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공양 공덕으로 왕비돼
파세나디 왕 불법으로 이끌어

〈삽화=필몽〉
〈삽화=필몽〉

코살라국의 수도 사밧티에 화환(花環)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말리카(Mallika)’였습니다. 열여섯 소녀는 영리하고 예의 바르고 우아했습니다.

맑고 화창한 어느 날, 말리카는 공원의 꽃밭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정원 여기저기를 즐겁게 돌아다니고 있을 때, 말리카는 한무리의 스님들이 정원 문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 중 한 스님의 장엄한 걸음걸이와 아름다운 미소에 매료되었습니다. 말리카는 즉시 다가가 자신의 점심을 그 스님의 발우에 넣었습니다. 그녀는 기쁨으로 가득 차서 몸을 굽혀 스님께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그 스님은 바로 부처님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부처님은 시자에게 “그녀는 바로 오늘 코살라국의 왕비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스님께 올린 공양

그날 마침 파세나디(Pasenadi) 왕이 아자타삿투(Ajatasattu) 왕에게 전투에서 패한 후 인근을 지나가다가 말리카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이끌려 정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소녀의 기쁨에 찬 노래에 끌렸습니다. 즐거운 노랫소리는 그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는 즐겁게 노래하고 춤을 추는 소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명랑하고 밝은 소녀의 천진한 얼굴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낯선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왔지만, 말리카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리카는 말의 고삐를 잡고 그의 눈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눈에서 피곤함을 알아차리고 그가 말에서 내려 나무 그늘에 눕도록 도왔습니다. 말리카는 젖은 천으로 발을 닦아 주고 부드럽게 부채질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잠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난 그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녀가 누구인지, 결혼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말리카는 결혼하지 않았다고 수줍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말리카를 자신의 말에 태우고 그녀의 집으로 달렸습니다.

그렇게 파세나디 왕은 말리카를 왕비로 맞았습니다. 왕은 말리카를 사랑했고, 그녀의 지혜와 문제해결 방식과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왕은 나라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왕비와 상의하고 왕비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신하들도 아름다운 왕비를 존경했습니다. 말리카가 부처님께 보시한 공덕으로 왕비의 지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왕국 전체에 알려졌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보다 친절해졌고 보시를 더욱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외쳤습니다.

“저 분이 바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말리카 왕비입니다.”

왕비가 된 직후 말리카는 부처님을 찾아 뵙었습니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주저하면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왜 어떤 여자는 아름답고, 부유하고, 뛰어난 권능을 가질 수 있습니까? 또 어떤 여자는 아름답지만 가난하고, 권능이 없습니다. 또 어떤 여자는 추하지만 부유하고 권능을 지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생기고 가난하고 권능이 전혀 없는 여자가 있습니다. 왜 그러한 차이가 발생합니까?”

부처님은 사람들의 성격과 생활 환경은 도덕적 행위에 달려 있다고 말리카에게 설했습니다.

“아름다움은 온화하고 용서하는 본성에서 나옵니다. 부유함은 관대한 보시로 인해 발생합니다. 그리고 권력과 능력은 남을 질투하지 않고, 남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고, 항상 덕을 베푸는 데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세 가지 미덕 모두가 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말리카는 자비·보시·수희(隨喜)를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백성들에게 항상 보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모든 승려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양을 베풀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질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삼보에 귀의해 평생 충실한 제자로 남았습니다.

말리카 왕비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보시를 베풀고, 진리를 토론할 수 있도록 그녀의 개인 정원인 말리카아라마(Mallikarama)에 법당을 지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섬기고 신하를 대할 때도 자비심을 실천했습니다. 파세나디왕이 바사바 캇티야(Vasabha Khattiya)라는 여인을 두 번째 아내로 데려왔을 때, 말리카는 그녀를 환영하고 질투하지 않고 여동생처럼 대했습니다. 바사바 캇티야가 아들을 낳고, 말리카가 딸을 낳았을 때도 바사바를 시기하지 않고 바사바의 아들 출산을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파세나디 왕의 꿈

파세나디 왕과 말리카 왕비 간에 작은 다툼과 오해가 생긴 적도 있습니다. 파세나디 왕은 종종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말리카가 왕비가 된 후 오만해지고 지위와 재산 때문에 너무나 많이 변했다.”

그들의 문제가 부처님께 전해졌을 때, 부처님은 두 사람을 불러 전생에 그들이 겪었던 사건과 그들의 사랑 그리고 그들이 헤어진 후 겪은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결혼 생활에서의 부부애와 화합의 축복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말리카는 기쁨으로 부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말리카는 부처님께 귀의한 후 남편인 파세나디 왕을 부처님의 가르침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느 날 밤, 왕은 연속하여 열여섯 번이나 혼란스러운 꿈을 꾸었습니다. 왕은 악몽에서 깨어난 후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벌벌 떨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궁궐에 있던 바라문 사제들이 아침 안부를 물었을 때 왕은 악몽과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러한 두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지시했습니다. 사제들은 즉시 악령을 달래기 위해 여러 생명을 희생하는 제의(祭儀)를 올려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왕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브라만 사제들은 제의 준비과정에서 얻게 될 보상에 기뻐하며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그들은 제단을 쌓고 많은 동물을 기둥에 묶어 죽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나아가 더 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요구했고, 네 명을 붙잡아 기둥에 묶어 두고 제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리카 왕비는 이러한 사실을 듣고 파세나디 왕에게 큰 동물 희생제를 치르지 말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녀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생명을 해치고 다른 생명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어리석은 바라문이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왜 온 백성을 고통에 빠트려야 합니까? 동물을 죽이는 것은 윤리적 규범에도 위배됩니다. 또한 생계를 위해 가축으로 농사짓는 농부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한 중대한 죄를 짓는 제사는 윤회의 바퀴에 속박당하는 기간을 연장시킬 것입니다.”

말리카의 말을 듣고 파세나디 왕은 부처님을 찾아가 그가 겪은 악몽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안심시킨 후 나쁜 꿈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열여섯 개의 꿈은 일종의 예언으로, 통치자들의 도덕적 타락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는 점임을 경고한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왕에게 자비심 속에서 도덕을 실천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또 백성의 안녕을 위해 왕이 선행을 많이 해야 하므로, 동물을 대량으로 죽이는 것은 적절한 치료법이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에 파세나디 왕은 동물을 대량으로 살생하는 제사에 대한 모든 계획을 폐기했습니다. 자비로운 왕비의 요청에 응해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동물들에게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부처님의 헌신적 재가 신자가 되었습니다.

〈삽화=필몽〉

도솔천에 태어나

말리카는 모범적인 아내였지만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주석서에 의하면 말리카는 어떤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남편인 파세나디 왕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말리카를 비난했지만 말리카는 교묘하게 거짓말을 해 자신의 잘못을 숨겼습니다. 훗날 말리카는 속으로 이렇게 후회했습니다. ‘나는 큰 죄를 지었다. 게다가 나는 왕을 속이고 오히려 왕을 비난했다.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가!’ 그녀는 죽음의 순간 이 악행을 기억했고, 그 결과 지옥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말리카의 죽음은 갑작스러웠습니다. 파세나디 왕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있을 때 그녀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왕은 깊은 슬픔에 잠겼고, 위로받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했습니다. 말리카에 대한 파세나디 왕의 애착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아내가 죽어 행복한 상태로 있는지 확인하고자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왕은 7일 동안 매일 부처님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왕이 질문하러 올 때마다 말리카의 사후 상태에 관한 질문을 잊으라고 할 뿐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지옥에서 7일간 머물던 말리카는 8일째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왕이 이날도 부처님께 찾아와 아내 말리카의 사후 상태를 물었는데, 이번에는 부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위대한 왕이여! 말리카는 도솔천에 태어났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왕비 말리카가 도솔천에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누가 그곳에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말리카와 같은 여성은 없습니다. 그녀는 앉거나 서거나 언제나 ‘내일 나는 이것을 부처님께 공양하겠습니다. 내일 나는 부처님을 위해 이것을 할 것입니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공양을 준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말리카가 죽은 이후로 제 삶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근처 수레를 가리키며 왕에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생사의 법칙입니다. 왕의 수레는 지금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낡아 없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도 늙어 죽음을 맞습니다. 정의로운 법만이 부패하지 않습니다.”

미천한 계급에서 일국의 왕비가 된 말리카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부처님께 올린 공양이었습니다. 말리카 자신의 점심을 부처님께 공양 올릴 당시 말리카는 너무나 기쁜 마음이었고, 공양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보시한 후에도 말리카는 기뻐하며 노래했습니다. 부처님인 줄도 모르고 보시했기 때문에 말리카의 공양은 무주상(無住相)보시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장면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절대적 헌신과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는 의지였습니다.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장·불교문화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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