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입구 지키는 수호목
정화의 역할, 고고한 자태
세속 떠난 수행자 닮아
산사에 오르는 길가에는 키 큰 나무가 많다. 곧고 높게 하늘로 향한 나무 사이로 난 숲길을 걷다 보면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겸손한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산사의 숲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자연 속에 존재하는 수행처이자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게 하는 수행의 길이다.
사찰 입구의 키 큰 나무 중에는 침엽수가 많다. 침엽수가 군락을 이룬 숲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무 중 하나가 전나무다. 특히 사찰 어귀나 일주문 양옆에 크게 자란 침엽수 두 그루가 있다면 대부분 전나무다. 전나무 두 그루는 일주문이 없으면 일주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고, 금강문이나 천왕문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사찰의 수호목이다.
그래서인지 전나무는 민가보다는 사찰과 더 가깝다. 전나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침엽수가 세속과는 거리를 둔 수행자의 고고함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다수의 침엽수는 정화(淨化)의 역할을 한다. 향나무의 경우에는 그 내음으로 실내를 신성하게 만든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언덕이나 마을, 사원의 입구에는 대형 향로가 있는데, 사이프러스 나뭇가지를 태워 그 연기로 인근 공간을 신성하게 한다.
전나무는 숲을 형성할 때 가장 적합한 나무다. 어릴 때는 수형(樹形)도 삼각형으로 반듯하고 가지도 예쁘게 뻗는다. 하지만 15m 이상 자라면 아래가지의 성장은 더뎌지고 윗가지 몇 개로 햇살을 받아들여 수형이 흐트러진다. 주변 나무와 햇살 경쟁을 하기 때문인데, 주변 나무보다 더 위로 곧게 자라는 특성으로 인해 한 그루보다는 여러 그루가 숲을 이루기에 좋은 모양이 된다.
그래서 예부터 전나무는 조경용으로 경내에 심기보다 사찰 입구나 담장과 가까운 주변 산에 심었다. 그렇게 심어진 전나무는 성장을 반복하면서 하늘을 향해 끝모른 채 반듯하게 뻗어 올라가는 것이다.
이렇게 잘 자란 전나무는 큰 건물을 지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사찰 대웅전이나 궁궐을 지을 때 소나무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게 전나무다. 소나무는 춘대설(春大雪)에 물기 가득 머금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거나 쓰러지는 경우가 많다. 성장도 느려 반듯한 목재가 귀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전나무는 눈 피해를 받지 않고 빨리 곧게 그리고 굵게 자라기 때문에 건축용 목재로 요긴하게 쓰였다.
또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등은 ‘삼송(杉松)’이라 부르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홍송(紅松)’이라 불렀다. 삼송은 나무속이 희고, 홍송은 붉기 때문에 목재로 사용할 때 구분하는 명칭이다. 그래서 삼송은 기둥에, 홍송은 대들보나 서까래에 많이 사용했다.
한반도에는 한대성 전나무와 온대성 전나무가 모두 자란다. 사찰은 주로 고도가 높은 산에 위치해 있어 사찰 주변에는 대부분 한대성 전나무가 자란다. 한대성 전나무의 잎이 바늘처럼 뾰족하다면 온대성 전나무는 잎끝이 갈라져 있다. 이런 일본전나무는 주로 남부 해안지역에서 자란다. 모두 겨울에 잎을 떨구지 않는 상록침엽수로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하지만 환경오염에는 약해 도심에서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