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칼럼(300)

천태종총무원장 무원 스님.

불기 2567(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힘차게 솟아올랐다. 새해에는 누구나 복덕(福德)의 힘을 입어 행복하고 보람 있는 생활을 꾸려가길 바란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우리 사회는 절망과 슬픔으로 점철된 힘든 시간이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쟁의 참상을 겪어야 했고, 이로 인한 여파로 세계 경제도 크게 위축됐다. 국내에서는 핼러윈데이를 즐기려는 인파가 이태원에 몰리면서 300명이 넘는 압사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부처님은 세상이 중생소연(衆生所緣)의 이치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셨다. 여럿의 인연이 계합(契合)할 때 비로소 만물이 큰 힘을 얻고, 군생(群生)이 축복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생각이 바르면 정도(正道)가 솟아나고 생각이 삿되면 그르침이 뒤따른다.

인류는 여전히 자연과의 공존 관계를 무시하며 개발지상주의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저마다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워 평화와 공생의 법칙을 훼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욕심들로 인해 올해 세계 경제는 매우 어두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경제가 작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예고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시 가계부채 비중이 세계 1위인 점을 들어 금융시장 최대 리스크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출가자의 신분인 소납이 새해 들어 이렇듯 암울한 상황을 언급하는 이유는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종교는 국가와 국민, 사회와 중생, 자연과 인간의 제 분야와 함께 어울려야 하는 책무를 갖는다. 그래야 중생들에게 희망이 되고 빛이 될 수 있다.

소납은 지난해 총무원장에 취임하면서 “환경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시기에 상월원각대조사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가 먼저 변화에 앞장서 나가자.”고 강조한 바 있다. 종단 산하 법인인 나누며하나되기를 통해 10월 임진각 등지에서 ‘통일문화제’를 개최한 것이나 종단 내 각 단체를 내세워 생명존중과 기후위기 환경 세미나 등을 실시한 것이 그 실천방안들이다.

실제로 종교는 사회변화와 맞물려 능동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의 구태한 방식과 사고로는 현대인의 의지나 희망이 될 수 없다. 소납이 ‘찾아가는 불교’, ‘찾아가는 복지’를 내세우는 것도 이러한 생각의 반영이다. 종단 산하 20여 시설과 주요 사찰들이 이러한 소납의 의지를 잘 살펴 주시고, 아울러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어려운 이웃이나 경제적 약자들을 찾아가 직접 대면복지를 펼쳐 주신 데 대해 지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종교는 중생들의 염원을 잘 헤아려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고통에서 행복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잘 선도(先導)해야 한다. 종교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인류의 행복을 선도하지 못한다면 도리어 사회의 걱정을 사게 된다.

올해는 평화와 경제, 환경문제의 해결 등에 있어서 우리 국민이 희망의 새날을 열 것이냐? 아니면 추락의 고통에 빠질 것이냐? 하는 기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때 불교계의 역할과 기여가 중요하다. 국민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며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고 있음에도 불사(佛事)에만 치중하고 있는 처신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염원이 무엇인지,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스스로 찾아가 길을 제시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동사섭(同事攝)의 정신을 실천할 때 계묘년의 희망찬 날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불자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