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재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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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석가모니 부처님이 21세기에 살아계신다면, 어떤 학문 분야에 가장 깊은 관심을 보이실까? 어떤 학문의 이론이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실까? 아마도 심리학(心理學)이 아닐까 싶다.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원인과 치유 방법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와 심리학의 관계

불교는 동양의 심리학이라고 할 만큼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방대하고 심오한 이론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불교는 인간을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심리치유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2,500년의 장구한 역사를 지닌 불교에 비해, 심리학은 19세기 말에 철학으로부터 독립한 젊은 학문이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사회과학의 핵심 분야로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과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동양의 종교인 불교와 서양의 학문인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행복과 불행의 근본적 원인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외부 세계의 변화보다 마음의 변화를 통해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 불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 중에서 현대 과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과학은 불교의 연기설(緣起說), 즉 인연화합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의 원리를 밝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아무리 귀한 보석도 아름답게 세공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현대인, 특히 젊은 세대는 과학적 사실과 어긋나는 주장을 펼치는 종교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랜 전통을 지닌 불교도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도록 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삶은 괴로운 것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시한 가르침의 핵심은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에 담겨있다. 사성제의 첫째는 고성제(苦聖諦)로서 인간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과연 인간의 삶은 괴로운 것인가? 물론 삶에는 괴로움도 있지만 즐거움도 많지 않은가? 많은 사람이 불교의 고성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불교는 삶의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비관적 또는 염세적 종교라고 여기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존하시던 2,600년 전의 인도 사회에는 지금보다 삶의 괴로움이 훨씬 더 심했을 것이다. 굶주림·질병·계급 차별·전쟁·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2,600년 전 인도인의 평균수명은 30세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아사망률이 높아서 어린 자녀의 죽음이 매우 흔했을 것이고,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21세기의 현대사회는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공중보건·음식·환경의 개선으로 인해 현대인의 기대수명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1900년에 인간의 기대수명은 40세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2022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4세이며, 이제는 너무 오래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전히 빈부격차가 있지만, 복지제도의 개선으로 굶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즘 한국인은 먹을 것이 넘쳐나 맛집 찾기에 몰두하고 있고,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기며 살고 있다. 2,600년 전 인도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인은 육도(六道)의 천상(天上)에 해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불교는 왜 인간의 삶이 괴로움으로 가득하다고 하는가?

불교는 고성제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사회적 계층·재산·가족관계·건강·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지만, 모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세계에서 인간은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이라는 네 가지의 근본적인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간이 처해있는 실존적 상황에 대한 자각을 촉구하는 동시에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법을 제시하고 있다.

생고(生苦), 태어남의 괴로움

태어남은 축복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축복할 일이다. 어느 집이든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면 경사로 여길 뿐만 아니라 매년 생일을 기념한다. 이처럼 태어남은 기쁜 일인데, 부처님은 왜 태어남을 괴로움이라 했을까?

인간의 의식은 태아 상태에서 시작된다. 수정 후 4개월이 된 태아는 뇌가 발달하면서 희미한 의식을 갖게 되고 초보적인 감각을 경험한다. 태아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주체와 객체의 분리 의식이 없는 고요한 평온 상태를 경험하며 원초적인 일체감을 느낀다. 출생은 이러한 평온 상태의 파괴이며, 일체감의 붕괴를 의미한다.

오토 랑크(Otto Rank)나 스타니슬라브 그로프(Stanislav Grof)와 같은 심리학자에 따르면, 출생과정은 일종의 트라우마 경험이다. 어머니의 산통과 함께 자궁 수축이 시작되면서 평온 상태에 있던 태아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압도적인 위협과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 자궁 수축을 통해 태아는 자궁으로부터 무자비하게 밀려나지만 출구인 골반이 닫혀있는 상태에서 어둡고 좁은 세계에 갇히는 폐쇄공포증과 유사한 심리적 공포를 경험한다. 자궁 수축이 지속되고, 골반이 열리기까지 산도를 통과하면서 태아는 질식감 속에서 좌우로 압력을 받으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세상에 나온 태아는 탯줄의 절단과 함께 어머니와 육체적으로 분리되면서 스스로 호흡해야 하고, 배고픔을 비롯한 고통을 느끼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한다. 인간은 출생과정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출생 트라우마는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이후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그로프에 따르면, 인간은 LSD와 같은 환각제 경험이나 임사체험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출생 트라우마를 재경험한다. 태어남은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운명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노고(老苦), 늙음의 괴로움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세계는 자체의 원리에 따라 무심하게 운행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세계는 모든 것을 무질서와 혼돈으로 몰아감으로써 인간의 생명과 행복을 위협하는 거대한 원리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 물리학 용어로 말하면, 엔트로피(Entropy) 증대 법칙이 그것이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엔트로피 증대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엔트로피 증대를 막기 위해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 즉 애써야 하는 노고(努苦)가 필요하다. 매 순간 숨을 쉬면서 산소를 공급해야 하고, 매끼 음식을 섭취해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며, 매일 소화된 찌꺼기는 배설해야 한다. 삶에는 쾌락과 고통이 혼합되어 있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일은 힘들게 애써야 하는 괴로운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몸은 늙어간다. 중년기에 접어들면 몸과 마음의 기능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나고 신체적 기능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인지적 기능이 저하되고 사회적 역할도 감소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들과 이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육체적 노화가 진행되면서 젊은 육체와 이별하게 한다. 아름답고 싱싱했던 자신의 신체상(Body image)과 이별해야 한다. 감각-운동 기능도 저하되어 물건을 잘 떨어뜨리고 넘어질 뿐만 아니라 기억력이나 기민성과 같은 심리적 기능도 서서히 감퇴한다. 은퇴라는 중요한 사건을 겪으면서 오랜 세월 일해온 직장과 이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도 이별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부모와도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한다.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에서 사라져간다. 이처럼 늙어간다는 것은 소중한 것들과의 이별이며, 상실 과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즉 ‘노화 불안(Aging anxiety)’을 경험한다.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노화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모가 늙어가는 것, 노년기에 불행해지는 것, 삶의 중요한 것들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이러한 노화 불안의 밑바닥에는 죽음 불안이 존재한다. 늙어가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몸과 마음이 시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병고(病苦), 병듦의 괴로움

삶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질병이다.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장육부를 비롯한 수많은 신체 기관과 조직들이 원활하게 기능해야 한다. 어느 한 곳에 손상이 생기면 통증이 유발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증상과 기능 저하가 나타난다. 그래서 인간의 몸에는 다양한 질병이 생겨나고 그로 인한 괴로움이 존재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듯이, 전염병은 인간을 괴롭히는 주된 질병이다. 세상에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오염된 음식, 독성을 지닌 벌레와 동물, 자연재해, 전쟁과 같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요인이 존재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늙음은 병듦을 통해서 죽음으로 연결된다. 질병은 통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주된 원인이다. 202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가장 흔한 사망원인은 암이다. 전체 사망자의 26%가 암으로 사망했다. 다음으로 흔한 사망원인은 심장질환·폐렴·뇌혈관 질환·자살·당뇨병·알츠하이머 치매·간 질환·폐혈증·고혈압성 질환 순으로 나타났다.

사고(死苦), 죽음의 괴로움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큰 고통은 죽음이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은 육체의 기능 정지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식의 소멸을 의미한다. 죽음의 괴로움은 죽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육체적·심리적·사회적 고통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기 존재의 소멸에 대한 공포를 포함한다. 캐나다 심리학자인 폴 웡(Paul Wong)은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 열차를 타고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승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았더니, 이 열차는 브레이크가 파열된 상태로 거대한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고 한다. 열차의 속도를 늦추거나 궤도를 바꾸기 위해 승객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도망칠 수 있는 출구가 없어서 승객은 아무도 열차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한다. 당신은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은 죽음의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는 고속열차를 타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화택(火宅), 즉 불난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탁월한 지적 능력으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재앙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신이 언젠가 죽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 즉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쾌락이 결국에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괴로움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생로병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수행의 길로 나아간 것은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위함이었다. 종교적 천재들은 인간의 실존적 운명에 대한 통찰력과 결단력이 탁월한 사람들이다. 지금은 젊고 아름다우며 부유하고 명예로운 지위에 있더라도 그 모든 부귀영화가 결국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통찰하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불타는 집처럼 절박한 것으로 여기고 괴로움의 불을 끄는 방법을 찾기 위해 출가를 결단했을 것이다.

고성제를 깨닫는 것은 진정으로 철이 드는 것이다. 삶의 즐거움에 빠져 그러한 즐거움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여기는 철부지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고성제의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기면, 집착과 탐욕이 줄어든다. 집착과 탐욕이 줄어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또한 고성제가 가슴 깊이 스며들면, 타인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이 생겨난다. 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멍에를 고통스럽게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삶이 근본적으로 괴로움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팔정도(八正道)의 첫째인 바른 인식, 정견(正見)이다.

권석만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임상심리학 전공)를 받았으며, 심리적 장애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 저서로 〈현대 이상심리학〉·〈현대 심리치료와 상담 이론〉·〈인간 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긍정심리학: 행복의 과학적 탐구〉·〈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사랑의 심리학: 인간이 경험하는 세 종류의 사랑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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