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받은 복지 혜택, 세상에 회향할 수 있어 행복”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는 총 7개의 노인복지시설이 있다. 이중 천태종복지재단 산하 압구정노인복지센터는 어르신들의 복지 욕구를 보다 가까이에서 듣고, 신속하게 반영하기 위해 세워진 ‘지역밀착형 소규모 노인복지센터’로 2009년 7월 개관했다. 이곳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성진(46) 관장을 만나봤다.

복지 혜택 받고 복지사 꿈꿔

김성진 관장은 경기도 군포에서 2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베트남전쟁 참전용사였지만, 고엽제 후유증으로 40년이 넘도록 고향에서 요양했다. 형편이 어려워 영세민(현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았지만, 어머니는 남편의 병원비 마련과 삼 남매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봉제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셨다.

독실한 불자였던 어머니는 고단하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부처님오신날과 백중만큼은 자녀들을 집과 가까운 천태종 서울 명락사에 데려가곤 했다. 그가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중학교 3학년 무렵이다. 그해 정부에서 지원해주던 영구임대아파트에 당첨돼 수서동으로 이사를 했다. 전학을 가게 된 그는 친구들과 떨어져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는데, 그때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수서명화종합사회복지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복지관 방과후교실·봉사활동 등의 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했고, 그를 챙겨주던 사회복지사를 잘 따랐던 그의 장래희망은 ‘사회복지사’가 됐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복지관을 다니면서 오랫동안 도움을 받았고, 복지사 선생님들이 하는 업무들이 소외이웃을 도와주고 저처럼 어려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는 것을 보고 ‘나도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집안 형편상 빨리 취업을 해 부모님께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동세무고등학교로 진학을 해 복지사의 꿈을 접게 됐죠.”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이나 경리·회계 관련 분야로 취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고, 대학에 진학하기에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시 진로를 고민했다. 그러다 어렸을 때 희망했던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001년, 조금 늦은 나이인 25살에 강원도 동해시 동해대학교(2005년 한중대학교로 변경)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입학 후 ‘해밀’이라는 자원봉사동아리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장애인·청소년·노인 등 다양한 분야의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동아리 회장이란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노인복지관이나 요양원 봉사활동을 이어 갔는데 어느 순간 이곳에서의 봉사활동 자체가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자신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어르신들을 기쁘게 했고, 그 또한 어르신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기 때문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어르신들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자격증과 노인복지레크리에이션 자격증도 취득했다.

김성진 관장이 복지센터를 방문한 어르신의 체온 측정을 도와주고 있다.
김성진 관장이 복지센터를 방문한 어르신의 체온 측정을 도와주고 있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직전에 규모가 꽤 큰 요양원에서 사회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날도 제 끼를 마음껏 발산해 기분 좋게 행사를 마쳤는데, 요양원 운영법인 관계자가 저에게 찾아오더니 일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수업을 주간에서 야간으로 변경하고, 27살에 동해시노인종합복지관에 입사해 사회복지사로서 첫발을 내디뎠죠.”

2003년부터 6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복지관을 운영하는 법인과 학연·지연 등으로 관련이 있거나, 스펙이 아주 뛰어난 직원이 아니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 분야에서 성장하기 어렵다는, 세상의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됐다. ‘복지’에 대한 ‘애정’이 ‘애증’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고, 결국 복지관을 그만두게 된다. 6개월 정도 쉬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힘들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휴식이 불편했고, 첫째 아이가 두 살이 됐을 때 직장을 관뒀던 터라 금전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집에 돈을 버는 사람이 없다 보니 전업주부였던 아내가 직장을 구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런 그를 보며 어머니는 불교방송에 천태종의 한 스님이 법문을 하는데 한번 들어보라고 권했다. 당시 방송에 나온 스님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종교가 불교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결과도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 이 법문에 힘을 얻은 그는 다시 출발하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고 사회복지 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부처님의 가피 덕분인지 2009년 강북노인종합복지관에 취업했고, 2015년 송파노인전문요양원 사무국장과 2017년 압구정노인복지센터 과장을 거쳐 같은 해 11월부터 관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어머님의 영향으로 김성진 관장도 서울 구강사금강불교대학 총무부장·서울 성룡사 청년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성룡사 은평지회장 소임을 맡아 꾸준히 신행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9년 동안 노인복지시설에서만 일한 그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강북구청장 표창(2010)·서울시장상 표창(2015)·천태종복지재단 우수시설 표창(2019)·천태종복지재단 대표이사 표창(2021)·강남구청장 표창(2022) 등을 수상했다.

2014년 시립강북노인종합복지관 복지1과장 시절 ‘Smart Dream Start 강북노리터 개소식’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2014년 시립강북노인종합복지관 복지1과장 시절 ‘Smart Dream Start 강북노리터 개소식’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직원과의 소통 가장 중요

강남구립 압구정노인복지센터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53길 5(신사동)에 위치하고 있다. 센터는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사무실·강의실·상담실·프로그램실·경로식당·하늘정원 등을 갖추고 있다. 또 지역 내 치매·중풍 및 노인성 질환을 앓는 어르신을 위한 병설 압구정데이케어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2022년 5월 기준 2,2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센터를 이용하고 있으며, 김성진 관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종사자가 어르신들이 활기차고 보다 나은 삶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김성진 관장의 업무는 다양하다. △복지센터와 데이케어 센터 운영 총괄 △직원 업무 점검 및 슈퍼비전 제공 △직원·이용자 민원 및 고충처리 △복지센터 중장기 경영계획 수립 및 평가 △복지센터 사업목표 및 전략수립 △인사관련 업무 관리 △개인정보보호 총괄책임 △인재양성(실습)과 관리 △대외협력 업무 등이다.

2017~2018년 서울 구강사금강불교대학에서 공부한 김 관장. 졸업 당시 공로상·신행상을 받았다.
2017~2018년 서울 구강사금강불교대학에서 공부한 김 관장. 졸업 당시 공로상·신행상을 받았다.

이중 김 관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무는 ‘직원과의 소통’이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그 영향으로 센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에게 행복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센터가 위치한 강남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민원이 많은 편은 아니에요.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학력이나 소득 수준이 높은 어르신이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슈퍼비전 제시와 함께 고민이 있을 때 같이 고민하고, 공감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관장실을 개방해 직원들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있죠. 직원들이 관장실에서 회의를 한다고 하면 제가 자리를 비켜주곤 해요. 직원들이 행복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직원들의 성장에 디딤돌이 돼주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관장이 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어르신을 응원 하고 있다.
김 관장이 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어르신을 응원 하고 있다.

“어르신 치매 예방 활동 주력할 것”

김성진 관장은 향후 어르신들의 치매 예방과 인지 건강을 위해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어르신들의 건강한 노후 생활을 위한 프로그램은 다양한 데 반해 치매와 관련된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이를 위해 지난 9월 27일 도산공원에서 센터 이용 어르신을 대상으로 ‘2022년 노인의 날 기념행사 - 제1회 강남 시니어 기억·돌봄 걷기 대회’를 개최해 어르신들의 치매 예방 및 인지 건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또 어르신의 인지발달과 두뇌 활성화를 위한 전문 교육을 실시해 치매 예방 중점 센터로 탈바꿈을 꾀하고 있다.

김 관장은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는 예비 후배들에게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예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는 사회복지사는 전문직이긴 하나 전문가로써의 능력은 스스로가 찾고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치와 철학에 대한 접근과 특정 분야의 숙련된 지식과 경험을 함께 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관장이 직원들과 함께 코로나19로 지친 어르신들을 위한 응원 이벤트를 하고 있다.
김 관장이 직원들과 함께 코로나19로 지친 어르신들을 위한 응원 이벤트를 하고 있다.

“신입 사회복지사들은 스스로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지 많이 고민할 텐데 그 길에는 자기성찰과 도전, 그리고 배움이 필수입니다. ‘나를 알아가는 것’ 또한 큰 힘이 될 것이고 스스로의 장·단점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끝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회복지사는 전문직이며,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모든 사람은 미래의 전문가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성진 관장이 9월 27일 도산공원에서 개최한 ‘제1회 강남 시니어 기억·돌봄 걷기 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성진 관장이 9월 27일 도산공원에서 개최한 ‘제1회 강남 시니어 기억·돌봄 걷기 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날에도 관장실의 문은 열려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어르신들이 들어와 김성진 관장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넸고, 그때마다 김 관장은 밝게 웃으며 어르신과 대화를 나눴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서는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오랜 인생의 경험을 통해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경륜과 지혜는 도서관에 비할 만큼 소중한 보물이다. 어르신의 존재와 그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그 경험을 귀히 존중하는 사회는 그 미래도 밝을 것이다.

김성진 관장은 서울 성룡사청년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신도회 은평지회장 소임을 맡고 있다. 김 관장이 성룡사 동지 팥죽 나눔 행사에 사용할 팥죽을 만들고 있다. 
김성진 관장은 서울 성룡사청년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신도회 은평지회장 소임을 맡고 있다. 김 관장이 성룡사 동지 팥죽 나눔 행사에 사용할 팥죽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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