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사건에 대한 비관적 사고
​​​​​​​마음챙김으로 생각·현실 분리해야”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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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물질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 또한 늘고 있다. 우울증은 ‘심리적 독감’이라고 불릴 만큼 가장 흔한 심리적 장애로 20% 내외의 사람들이 평생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 우울증은 의욕 저하와 무기력으로 인해 학업이나 직업 적응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치명적인 심리적 장애이다. 이러한 우울증은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경험하며, 우울증이 시작되는 연령도 점점 낮아져 우울증을 경험하는 청소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인생의 썰물, 우울증

살다 보면 뜻하는 대로 일이 잘 풀려 기분이 좋고 의욕이 넘치는 시기가 있는 반면, 하는 일마다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기분이 가라앉고 자신감을 상실할 때도 있다. 이렇게 인생에는 행복감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는 밀물의 시기도 있지만, 불행감과 상실감 속에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썰물의 시기도 있다. 우울증은 인생의 썰물 시기에 경험하는 고통스러운 심리적 장애이다.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내담자 중에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 중소기업에 다니는 40대 초반의 P씨는 주식투자로 많은 손해를 보고 나서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주택마련을 위해 저축해온 돈을 아내 몰래 주식과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커다란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수년간 모아온 돈이 반 토막으로 줄어들면서 주택마련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절망감을 느꼈다. 더구나 이러한 사실을 아내가 알게 돼 심각한 부부갈등에 시달리다가 이혼을 요구받지 않을까 두렵다. 요즘은 우울한 기분과 의욕 상실로 인해 직장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자살충동에 자주 휩싸이곤 한다.

#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인 Y씨는 최근에 친척 소개로 맞선을 보고 나서 우울증에 빠졌다. Y씨는 미모와 학벌을 모두 갖춘 재원으로서 자신에게 접근하는 많은 남자들을 거부해온 콧대 높은 여성이었다. 그런데 최근 맞선에서 만난 남자에게 첫눈에 매력을 느꼈으며 평생 처음으로 가슴이 설레는 강렬한 감정을 경험했다. 만남 이후 데이트 신청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몇 주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맞선을 주선한 친척을 통해 알아보았더니 그 남자가 자신을 비호감이라며 거부한 것이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Y씨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며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아 우울감과 수치심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심리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모든 대인관계를 단절하고 식욕저하와 불면에 시달리며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

우울증 증상과 원인

우울증의 핵심 증상은 우울감과 의욕 상실이다. 우울하고 슬픈 기분이 지속되면서 매사에 의욕을 잃고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 더불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먹구름처럼 밀려들면서 자존감이 저하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집중력과 판단력 역시 떨어져 현실적인 과제를 수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식욕이 급격히 저하되거나 증가해 체중 변화가 나타나기도 하고, 불면과 악몽에 시달릴 수도 있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심리적 고통과 절망감에 압도되어 자살충동에 휩싸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증상이 2주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나 현실생활의 적응에 심각한 곤란을 겪거나 심한 심리적 고통을 경험할 경우 ‘우울증(Depression)’ 또는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라고 한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하위유형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그 원인 역시 매우 다양하다. 대부분의 우울증은 실패나 상실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사건, 예컨대 △중요한 시험이나 사업의 실패 △타인의 거부나 비판을 당하는 일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또는 사별 △가족의 심한 갈등과 학대 △집단적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계기로 발생한다.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일시적으로 고통을 경험하지만 모두가 우울증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당한 부정적 사건의 의미를 확대해 파국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와 믿음을 지니는 경향이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항상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 “내가 하는 일에서 항상 성공해야 한다.”, “결코 실수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현실에서 충족되기 어려운 과도한 기대를 자신에게 부여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부정적 사건을 겪게 되면 사건의 의미를 파국적인 것으로 확대해석한다. 그 결과 “내 인생은 실패다.”, “나는 무가치한 존재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혐오할 것이다.”, “나의 미래에는 고통만 있을 것이다.”와 같은 비관적인 생각의 늪 속에 빠져들게 된다. 우울증은 부정적 사건이라는 첫 번째 화살에 이어 비관적 사고라는 두 번째 화살을 맞은 사람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인간은 대단한 적응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 부정적 사건의 충격에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우울증을 겪어 학업이나 직업의 현실적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오래도록 회복하지 못할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다행히도 우울증은 심리치료나 약물치료를 통해 잘 회복되는 심리적 장애이기도 하다. 약물치료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쳐 우울한 기분을 완화시키고 의욕을 촉진시켜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도와주지만 우울증을 유발한 근본적인 심리적 요인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달리 말하면, 유사한 부정적 사건을 겪게 되면 다시 우울증에 빠져들어 재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울증을 유발한 심리적 원인을 자각하고 수정함으로써 유사한 부정적 사건을 겪더라도 다시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심리적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우울증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인지행동치료는 우울한 사람들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지니는 비현실적인 믿음과 그로 인해 과장된 부정적 생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P씨는 주식으로 대박을 내어 빨리 아파트를 마련하려던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에 대해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더구나 자신의 상황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동굴시야(Tunnel vision)’로 인해 비관적·절망적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나는 바보이며 인생의 실패자다.”, “결코 손실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며 주택마련은 불가능하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알면 이혼하자고 할 것이다.”, “나는 가족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무능한 가장이 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바보로 여기며 무시할 것이다.”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P씨는 상담자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조금씩 과거의 손실보다 미래의 대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의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상담자와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매우 어렵지만 절망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고,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씩 호전되었다. 경제적 손실이라는 첫 번째 화살에 의한 상처는 쉽게 회복할 수 없지만 비관적 사고라는 두 번째 화살만 제거해도 우울증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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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심리적 성숙의 촉진제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우울증에 잘 해당하는 말이다. 우울증은 고통스럽지만 인간을 성장시킨다. 우울증은 실패와 상실의 고통을 통해 반성과 성찰을 하도록 촉진하는 심리적 자극제다. 인생 여정에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도 많다. 자신에 대한 비현실적 믿음과 세상에 대한 장밋빛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부정적 사건에 직면해 믿음이 무너질 때 고통스런 경험이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자신과 세상의 실상을 자각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도록 돕는 ‘성숙 촉진제’라고 할 수 있다.

Y씨는 심리상담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외모·학력·재산과 같은 외적 조건에 의해 평가하고 무시하는 삶의 태도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만심이 가득했던 Y씨는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할 수 있다는 뼈아픈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좀 더 겸손하고 유연한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은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성숙한다. 인생의 아픔을 처절하게 겪을수록 그러한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의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겪었다고 모두 심리적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울증을 계기로 자신의 마음을 깊이 성찰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인격적 성숙을 이룬 종교인이나 위인 중에는 처절한 실패와 상실로 인한 우울증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예방과 중도적 사유

요즘 심리치료 분야에서는 마음챙김을 활용한 치료법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울증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된 ‘마음챙김 기반 인지치료(MBCT, 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다. 우울증은 잘 치료되지만 재발이 잘 되는 심리 장애다. 그래서 심리치료자들은 우울증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의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 우울증에서 회복되었더라도 다시 부정적인 사건을 겪게 되면 비관적인 생각이 안개처럼 마음에 떠오르고 확산되면서 먹구름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한 부정적 생각을 현실과 동일시하게 되면 다시 우울증에 빠져들게 된다. MBCT는 마음챙김 훈련을 통해 비관적인 생각이 의식에 떠오를 때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고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이 아니다.”라고 인식하면서 그 생각에 함몰되지 않도록 돕는다. 대부분의 심리적 장애는 ‘생각’이라는 허상을 현실이라고 믿는 것, 즉 망상(妄想)에 휘둘리기 때문에 생겨난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부정적 사건의 의미를 파국화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 아니면 실패’, ‘대박 아니면 쪽박’, ‘사랑 아니면 미움’, ‘극락 아니면 지옥’과 같은 흑백논리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단적인 재난상태로 파국화한다. 그러나 실상은 극락과 지옥 사이에는 수많은 중간지대[六道]가 존재한다. 또한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불교는 인생을 중도(中道)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가르침으로써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높음과 낮음’, ‘늘어남과 줄어듦’, ‘깨끗함과 더러움’, ‘삶과 죽음’의 양극단에서 벗어나 중도적 사유를 하라고 가르친다. 높고 낮음은 상대적인 것이며,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가 생겨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우리 인생을 좀 더 넓고 다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생의 변화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게 된다. 우여곡절이 많은 우리의 인생을 중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극단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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