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호

사람들은 가족·친지를 만날 때 삶의 위안과 행복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석은 한 해중 가장 기다려지는 명절이라 하겠습니다. 고향집 부모님은 물론 친인척을 만나 안부를 여쭈며 명절 음식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큰 즐거움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기뻐해야 할 명절에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추석 연휴 다음 날,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70대 노부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경찰은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과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앞서 8, 수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세 모녀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동반자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복지사각지대가 불러온 안타까운 사건으로 규정하고 나섰습니다.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못해 생을 스스로 마감한 사건은 2014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세모녀 자살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은 70만 원이 든 봉투 속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번개탄을 피워 동반자살했습니다. 이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강화한 일명 송파세모녀법이 제정됐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성북구 네 모녀가 비슷한 방식으로 집단 자살하고, 양주시에서도 아버지가 어린 아들 둘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상생(相生)과 공존(共存)의 삶을 강조하는 저는 이러한 사건을 접하며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제도는 과거에 비해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일명 송파세모녀법이 말해주듯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강화하고 일선에서도 복지사각지대를 줄여나가기 위해 찾아가는 돌봄제도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사회복지제도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며, 여전히 이웃들의 돌봄에서 가려진 사각지대 내의 가정이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국가와 사회가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 내의 소외된 가정을 위한 자비의 손길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불교적 이상사회는 사회복지활동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이는 빈궁구제와 병자치료가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불교의 사회복지활동은 자비심(慈悲心)에 기초합니다. 자비를 해석하자면 애련(愛憐)’으로, ‘원한과 고통을 제거하려는 소원으로 풀이합니다. 범어에서의 는 카루나(karuna)의 역어(譯語)로 본디 신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자비는 중생의 신음을 없애주기 위한 사랑의 베풂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생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할 때 복지 사각지대가 생깁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처럼 1,000개의 손과 1,000개의 눈으로 중생이 처한 온갖 상황을 잘 파악하여 신음 소리를 없애준다면 그것이 곧 자비행인 것입니다.

자비는 부처님의 중생사랑에 기인합니다. 중생사랑에 대한 부처님의 연민이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란 핵심적 실천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로써 불교의 사회복지활동도 이러한 자비사상을 기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대비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애주려는 불보살의 한없이 큰 마음을 뜻합니다. 이 대자대비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분이 관세음보살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에겐 구고구난(救苦救難)이란 수식어가 따릅니다. 중생들을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제해주시는 보살로서 중생에 대한 부처님의 연민을 가슴에 품고 있는 분입니다. 또 문수보살은 중생을 대할 때 부처님은 자비로 군생(群生)을 구호하라고 가르치시며, 남을 해치는 마음 없이 모든 중생을 민애(愍愛)하라고 가르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생에 대한 연민에서 큰사랑을 베풀수 있다는 뜻입니다.

큰사랑은 연민에서 나옵니다.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사랑을 일으키고 그 사랑이 실천으로 옮겨질 때 자비가 이루어집니다. 자비는 사랑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정신에 따라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번 부산 모녀 자살처럼 비극적인 사건들을 줄이기 위해 주위에 대한 더욱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다함께 이웃의 신음 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나가길 바랍니다. 그것이 자비실천의 길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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