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억제의 역설적 효과
​​​​​​​생각의 공(空)함 깨달아야”

우리는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싫어하는 것은 회피한다. 좋아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지만, 싫어하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것도 괴로움이다. 불교의 팔고(八苦)에 속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가 바로 그것이다. 괴로움은 탐욕에 의해 생겨나기도 하지만 혐오에 의해 생겨나기도 한다.

강박장애는 혐오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인해 생겨나는 독특한 심리적 장애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외부에 존재하는 혐오 대상은 멀리하면 괴로움을 줄일 수 있다. 심지어 사랑해서 결혼한 배우자도 미움이 깊어져 혐오 대상이 되면 별거나 이혼으로 원증회고의 괴로움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원하지 않는 혐오스러운 생각과 충동이 자꾸 떠오를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20대 후반의 남성인 K씨는 독실한 종교인으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성실한 사람이다. 그런데 수개월 전부터 자신의 의도와 달리 음란한 생각이 자꾸 떠올라 몹시 괴롭다. 직장의 여성 동료를 볼 때마다 그 여성의 육체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그 여성과 성행위를 하는 음란한 생각이 자꾸 떠올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K씨는 이런 생각을 없애려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런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더욱 심해져 심리상담소를 찾게 되었다.

# 40대 주부인 P씨는 불결한 병균이 묻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는다. 외출해서 음식점이나 화장실 손잡이를 만지고 나면 병균에 오염될 것 같은 불안이 올라와 매번 자신의 손을 여러 번 씻는다. 손을 씻고 나면 불안이 잠시 가라앉지만 충분히 씻지 않아 병균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라 수십 번씩 손을 씻어야 한다. 요즘은 너무 자주 씻어 손이 헐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병균오염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일상생활에 집중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남편과 자녀가 병균에 오염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족에게 손 씻기를 강요하고 있어 가족갈등을 겪고 있다.

핵심 증상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는 위의 사례처럼 원하지 않는 생각이 자꾸 의식에 침투하여 괴로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생각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을 반복하여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말한다. ‘강박(强迫)’이라는 단어는 ‘강한 압박’이라는 뜻을 지닌다. 강박장애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강한 압박감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심리적 장애를 의미한다.

강박장애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의 두 가지 증상으로 이루어진다. 강박사고(Obsession)는 반복적으로 마음에 침투하는 고통스러운 생각이나 충동을 말한다. 가장 흔한 강박사고는 성적인 생각(음란하거나 근친상간적 내용), 공격적인 생각(폭력이나 살인 또는 신성모독적 내용), 오염에 대한 생각(병균과 더러운 것에 오염되는 내용), 실수에 대한 생각(재난이나 피해를 초래하는 실수에 관한 내용), 정리정돈에 대한 생각(무질서와 혼란에 대한 내용) 등이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면 불안과 혐오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노력이 강박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강박행동(Compulsions)은 강박사고로 인한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반복해서 하게 되는 행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병균 오염에 관한 강박사고는 손 씻기와 같은 강박행동을 유발한다. 외출할 때마다 ‘문은 제대로 잠궜나?’ 또는 ‘가스레인지에 불은 잘 껐나?’라는 의심이 자꾸 떠올라 몇 번씩 확인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강박행동은 씻기·확인하기·정돈하기·청소하기와 같은 외현적(外現的)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숫자세기·기도하기·속으로 단어 반복하기와 같이 내면적인 행위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지나치고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떠오르는 강박사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강박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에 현실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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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원인

강박장애의 발생에는 ‘생각에 대한 생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란한 생각이나 병균 오염에 대한 생각은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에는 하루에도 오만가지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존경받는 종교지도자라고 해서 항상 고상하고 성스러운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도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들과 똑같은 내용의 생각을 한다. 다만 그러한 생각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이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각은 행동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란한 생각을 하는 것을 실제로 음란한 행동을 한 것과 도덕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생각을 하면 실제로 그러한 행동을 하게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생각은 행동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을 전문용어로 ‘사고-행위 융합(Thought-action fusion)’이라고 한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러한 생각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오묘해서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그 생각이 더 잘 떠오르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다니엘 웨그너(Daniel Wegner, 1948~2013)는 흰곰 실험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연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입증했다. 웨그너는 사람들에게 하얀 북극곰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10분간 곰 생각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시를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흰곰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고억제의 역설적 효과’라고 부른다. 강박사고가 자꾸 의식에 침투하는 이유는 그러한 생각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억제함으로써 사고억제의 역설적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치료방법

무엇이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원인을 잘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강박장애의 치료를 위해서는 생각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란 하늘에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흘러가듯이, 우리 마음에도 온갖 생각과 충동이 떠오르고 머물다 지나간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관념이나 가치관에 어긋나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독실한 종교인인 K씨는 20대 청년으로서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는 성적인 생각과 충동을 부도덕하고 위험한 것으로 여기며 과도하게 억제하려고 애쓴 것이 오히려 강박장애를 유발하게 했다. 경직된 도덕관념을 지닌 K씨는 자신의 마음에 떠오른 성적인 생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K씨는 상담자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생각은 생각일 뿐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도덕관념을 좀 더 유연하게 변화시키면서 강박증상이 점차 개선되었다.

강박증상은 심리치료를 통해 단기간에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세밀하게 바라보는 노력과 더불어 혐오하는 것에 대한 인내력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씨는 심한 완벽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작은 실수나 불안도 견디지 못하고 즉시 해소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P씨는 손에 불결한 것이 묻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심한 불안을 느끼며 강박적으로 손을 씻어야만 했다. 손을 씻으면 불안이 감소하는 일시적인 효과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손을 자주 씻었기 때문에 그동안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손을 씻는 강박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P씨는 상담자와 함께 하는 실습을 통해 손을 씻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오염 불안이 저절로 감소한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강박증상이 조금씩 호전되었다.

경직된 도덕관념이나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강박장애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 이러한 사람들은 혐오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것이나 불완전한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즉시 제거하려는 노력이 강박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박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도덕적 판단의 유연성을 함양하고, 자신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마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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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적 삶의 자세

혐오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기 어렵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러운 것을 혐오한다. 도덕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부도덕한 것을 혐오하고, 완벽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불완전한 것을 혐오한다.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피해야 할 것도 많고 없애야 할 것도 많다. 더럽고 부도덕하고 불완전한 것을 만날 때마다 불쾌함을 느끼며 회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박장애는 우리 마음에 찾아온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로 제거하려는 시도로 인해 생겨나는 심리적 장애다. 억지로 밀어내려 하면 오히려 더 달라붙는 것이 마음이다. 우리 마음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의 공(空)함을 깨닫고 생각에 집착하지도 혐오하지도 않는 것이 정신건강을 위해 바람직하다. 많은 정신장애가 혐오하는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

불교의 소중한 가르침 중 하나는 중도(中道), 즉 양변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애착과 혐오의 양변에서 벗어나 우리의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인연에 의해 찾아온 반가운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인연이 다하면 기꺼이 떠나보내려는 자세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관건이다.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경지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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