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극락·지옥 공존
긍정적 관계가 행복의 원천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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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을 평온하게 살다 가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삶에는 고통과 갈등이 많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불화와 반목, 학교와 직장에서 좌절과 실패, 인간관계의 갈등과 배신으로 삶이 고통스럽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행복도가 낮은 대표적인 국가다. 대한민국은 놀라운 경제발전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 4만 불로 향하는 명실공히 선진국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이고 이혼율도 최상위권이다. 국민의 전반적 행복도는 하위권이며 특히 청소년의 행복도는 최하위다. 한국인의 행복도가 낮은 이유는 무얼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있다.

인간관계와 행복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솔로 천국, 커플 지옥’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연애든 결혼이든 이성과 함께 지내는 일이 힘들고 괴롭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좌절감이 담겨있는 슬픈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부부 갈등으로 인해 신혼이든 황혼이든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결혼을 포기하는 비혼주의자가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괴롭거나 불편해 1인 가구로 독립하는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괴로울 때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낫다. 그러나 혼자 사는 것도 쉽지 않다. 함께 사는 것은 갈등 때문에 괴롭지만, 혼자 사는 것은 외로움 때문에 힘들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과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가장 힘든 것은 몸이 아플 때다.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고통을 견디는 것은 정말 괴롭고 서러운 일이다. ‘솔로 천국’을 외치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독거노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인간관계다. 여러 국가에서 시행된 방대한 조사자료를 분석한 긍정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에 따르면, 개인의 행복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요인은 긍정적인 인간관계였다. 하버드대학생을 포함해 미국인 700여 명의 삶을 70년 이상 추적한 장기 종단(縱斷)연구에서도 행복도가 높은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좋은 인간관계였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 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보다 소수의 사람과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

좋은 인간관계는 고난과 역경의 시기에 그 소중함이 빛을 발한다. 인생이 성공적으로 잘 풀려나가고 자신감에 넘칠 때는 인간관계의 가치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좌절과 실패로 인해 힘들고 괴로울 때 사랑하는 사람의 위로와 지지는 큰 힘이 된다. 북아일랜드 민요 ‘You Raise Me Up’의 노랫말처럼, 비참하게 넘어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위로는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

최고의 수행처는 인간관계

인생의 아이러니 중 하나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가장 큰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자녀가 그러하고 배우자가 그러하다. 인간관계는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인 동시에 불행의 가장 큰 근원이기도 하다.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내담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호소하는 문제도 인간관계다. 특히 배우자·연인·자녀·부모와 같이 가까운 사람과의 인간관계 갈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불교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추구한다.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함을 얻으려면 인간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부분의 고통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갈등과 불화가 격렬해지면 삼악도(三惡道)에 빠지게 된다.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축생과 아귀가 되어 고통스러운 지옥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부분의 정신장애는 인간관계의 갈등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관계에는 극락과 지옥이 함께 존재한다. 잘못된 인간관계는 불행의 근원이 되지만, 잘하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 된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말처럼, 가장 큰 행복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누구나 고독한 존재다. 외롭고 고단한 삶의 가장 큰 위로는 바로 사랑이다.

수행은 깊은 산속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수행처는 가깝게 지내는 사람과의 인간관계다. 특히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깊이 살펴보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과 정신건강의 바탕은 가까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에 있다.

친밀한 인간관계의 위험성

인간관계는 가까울수록 위험하다. 고슴도치의 사랑처럼, 가깝게 밀착하다 보면 서로의 가시에 찔릴 수 있다. “친한 친구도 같이 살면 원수가 되어 헤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함께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친밀하다는 것은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의존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상호의존 관계에서는 공동의 활동을 위해 선택하거나 결정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의견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견 차이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 갈등이 발생한다. 건설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두 사람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견 차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불만과 갈등이 생긴다. 특히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파괴적인 언행을 하면 삼악도에 빠져들게 된다.

또한 친밀해지면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진다. 우리는 친밀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기대를 한다. 상대방이 그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한다. 배우자나 자녀에게 불평하고 간섭하고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많을수록 불만을 많이 느끼고 상대방에 대한 통제를 많이 하게 된다. 특히 상대방에게 강압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요구하거나 이러한 요구에 상대방이 강력하게 반발하면 인간관계에 먹구름이 몰려오게 된다.

친밀한 사람일수록 서로 많은 것을 주고받는다. 애정과 돌봄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돈·선물·정보·서비스와 같은 다양한 자원을 주고받는다. 인간은 어떤 관계에서든 주고받는 것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계산한다. 이러한 교환이 만족스러울 때는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 그러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적다고 생각할 때 상대방에 대한 불만이 싹튼다. 이처럼 친밀한 관계일수록 갈등의 위험성이 높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주범은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 해결방식이다.

인간관계의 인과업보

인간관계만큼 뿌린 대로 거두는 것도 없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인과업보가 즉시 나타난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대로 돌아온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가는 말이 거칠면 오는 말도 거칠다. 인간관계에서는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의 과보(果報)가 즉시 돌아온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악업(惡業)의 힘이 선업(善業)보다 훨씬 세다는 점이다. 심리학의 연구에 의하면, 한 마디 나쁜 말이 상대방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파괴력은 한 마디 좋은 말에 의한 긍정적인 영향력보다 최소한 5배 이상 강하다. 예컨대 한 마디의 비난으로 상하게 만든 배우자의 마음을 회복시키려면 다섯 마디 이상의 칭찬과 아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원한은 돌 위에 새기고 은혜는 물 위에 새긴다.”는 말이 있듯이, 부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보다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부른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업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악업을 쌓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미국의 저명한 부부치료사인 존 가트만(John Gottman)은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의 대화 패턴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불행한 부부는 갈등이 많은 것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부정적이었다. 불행한 부부는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행복한 부부보다 무시·비난·경멸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언행을 더 많이 나타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무시·비난·경멸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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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수행

인간관계는 마음 수행을 하기에 적합한 가장 좋은 도량이다. 인간관계는 욕망·감정·생각이 뒤얽혀 번뇌를 만들어내는 마음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탐진치 삼독(貪瞋痴 三毒)의 작용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번뇌의 현장이 바로 인간관계다. 누구나 가까운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부정적인 언행을 나타내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분노하기 때문이다. 실망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면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인간관계 수행은 이러한 마음을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강렬한 불쾌 감정을 느낄 때는 바로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때다. 이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성깔대로 행동하면 삼악도에 빠지게 된다. 인간관계 수행의 핵심은 자신의 성깔을 조절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본능적으로 분노가 올라오고 상대방에게 비난과 공격을 하고 싶다. 지옥문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관계 갈등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모든 갈등은 연기(緣起)의 원리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생겨남으로 인해 저것이 생겨나고, 저것이 사라짐으로 인해 이것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거친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의 분노가 생겨나고, 상대방의 거친 언행으로 인해 나의 분노가 생겨나는 것이다.

서로 고통을 주고받는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선순환을 시작하는 열쇠는 내 손안에 있다. 내가 먼저 선업을 지어야 한다. 내가 부드러운 언행을 하면 상대방은 분노가 가라앉게 된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수용하고, 용서하고, 존중하는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극락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즐거움을 느끼고, 혼자 있을 때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솔로 천국, 커플 천국’에서 사는 것이다.

권석만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적 장애의 원인을 밝히고 치유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 이상심리학〉·〈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인간 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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