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의 불모지, 개척의 역사를 담다
(사)평화통일불교협회/비매품

1992년 법타 스님(은해사 조실)이 주도해 창립한 (사)평화통일불교협회(이하 평불협)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남북불교 교류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공유하고자 〈평불협 30년사〉를 발간했다.

평불협은 당시 불교계 최초 통일부 산하 사단법인 단체며, 비제도권의 유일한 통일운동 단체였다. 지난 30년 동안 대북지원과 남북교류, 유적복원, 학술·문화교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97년 황해남도 봉산군 사리원시에 ‘금강국수공장’을 설립한 후 매달 60톤의 밀가루를 북한으로 보내 하루 7,700여 명분의 국수를 생산해 무상으로 나눠줬다. 또 2003년 조계종 신계사 복원 불사와 2005년 천태종 영통사 복원 불사를 주선해 성공적으로 회향했다. 또 2003~2006년 59개 북한사찰 단청불사와 북한 스님들을 위한 장삼옷감도 후원했다.

이후 2008년 금강산관광객 박왕자 피살 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 2010년 북한 연평도 포격 등의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돼 어려움을 겪었다.

평불협의 30년을 한 권으로 담은 〈평불협 30년사〉는 △평불협 소개 △평불협 연보 △평불협 활동과 성과 △평불협 자료실 △북한불교의 현황과 조선불교도연맹 △부록 등으로 구성됐다.

평불협 이사장 법타 스님은 7월 4일 인사동에서 진행한 간담회에서 “통일운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불교계와 시대상황에 대처가 대체로 늦는 불교인들을 견인해 현재적 깨달음의 길을 함께 가는 것이 곧 ‘통일보살’의 탄생이고, 이를 행동화한 것이 평불협의 창립”이라며 “결코 식을 수 없는 동포애로 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마침내 화해와 통일을 이룩하는 장도(壯途)에 올라 통일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세우고 또 세워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타 스님은 “평불협이 비록 작은 단체지만 책을 통해 남북불교 교류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면서 “대북관계가 경색돼 있지만 앞으로 불자들의 통일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법타 스님은 1965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추담(秋潭)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후 일타(東谷) 스님께 건당했다. 종비생 4기로 동국대 인도철학과 학사·석사를 졸업하고, 1996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시 클레이턴대에서 ‘20세기 최근세의 북한불교 변화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북한대학원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20년 2월 동국대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북한 조선불교도연맹 연구’로 스님 최초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스님은 1999년 이래 은해사 운부선원과 보경사 보경선원 등지에서 28안거를 성만했으며, 2018년 팔공산 동화사에서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조계종 총무부장·은해사 주지·동국대 정각원장·동국대 총동창회 상임부회장·대구불교방송 창립 초대사장·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 및 조계종 10교구본사 은해사 조실을 맡고 있다.

법타 스님은 1989년 평양축전을 시작으로 수십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1997년 북한 사리원에 ‘금강국수공장’을 설립해 북한 주민에게 무상으로 국수를 공급하는 등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남북불교 교류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공로로 제8회 만해대상·․체육훈장 기린장·제2회 민족화해상·제10회 자유민주상·제4회 대원상·통일부장관 단체표창·제21회 조계종 포교대상 특별상·세계평화상·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북한불교 연구〉, 〈북한불교 백서〉,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을 해부하다〉, 〈북한의 절과 불교〉, 〈독도는 통곡한다〉, 〈대마도는 한국 땅〉, 〈간도는 한국 땅〉, 〈중원에 서서〉 및 법문집 〈용서해야 사람이다〉 등이 있다.

법타 스님.
법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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