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범어사 풍경. 1980년.
흑백 범어사 풍경. 1980년.

〈觀照〉
관조스님 문도회 엮음/불광출판사/15만원

관조(觀照, 1943~2006) 스님은 수행자이자, 사진가로 잘 알려져 있다. 법명은 성국(性國)인데, 은사 지효 스님에게 이 법호를 받았다. 출가승이 수행은 하지 않고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고 손가락질하던 1970년대, 스님은 온갖 모욕을 견뎌내며 사진으로 법(法)을 구했다. 이런 스님이 있었기에 자칫 잊힐 뻔했던 불가(佛家)의 50년 전 모습이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 관조 스님이 30년간 찍은 사진은 20만 점이 넘었고, 생전에 주제별로 묶어 출간한 사진집만 해도 20권이 넘는다. 관조 스님 입적 16주기를 맞아 문도들이 20만 점의 사진 중에서 불교 관련 사진 중 엄선한 278점을 모아 유고 사진집을 펴냈다. 책 제목은 스님의 법호와 같은 〈觀照〉다.

사진집 첫 장은 출가본사이자 평생 주석했던 부산 범어사다. 당간지주 후에는 일주문과 천왕문이 열리고, 그곳에 세워진 탑과 석등을 지나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을 살핀다. 그리고 전각 안의 불상과 탱화, 문살과 닫집, 수미단과 단청을 하나하나 보듬는다. 수행자의 일상 공간인 승방과 공양간의 모습도 담아낸다. 수계식과 다비식 등의 특별한 의식을 보여준 뒤에는 절 외곽에 있는 부도·탑비를, 마지막으로는 폐사지 사진을 수록했다.

관조 스님은 한평생 필름카메라만 사용했다. 반사판 외에 인공조명은 사용하지 않았다. 1980년 펴낸 첫 사진집 〈승가〉를 비롯해 이후 출간한 사진집 모두 이런 사진만 수록돼 있다 보니 선명한 해상도의 디지털 사진과는 대조적으로 색감이 깊고 무겁다. 피사체가 도드라지지 않아 천천히 세심하게 살펴보게 만든다. 이런 사진의 특징을 살리고자 이번 사진집은 색감 표현에 좋은 종이 대신 밝은 부분부터 어두운 부분까지 변화하는 농도의 단계[階調]가 잘 드러내는 종이를 썼다.

삼십 대 초반에 해인사 강원에서 강주 소임을 맡았을 정도로 교학에도 밝았던 스님은 범어사 총무 소임을 잠시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사판(事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독학으로 습득한 사진기술을 수행과 포교의 방편 삼아 30여 년간 전국 산사를 누볐다. 스님이 남긴 필름들은 현재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맏상좌 승원 스님(가평 백련사 주지)은 출간의 변을 통해 “은사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며칠 전 찾아뵀을 때 담담한 목소리로 ‘승원 스님,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어요. 좋은 작품집 한 권을 출간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요?’하고 말씀하셨다. 손을 잡아드리며 맹세하듯 약속했는데 16년이 지나서야 그 약속을 지키게 됐다.”면서 “은사 스님 입적 후 5년 간 흩어져 있던 필름을 수소문해 정리하니 20여 만점이나 되었다. 그 많은 필름을 트럭으로 옮겨와 필름 구분작업을 한 기간만 3년이 걸렸다. 출간까지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신흥사 명부전 문살. 1987년.
신흥사 명부전 문살. 1987년.
운문사 공양간. 1992년.
운문사 공양간. 1992년.
범어사 기와. 1995년.
범어사 기와.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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