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암나무
고약한 냄새 풍기지만
수행자에 가을 알리는
산사의 일부

 

영주 부석사 일주문으로 향하는길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영주 부석사 일주문으로 향하는길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느티나무·팽나무·은행나무·회화나무 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식생(植生)하고 있는 나무들이다. 그중에서도 은행나무는 특히 더욱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와 역사의 현장이라면 한두 그루쯤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은행나무는 한반도 자생식물이 아니므로, 아무리 오래된 은행나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작은 묘목으로 심어졌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라난 은행나무는 역사가 되었고, 전설이 되었고,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되어왔다. 은행나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생태적 속성을 보면 매우 특이하고 강하고 귀한 존재다.

우선 세상의 모든 은행나무는 같은 종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한 종류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빙하기를 거치면서 여러 종류의 은행나무들은 냉기에 죽어갔고, 오직 한 종류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은행나무는 주변 환경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적응시키며 진화를 거듭해 생존한 대단한 나무인 것이다.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한 다른 종류의 은행나무들은 화석에서만 볼 수 있다.

잎은 오리발처럼 갈라져 있고, 열매는 발달했지만 고약한 냄새를 풍겨 어떤 곤충이나 동물도 먹지 않는 기능을 잃은 과육(果肉)이 되었다. 또한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면 가지에서 스스로 유주(乳株)라는 뿌리를 내려 분화하거나 기둥과 뿌리 사이에서 스스로 싹을 틔워 몸을 나누면서 생명을 이어간다.

이런 특이한 나무가 언제부터 불교사원에 심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현존하는 은행나무로 볼 때 불교가 전해진 삼국시대부터 사원에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나무는 대부분 불교사원의 경내가 아닌 사원 입구나 길목에 심어져 있다. 이는 은행의 수확과 풍광의 목적 외에 은행나무의 신령함이 사찰의 수호목으로 존재하게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불교사원의 은행나무 대부분은 절을 창건하거나 중창한 후 마무리로 지팡이를 거꾸로 꽂았을 때 싹을 틔웠다는 삽목의 전설이 전해진다.

가을이면 은행나무는 가장 화려하게 변신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잎은 가을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아름답게 변해 관상용으로도 최적이다. 또한 노거수(老巨樹)도 생명력이 강해 많은 열매를 맺어 거두어들이는 수확량도 많다.

그러나 이 가을의 풍요가 모두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조선조에는 불가(佛家)를 수탈할 목적으로 가장 많이 수확한 해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나무가 해거리라도 하면 수확량이 세금에 훨씬 못 미치기에 사찰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암나무를 열매가 달리지 않는 수나무로 변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비록 수탈의 빌미를 제공했을지라도 은행나무는 산사(山寺)에서 수행자의 가을을 더 깊어지게 하고 다가올 동안거를 준비하는데 유용한 존재였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그냥 산사에 있는 나무가 아니라 산사의 일부이고, 또 가을 산사의 전부이다.

은행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비단옷 대 신 삼베옷을 입은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하니 천년을 넘게 살았다. 그의 울분이 담긴 나무라지만 늦가을 푸른 하늘에 42m의 높이로 솟은 은행나무는 아직까지도 기상이 충만하기만 하다.
은행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비단옷 대 신 삼베옷을 입은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하니 천년을 넘게 살았다. 그의 울분이 담긴 나무라지만 늦가을 푸른 하늘에 42m의 높이로 솟은 은행나무는 아직까지도 기상이 충만하기만 하다.
선암사 장경각은 봄과 가을이 다르다. 이른 봄에는 동쪽 매화가 만발하고, 가을에는 서쪽 은행나무가 만발한다. 이렇게 산사의 풍경은 나무가 만든다.
선암사 장경각은 봄과 가을이 다르다. 이른 봄에는 동쪽 매화가 만발하고, 가을에는 서쪽 은행나무가 만발한다. 이렇게 산사의 풍경은 나무가 만든다.
신륵사 은행나무는 경내 마당에 있다. 그래서 꺾여 썩어가는 가지 하나도 헛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신륵사 은행나무는 경내 마당에 있다. 그래서 꺾여 썩어가는 가지 하나도 헛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마당 깊은 곳 언덕 앞에 서 있는 수종사 은행나무의 자리는 그 옛날 산사를 오르는 입구였다. 세월이 흘러 길이 변하면 서 맨 끝으로 밀리게 되었지만 혹시나 힘들게 경사 길을 올 라 올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마당 깊은 곳 언덕 앞에 서 있는 수종사 은행나무의 자리는 그 옛날 산사를 오르는 입구였다. 세월이 흘러 길이 변하면 서 맨 끝으로 밀리게 되었지만 혹시나 힘들게 경사 길을 올 라 올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나이를 잊었다. 천년을 하늘 높이 살아왔어도 아직도 노란색 잎사귀는 싱싱하고 풍성하기만 하다. 은행나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풍경을 잃은 적이 없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나이를 잊었다. 천년을 하늘 높이 살아왔어도 아직도 노란색 잎사귀는 싱싱하고 풍성하기만 하다. 은행나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풍경을 잃은 적이 없다. 
온 산을 덮고 짙은 가을하늘까지 다 덮어버린 영국사 은행나무의 그늘이 있어 가지사이 햇살은 더욱 강렬하다.
온 산을 덮고 짙은 가을하늘까지 다 덮어버린 영국사 은행나무의 그늘이 있어 가지사이 햇살은 더욱 강렬하다.
산사의 은행나무는 서로의 존재자체가 귀한 가르침이다.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두 그루에서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날려 마당을 한 바퀴 휘돌아 흩날린다. 두 나무는 그렇게 마주선 채 천년의 도반으로 존재하고 있다. 
산사의 은행나무는 서로의 존재자체가 귀한 가르침이다.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두 그루에서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날려 마당을 한 바퀴 휘돌아 흩날린다. 두 나무는 그렇게 마주선 채 천년의 도반으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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