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식민지 때 전래
홍차 수출 세계 1위
우유 섞은 케냐티 ‘국민茶’

 

케냐는 세계 최대의 홍차 수출국이다. 홍차의 80%를 케리초 지방에서 생산하고, 이외 리무루·난디·카이모시·소틱 지역에 서도 차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난디의 차밭.
케냐는 세계 최대의 홍차 수출국이다. 홍차의 80%를 케리초 지방에서 생산하고, 이외 리무루·난디·카이모시·소틱 지역에 서도 차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난디의 차밭.

아프리카 케냐(Kenya)는 세계의 커피 명산지를 꼽을 때 반드시 포함되는 나라다. 특히 최상급 원두인 ‘케냐AA’는 오묘한 과일 향과 묵직한 바디감으로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케냐’라는 국가명에도 진한 커피 향이 배어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이와 달리 케냐에서 커피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다. 최근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커피전문점이 유행하고 있지만, 서민들은 인스턴트커피를 가끔 마실 뿐이다. 케냐인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음료는 따로 있다. 하루에 최소 석 잔에서 다섯 잔, 많게는 열 잔까지 마시는 국민 음료, 홍차 밀크티에 해당하는 ‘케냐티’다.

차나무의 전래

케냐의 차(茶) 산업은 세계적인 규모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케냐의 연간 홍차 생산량은 인도에 이어 세계 2위다. 더 놀라운 건 홍차 수출량인데, 연간 40만 톤을 돌파해 세계 1위에 올랐다. 흔히 세계에서 홍차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로 중국이나 실론티로 잘 알려진 스리랑카를 떠올리지만, 케냐는 이렇게 2020년 한해에 파키스탄·영국·이집트 등 40여 국가에 12억 달러의 차를 수출했다. 이 같은 규모는 케냐의 단일 수출 상품 가운데 가장 큰 액수로, 케냐 커피 수출액인 2억 3,000만 달러를 한참 뛰어넘는다. 세계의 차 시세가 케냐의 작황에 따라 움직일 정도로 케냐의 차 산업은 세계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인도양 연안에 위치한 케냐 항구 몸바사(Mombasa)에서 열리는 차 경매에는 전 세계의 무역상들이 모여든다. 딱히 내세울 만한 수출품이 없는 케냐에서 차는 이렇게 외화를 벌어오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통로도 없는 차밭에서 근로자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통로도 없는 차밭에서 근로자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케냐가 세계적인 차 산지로 성장하기까지는 영국의 영향이 컸다. 1498년 포르투갈 출신 바스코 다가마의 항해 이후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항로가 열렸고, 후추를 필두로 다양한 상품들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차 역시 중요한 무역상품으로 전해졌다. 홍차는 17세기부터 영국인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으며 ‘티파티’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당시 차는 청나라가 독점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차의 재배법과 가공법을 비밀로 하면서 유럽 상인들에게 높은 가격에 차를 판매했다. 비싼 차를 지속적으로 수입하면서 영국의 무역 적자는 갈수록 심해졌고, 영국이 아편전쟁(1840~1842)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홍차로 인해 중국과 전쟁까지 치른 영국은 저렴하게 차를 생산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재배에 성공했다. 차 수입국에서 생산국으로 변신에 성공한 영국은 주머니가 두둑해졌고, 돈을 벌어주는 귀한 차나무를 다른 식민지에도 적극 이식(移植)했다. 1903년 영국 지배하에 있던 케냐의 리무루(Limuru) 지역에 케인(Caine) 형제가 아프리카 최초의 차나무[Camellia sinensis種]를 심었다. 우리에게는 아프리카 땅이 덥고 메마르다고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농업에 적합한 지역도 굉장히 넓다. 특히 케냐는 적도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해발 2,000m를 오르내리는 높은 고도 덕에 연중 서늘한 고산기후가 유지된다. 또 풍부한 일조량과 연간 1,400mm 정도의 적당한 강우량 그리고 열대 화산성 붉은 토양으로 차 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췄다.

이후 인도에서 들여온 차나무는 케냐의 기후에 적응해 쑥쑥 자랐고, 1920년대부터는 상업형 농장도 들어서기 시작했다. 식민지배 기간에 기반이 조성된 케냐의 차 산업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정부 주도로 꾸준히 성장했고, 오늘날 세계 제일의 홍차 수출국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케냐 케리초 차밭.
하늘에서 내려다본 케냐 케리초 차밭.

차밭 지평선

케냐의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광대한 차 생산지역은 20만 ha에 달한다. 그 중 차 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은 케냐 홍차의 80%를 생산하는 케리초(Kericho) 지방으로,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 리무루(Limuru)·난디(Nandi)·카이모시(Kaimosi)·소틱(Sotik) 지역에서도 차가 생산되고 있다. 필자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케리초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눈앞에 처음 보는 놀라운 전경이 펼쳐졌다. 크고 작은 차 농장이 수없이 이어져 있다 보니 자동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도 연녹색 차밭이 끝나지 않았는데, 푸른 바다 같은 녹차밭이 지평선까지 펼쳐진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케리초 차밭 중에 규모가 큰 차 농장은 대부분 유럽인의 소유이고, 케냐인들은 대부분 소규모의 자작농이다. 대규모 차 농장은 유럽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이 숲을 개간해서 만들었는데, 케냐 독립 이전에 영국 식민정부가 차의 품질관리 명목 아래 외국의 다국적 기업에 한해 차를 재배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케리초의 드넓은 차밭은 지평선과 맞닿아 있다. 〈사진=송태진〉
케리초의 드넓은 차밭은 지평선과 맞닿아 있다. 〈사진=송태진〉

케냐 토착민들이 고소득 특수작물인 차를 재배할 수 있게 된 것은 독립 이후인 1964년 무렵이다. 당시 케냐 정부는 ‘케냐 차 개발공사(Kenya Tea Development Authority)’를 설립해 소규모 자작농을 지원했다. 이 개발공사는 현재도 자작농과 60여 곳의 소규모 차공장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아 생잎 구매부터 찻잎 처리와 수출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케리초 농장들은 수확한 찻잎을 CTC(Crush Teaf Curl) 공법으로 가공해 전 세계로 수출한다. 이 공법은 찻잎을 잘게 찢거나 부순 후 말거나 비트는 기술로 차를 단시간에 진하게 우려낼 수 있게 한다. 케냐의 차 산업에는 유니레버·카멜리아 PLC와 같은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데, 정부에 등록된 차 회사는 약 100곳에 달한다.

농업·제조업·관광업 등 케리초의 산업은 대부분 차와 연결돼 있다. 또한 관련 연구소와 기관들이 케리초에 몰려 있어 차와 관련한 국제적인 연구와 행정도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차 산업과 관련한 직접 종사자는 65만 명, 간접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2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열악한 근로환경

차 농장이 하나의 도시 정도로 규모가 크다 보니, 농장 내에는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마을이 형성돼 있다. 차의 집중 수확기는 3월에서 6월, 10월에서 12월인데, 근로자들은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찻잎을 따고 녹차를 발효·가공시켜 홍차로 만든다.

차 농장 근로자들의 근로 환경은 썩 좋지않다. 케냐의 차밭은 차나무와 차나무 사이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없다. 큰 차밭 구획을 나눠놓기만 했을 뿐, 차를 수확하는 근로자들이 다닐 수 있는 통로는 없다. 근로자들은 차 수확을 위해 가슴 위까지 올라오는 두꺼운 앞치마를 착용한 채 빽빽하게 자란 차나무 사이를 몸으로 헤치면서 찻잎을 따야 한다. 그렇다 보니 거친 나뭇가지에 찔려 상처가 나는 경우는 흔하다.

통로 없이 빼곡하게 차밭을 조성한 이유는 최대한 차나무를 많이 심으려는 식민지배자들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지주들은 밭에서 일해야 하는 케냐 근로자의 고충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오직 어떻게 하면 차나무를 더 많이 심어 수확량을 늘릴 수 있을지 고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통로조차 만들지 않고 차나무를 잔뜩 심은, 근로자를 배려하지 않는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법의 차밭이 만들어졌다. 농민의 지위가 높은 나라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사례다. 지금까지도 케냐의 차밭 노동자들은 식민지배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

케냐의 차밭 근로자들이 트럭에 찻잎을 싣고 있다.
케냐의 차밭 근로자들이 트럭에 찻잎을 싣고 있다.

차 수확기에는 케냐 전 지역에서 일용직 근로자들이 몰려온다. 드넓은 차밭에서 기계 없이 사람의 손으로 찻잎을 따야 하다 보니 농장에서 생활하는 근로자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용직 근로자들의 수입은 넉넉하지 않다. 하루종일 빽빽한 차나무를 헤치며 찻잎을 따고 손에 쥐는 돈은 5달러 남짓이다. 2020년 기준 케냐의 1인당 국민소득이 1,800달러 정도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돈으로는 저축한다거나 더 밝은 미래를 꿈꾸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차밭의 일용직 근로자들은 케냐에서 가장 가난한 하위 계층이라고 볼 수 있다.

케냐는 좋은 차를 키울 수 있는 이상적인 기후를 갖고 있지만, 기업들은 부가가치 높은 고품질 브랜드를 개발하는 대신 블렌딩에 사용되는 저가형 차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되었고, 세계 1위의 홍차 수출국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차 농장의 근무자들에게는 가혹한 삶이 강요되고 있다. 세계적인 차 생산국 케냐의 어두운 이면이다.

생활이 된 茶문화

영국은 케냐에 차나무와 함께 티타임 문화도 전했다. 온종일 홍차를 입에 달고 다니는 영국인들의 습관은 케냐인들을 쌉싸름한 차의 매력에 푹 빠지게 했고, 영국인 못지않은 열렬한 차 애호가로 만들었다. 다만 케냐인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순수한 홍차보다 우유를 섞은 ‘케냐티’를 선호한다. 케냐티는 물을 섞지 않은 따뜻한 우유에 홍차 잎을 직접 우려내 맛이 매우 진하다. 우유에 홍차 잎을 넣고 건져내지 않은 채 팔팔 끓이거나, 뜨거운 우유에 담긴 티백을 꽉꽉 눌러 짜서 우리기도 한다. 밀크티를 만들 때 홍차가 먼저냐, 우유가 먼저냐는 영국인들의 해묵은 논쟁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간단한 제조법이다. 여기에 설탕까지 넣어주면 단순하면서도 케냐인들의 심성을 닮은 달달한 케냐티가 된다.

본래 케냐의 국민 음료는 우유였다. 케냐인들은 오래전부터 소를 키워왔고, 우유는 케냐인의 식사이자 음료였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다른 음식을 먹지 않은 채 우유만 먹으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우유를 밥처럼 먹는 케냐의 전통과 틈만 나면 홍차를 홀짝이는 영국의 티문화가 만나면서 하루종일 밀크티를 마시는 케냐식 티타임이 탄생한 것이다.

케냐인들이 홍차에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은 ‘케냐티’를 즐기고 있다. 〈사진=송태진〉
케냐인들이 홍차에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은 ‘케냐티’를 즐기고 있다. 〈사진=송태진〉

케냐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밀크티를 한 잔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10시 아침에 마신 차의 온기가 아직 식지 않았을 무렵 또 한 잔을 마신다. 점심을 하며 한 잔 더 마시고, 나른한 오후에 잠을 깨려고 한 잔, 저녁을 먹으며 또 한 잔, 잠들기 전 출출할 때 한 잔 더 마신다. 그 사이사이에도 한 잔씩 마시다 보니 밀크티는 항상 뱃속에 들어 있다. 손님이라도 여럿 찾아오는 날이면 하루에 열 잔 이상 마시곤 한다.

특히 오전 10시의 티타임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회사나 학교에서는 일과를 잠시 멈추고 일제히 차를 마신다. 대규모 공업단지에서는 수천 명의 근로자가 우르르 쏟아져나와 회사 앞 노점에서 차를 마시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차와 빵을 급식하고, 회사는 직원들을 위해 다과를 제공한다.

케냐인들의 대화는 대부분 ‘하쿠나마타타’로 마무리된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이 단어는 동아프리카의 공용언어인 스와힐리어에서 나왔다. ‘없다’를 뜻하는 ‘하쿠나’와 ‘문제’라는 단어인 ‘마타타’가 결합해 ‘모든 근심과 걱정을 떨쳐 버려라.’는 의미가 됐다. 낙천적인 케냐인들의 성향이 잘 함축된 표현이다. 케냐 사람들은 대화를 나눌 때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걸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는 따뜻하고 진지하게 흐르고, 흥미로운 주제라도 나오면 대화가 길어져 밀크티가 계속 추가된다. 그들은 티타임 속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주고받고 서로 용기를 북돋으며 ‘하쿠나마타타’를 외친다. 그렇게 다시 살아갈 힘과 여유를 얻는다.

차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즐거움을 주는 신기한 음료다. 향이 좋은 차를 마시면 화를 내기가 쉽지 않다. 케냐의 이상적인 기후에서 자란 질 좋은 차는 세계 각지로 수출되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케냐인들도 티타임을 즐기며 생활의 에너지를 얻는다. 차밭의 근로자들도 차를 마시며 하루의 고단함을 녹여낸다. 삶이 아무리 고되고 힘겨워도 케냐인들은 차로 하루를 시작하고, 차로 하루를 끝내며 “하쿠나마타타”라고 마무리한다.

송태진
아프리카문화 칼럼니스트. 2008년 부룬디에서 1년간 해외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아프리카가 너무 좋아 지금까지 푹 빠져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케냐 현지 TV방송국 제작팀장으로 근무했고, 현재 YTN 해외리포터·KBS ‘세계는 지금’ 통신원을 맡고 있다. 유튜브 ‘쏭태의 진짜 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저서로 〈아프리카, 좋으니까〉가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