斜月三星洞)’이라고 하네요. ‘신령스런 누대, 사방 한치의 산’, 그 속에 있는 ‘기운 달에 삼형제 별 뜬 골짜기’. 이 장소 자체가 손오공이 무슨 공부를 하는가를 시사합니다. 이 지명은 모두 ‘마음’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표현입니다. ‘신령스런 누대’라는 말은 ‘마음이 신령하여 모든 일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장 먼저 이 말이 등장한 기록은 〈장자(莊子)〉 ‘경상초’ 편입니다. 그리고 ‘사방 한치’라는 말도 ‘우리 마음이 우리 가슴의 좁은 곳에 머무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으로 ‘기운 달에 삼형제 별 뜬 골짜기’라는 말은 ‘마음 심(心)’자를 의미합니다. ‘마음 심’자를 보세요. 점 세 개는 삼형제 별과 같고, 비스듬하게 굽어서 삐친 획은 바로 기운 달의 모습이죠? 이런 것을 글자를 깨뜨린다[破字]고 합니다. 자, 이 정도 되면 무릎 한번 치셔야죠? ‘아하, 수보리 조사라는 스승이 계시는 곳은 마음의 골짜기구나. 결국 마음을 닦았다는 것을 그렇게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로구나!’하구요.

그래도 여기까지는 꼭 불교에 한정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불교에서 주로 많이 쓰는 표현이지만 불교의 전유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조금 더 나가보면 정말 확실하게 〈서유기〉가 어떤 책인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와 세 주인공의 도상.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와 세 주인공의 도상.

불교 소재로 풍부한 상상력 담아

손오공이 수보리 조사한테 도술을 배운 후 여차저차하다가 결국 천상세계를 어지럽히는 큰 싸움을 벌입니다. “옥황상제는 꼭 누가 하라는 법 있느냐?”고 큰소리치며 힘을 뽐내지요. 그러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맞닥뜨리고, 재주 내기를 하게 됩니다. 손오공은 장기인 근두운(筋斗雲)을 타고 10만 8,000리를 휘익 날아갔는데 이상한 다섯 봉우리 산이 보여서, 가운데 봉우리에 원숭이 방식으로 표식을 남기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 가운뎃손가락에 원숭이가 오줌을 눈 표식이 남아있네요.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겠지요? 조그만 재주를 믿고 오만에 빠져, 큰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 부처님이라는 위대한 존재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요.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반성의 시간이 500년. 그리고 현장삼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경전을 가지러 가는 길에 수행원이 되지요. 그런데 경전을 가지러 가는 길목에 첫 번째로 등장한 장애, 바로 여섯 도둑이 등장합니다. 여섯 도둑의 이름과 이 대목의 제목을 보면 다시 무릎을 치게 됩니다.

여섯 도둑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안간희(眼看喜)·이청노(耳聽怒)·비후애(鼻嗅愛)·설상사(舌嘗思)·신본우(身本憂)·의견욕(意見欲)’. 뜻을 풀어보면 첫 번째 도둑 안간희는 ‘눈 안’·‘볼 간’·‘기쁠 희’구요, 두 번째 도둑 이청노는 ‘귀 이’·‘들을 청’·‘성낼 노’, 그 다음은 ‘코 비’·‘냄새맡을 후’·‘사랑 애’입니다. 이쯤 되면 아시겠죠? 이 도둑들 이름의 첫 글자를 모으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인간의 여섯 감각기관이 됩니다. 가운데 글자는 그 감각기관의 역할과 활동을 나타내고, 마지막 글자는 기뻐하고 성내고 하는 인간의 감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름을 풀어서 말한다면 이렇게 되겠네요.

눈은 보고 기뻐한다.
귀는 듣고 성낸다.
코는 냄새맡고 사랑한다.
혀는 맛보고 생각한다.
몸은 본디 근심한다.
뜻은 보고 욕심낸다.

이렇게 여섯 도둑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느끼고, 이 여섯 도둑이 나오는 대목의 제목을 보고 나면 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제목이 무엇이냐고요? ‘마음 원숭이가 바른길로 돌아오니, 여섯 도둑이 자취가 없네![心猿歸正 六賊無蹤]’입니다. 이 정도 되면 불교적 상식이 있는 분들은 모르실 수가 없죠.

‘손오공은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로구나! 그리고 손오공이 첫 번째 만나서 물리치는 도둑이 바로 이 여섯이라는 것은 그냥 도둑 물리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섯 감각기관의 유혹을 이겨내며, 감정의 파도를 다스리는 것이 수행의 출발점이라는 말이로구나!’하구요.

자, 이렇게 출발한 여행이라면 종착점은 어디일까요? 당연히 수행의 궁극목적, 바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서유기〉는 현장법사와 손오공 등 일행이 올바른 수행의 과보를 받아 부처가 되고 아라한이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서하의 벽화 중 ‘당승취경도(唐僧取经图)’. 원숭이 형상을 하고 있는데, 후대 손오공의 모태로 여겨진다. 
서하의 벽화 중 ‘당승취경도(唐僧取经图)’. 원숭이 형상을 하고 있는데, 후대 손오공의 모태로 여겨진다. 

이렇게 〈서유기〉의 큰 구도를 턱 잡고 나면, 〈서유기〉 전체가 다르게 보입니다. 〈서유기〉를 ‘부처를 이루기 위한 수행기’라는 관점으로 보게 됩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요괴와 마왕들, 그것은 수행과정에서 부딪히는 장애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실제로 인도로 가는 여정 중에 부딪히는 지리적인 험난함과 요괴를 묶어놓은 대목도 있습니다. 그렇게 여행기와 수행기를 절묘하게 짜 맞추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표현으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책, 바로 〈서유기〉입니다.

그렇다고 〈서유기〉가 온전히 불교 수행기인 것은 아닙니다. 불교뿐이 아니라 도교적인 요소가 매우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소재 자체가 현장법사가 경전을 구해오는 것이기에 불교가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도교와 신선 사상, 그밖에 민간신앙적인 요소가 절묘하게 배합됩니다. 그것이 〈서유기〉의 재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지요.

〈서유기〉는 워낙 방대한 작품이기에, 이번 회에서는 〈서유기〉의 특징과 큰 얼개만을 우선 소개합니다. 다음 회에 서유기 가운데서도 가장 큰 감동을 주는 대목들을 몇군데 짚어가며 음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불교적 관점에서 좀 불만스러운 대목들도 한두 군데 짚어 보고자 합니다. 무릎을 치며 감탄하는 것으로 끝내지는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상적인 불교의 눈을 적용한 비판도 곁들이겠다는 것이지요.

첫회에 어려운 약속을 남발하는 것 같아 갑자기 두려워지네요. 그래도 일단 큰소리부터 쳐놓고, 그 큰소리의 반이라도 실현하려 애써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저에 대한 다짐 삼아 약속드리면서 이번 이야기를 마칩니다.

성태용
전 건국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한학자 양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故임창순 선생에게 한학을 배웠다. EBS에서 ‘주역과 21세기’라는 제목으로 강의했으며, 한국철학회 회장과 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주역과 21세기〉·〈어른의 서유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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