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부여군, 10일 발굴조사 성과 공개

01 부여 군수리사지 중문터와 남회랑터 전경(북→남).  〈사진=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01 부여 군수리사지 중문터와 남회랑터 전경(북→남). 〈사진=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충남 부여 소재 백제 사비시기 사찰인 군수리사지에서 기존 발굴조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중문터와 회랑터가 확인돼, 백제사찰 복원 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부여 군수리사지를 공동발굴조사 중인 문화재청(청장 최응천), 부여군(군수 박정현), 한국전통문화대학교(총장 강경환)는 12월 10일 오전 발굴조사 현장(부여읍 군수리 22-1번지 일원)에서 새롭게 확인한 중문터와 남회랑터 기단석 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세 기관은 이번 조사를 통해 목탑터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25m 떨어진 지점에서 남동쪽 모서리에 놓인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를 발견, 중문터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처음으로 파악했다. 중문의 기단 규모는 동서 길이 약 14m로 추정한다.

또 남회랑터에서도 남쪽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 일부를 확인했는데, 중문보다 좁은 기단을 갖춘 회랑(回廊)이 중문 동쪽으로 약 10m 이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중문과 남회랑의 서쪽 부분은 사찰이 폐사된 후 축조된 백제시대 도로(남-북 방향)로 인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 발굴조사에서는 군수리사지 목탑과 금당의 기단은 벽돌 또는 기와를 세우거나 쌓아서 만든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중문과 남회랑의 기단은 돌로 만든 석축기단인 점이 특징이다. 중문의 기단석은 ‘ㄱ’자 형태로 잘 다듬은 모서리 지대석(地臺石)으로, 그 윗면에 턱이 있다. 이곳에 우주석(隅柱石)을 끼워 놓고 그 위에 납작한 갑석(甲石)을 얹은 가구식(架構式) 기단 구조로 추정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확인된 중문터와 남회랑터가 백제 사비도성 내부에 위치한 사찰인 군수리사지의 중심 사역 범위와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고 있다. 또한 중문의 가구식 기단은 부여지역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것으로, 백제 사찰의 중문 복원을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은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 정비와 관리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며, 군수리사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지원해 백제 사비기 사찰문화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군수리사지는 일제강점기(1935~1936년) 발굴조사 당시 목탑터·금당터·강당터 등이 확인됐고, 금동제 불상과 기와, 전돌 등이 출토되어 백제시대 사찰로 확인된 바 있다. 이후 2005~2007년, 2011년에는 정확한 가람배치와 규모를 확인하고자 금당지·목탑지·동편일대를 조사했다. 그러나 군수리사지의 중문터는 일제강점기에 목탑터 남쪽에서 발견된 기와 무더기 인근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만 했을 뿐, 그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했었다.

부여 군수리사지 중문 기단석 근경(북→남).  〈사진=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부여 군수리사지 중문 기단석 근경(북→남). 〈사진=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부여 군수리사지 원경(남→북).  〈사진=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부여 군수리사지 원경(남→북). 〈사진=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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