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24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벌어진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방어와 공격 속에 크롬대교가 폭파되자 자존심이 상한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깊은 걱정 속에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한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앗아가는 살육의 현장을 바라보면 정말로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내 목숨이 소중하면 다른 이의 목숨도 소중한 법입니다. 이를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에게 지도자나 스승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야 합니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국민들의 애환 어린 삶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연민(憐愍)의 정을 느낀다면 그들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무참히 전개되는 전쟁을 보며 부처님의 자비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자비가 왜 필요한지 생각해 봅니다.

부처님의 자비란 인연이 없기 때문에 ‘큰자비’라고 합니다. 본인과 아무런 인연이 없어도 자비심을 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비는 어떤 사랑보다도 더 크게 다가옵니다. 당(唐) 시대 황벽 선사(?~850)는 <완릉록>에서 중생을 위한 부처님의 설법이 무연자비(無緣慈悲)에서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무연자비란 조건 없는 자비입니다. 무엇을 바라고 어떤 조건을 걸어 이루어지는 자비가 아니고 무조건적인 베풂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일반적인 사랑과 다른 것은 연민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고통받는 중생을 향한 연민이 무한한 사랑을 발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慈)는 그래서 비(悲)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자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이요, 비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사랑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랑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탐욕에서 벗어나야 하고, 넓은 마음으로 질투심과 분노를 극복할 때 발휘될 수 있습니다.

대안(大安) 스님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존경했던 분입니다. 그는 신라의 저자거리로 나아가 서민과 함께 친밀감을 나누는 등 민중불교를 실천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대안 스님이 젖을 구하기 위해 서라벌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여자가 생겨 아이를 낳았나보다. 그런데 여자가 도망갔다.” 스님에 대한 염문설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대안 스님을 향해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래도 스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젖을 동냥했습니다. 소문을 듣고 원효대사가 대안 스님이 기거하고 있는 동굴을 찾았습니다. 과연 대안 스님이 어린 생명에 젖을 물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안 스님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 생명은 어미 잃은 새끼 너구리였습니다. 대안 스님은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아냥 따위에 괘념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끼 너구리들이 맛있게 젖을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차별이 없고,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이루어지는 사랑을 무연자비라 합니다.

<삼국유사>에 소개되는 혜통 스님의 출가 동기는 그 내용이 놀랍고 감동스럽습니다. 혜통 스님은 출가 전 사냥을 즐기던 악동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수달 한 마리를 잡아먹고 남은 뼈를 동산에 버렸는데 이튿날 보니 그 뼈들이 없어졌습니다. 남겨진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굴속으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굴 안을 살폈더니 다섯 마리의 어린 새끼가 있었는데, 죽은 수달의 뼈가 새끼를 끌어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장면을 보고 잘못을 크게 뉘우친 후 참회의 뜻으로 출가했습니다. 혜통 스님은 훗날 큰스님이 되어 어미 수달이 그랬던 것처럼 신라의 백성들에게 심오한 불법을 전해주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삼장으로부터 구법의 의지를 불태워 법을 받고 돌아와 전법교화에 매진했습니다.

불교의 정신으로 보면 모든 생명은 연민으로 보듬어야 할 상의상관(相依相關)의 존재들입니다.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하는 일들이 없어야 마땅합니다. 부디 정치 지도자들이 이같은 무연자비심을 조금이라도 익혀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길 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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