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희로애락 담긴 땅설법
흥미 넘어 불법으로 귀일

2019년 3월 열린 땅설법 학술대회에서 시연된 땅설법 연희장면.
2019년 3월 열린 땅설법 학술대회에서 시연된 땅설법 연희장면.

 

세상에 드러난 땅설법의 실체

4년 전, 불교계에 조용하지만 적지 않은 파문이 일었다. 몇 세대 전에나 존재했을 법한 한국의 속강 땅설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땅설법은 그간 의례를 마무리하는 설법 정도로 여겨왔으나, 그 실체를 온전히 담은 의식이 강원도의 작은 사찰에서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땅설법의 주체는 삼척 안정사(安政寺)의 다여(茶如)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이끌어온 불교공동체였다.

땅설법은 속강(俗講)과 같은 의미를 지닌 말로, 중생의 눈높이와 함께하는 법문을 뜻한다. 스승에게 땅설법을 전수한 다여 스님은 부처님이 천상의 화엄성중에게 화엄경을 설하심에 대해, 스님이 일반중생을 위해 설하는 법문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했다. 불교가 들어온 이래 승가에서는 경전내용을 쉽게 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불법을 펼쳤으니, 우리의 땅설법 또한 이러한 민간포교에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이야기와 노래와 극이 어우러져 ()’·‘()’·‘()’이 함께하는 땅설법은 지금까지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기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민중의 눈높이에 적합한 대본·연출·무대장치를 갖춘 대중설법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존재해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은 학술적으로는 물론 포교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빅터 메이어(Victor Mair)가 중국 속강의 흔적으로 이야기 구연을 주목하면서 거대한 중국 땅덩어리의 어느 외진 구석에서 이런 이야기 구연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던 가슴 설렘이 우리나라에서 실현된 셈이다. 이에 아시아권과 유럽의 학자들이 땅설법을 보기 위해 안정사를 찾았고, 네덜란드의 한 방송국에서는 몇 달째 촬영을 이어가기도 했다.

일본 엔닌(圓仁) 스님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당나라에 성행하던 속강이 그곳 신라인 집단거주지에 있는 사찰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에서도 이루어졌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당송시대의 불교와 밀접하게 교류한 본토 신라에서도 속강에 해당하는 대중설법이 성행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아울러 속강은 당나라와 무관하게 대중설법으로서 문학·예술 등 각국의 불교문화 토양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것이다.

고려말에 편찬된 박통사(朴通事)에도 우란분절에 고려의 승려가 원나라 연경 경수사(慶壽寺)에서 단주(壇主)를 맡아 목련존자구모경을 설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단주는 고려의 스님으로 총명과 지혜와 덕행이 뛰어났고, 염불 소리는 사람들을 압도했으며, 부처님의 말씀을 통달한 스님이었다. 설법을 들으려는 승속(僧俗)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모두 두 손 모아 합장한 채 귀 기울여 설법을 들었다.

땅설법이란 말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도권에서 탄압받던 불교가 서민층으로 확산한 조선시대에 성행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가 일제의 전통문화 탄압에 이어 선불교·불교정화를 거치며 의례에 소홀하게 되면서 불교 무형문화의 전통은 하나둘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근래 대형의례들이 복원되었지만, 구비전승의 땅설법은 안정사 땅설법을 통해 비로소 그 존재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다여 스님이 2018년 10월 화엄성주대재 땅설법에서 부처님일대기를 들려주고 있다.
다여 스님이 2018년 10월 화엄성주대재 땅설법에서 부처님일대기를 들려주고 있다.

 

방대한 내용, 탄탄한 구성의 서사

안정사에 전승되는 땅설법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주제는 석가모니일대기·선재동자구법기·목련존자일대기·성주신일대기·신중신(身衆神)일대기5가지로 이를 본전(本典)이라 부른다. 그 외에 별전(別典)으로 만석중득도기·안락국태자경·위제희부인만원연기·심청효행록등이 있다. 모두 부처님에서부터 재가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룬 내용이다.

그 절차는 먼저 당일 땅설법의 주제와 의미에 대해 알려주는 도강(都講), 장엄물·공양물·법구 등을 설명하는 불단진설법문(佛壇陳設法門),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하는 문답설법으로 시작된다. 이어 다양한 연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법주가 변상도·괘불 등을 활용해 본격적인 설법을 하는데, 이를 도창(導唱)’이라 한다. 중간중간에 승려·학자·전문연희자가 간강(間講)’을 하고, 땅설법을 마치면 총평으로 큰스님의 도평(都坪)’이 따르게 된다.

주제마다 탄탄한 기승전결의 시나리오를 지녀, 이에 적합한 장엄을 꾸미고 강··연의 내용을 구성해 독자적인 불교 종합예술을 펼쳐나간다. 연희는 민간에 전승되어온 극과 노래와 놀이를 수용해 스님과 재가자들이 역할에 따라 함께 행하게 된다. 다양한 민속 연희를 수용하되 불교적 내용으로 각색해야 하니 예술적 창조성이 발휘되는 영역이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있던 시절에는 간단한 도구를 지참하고 각 지방을 다니며 땅설법을 펼쳤다고 한다. 그러나 공동체 기반이 점차 사라지면서 주로 안정사의 큰 법회가 있는 날, 중단 의례를 마친 뒤 땅설법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함께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해당 법회를 위해 갖춘 설단·장엄을 활용할 수 있으며, 땅설법을 통해 의례의 주제를 흥미롭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의 안정사 땅설법은 포교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신도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삶에 종교적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전승되었다. 이로 인해 외부에는 더욱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땅설법은 주제에 따라 행하는 시기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석가모니일대기는 부처님오신날이나 영산재 때 주로 행하고, 선재동자구법기는 성도절과 수행법회 등과 짝을 이룬다. 목련존자일대기는 우란분절(백중)의 기원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니 이 시기에 적합하다. 아울러 목련존자일대기·안락국태자경·위제희부인만원연기는 모두 고통을 딛고 극락정토의 환희로움을 얻게 되는 극적 내용을 담고 있어, 백중뿐만 아니라 수륙재·영산재·예수재 등의 천도재에서 설하기에 좋다.

성주신일대기는 상달인 시월의 성주대재 때 주로 행하며, 나머지는 특정 시기와 무관하다. 그 가운데 석가모니일대기선재동자구법기는 경전과 교리를 위주로 하니, 어느 정도 공부가 무르익은 이들에게 적합하다고 하겠다.

2018년 10월 화엄성주대재 땅설법에서 성주신을 모신 성주단에 공양을 올리는 모습.
2018년 10월 화엄성주대재 땅설법에서 성주신을 모신 성주단에 공양을 올리는 모습.

 

화엄성중으로 좌정한 성주신일대기

필자가 처음 접한 땅설법은 201810월 안정사에서 펼쳐진 성주신일대기(聖主神一代記)였다. 안정사에서는 윤달이 든 이듬해 시월마다 성주신을 청해 화엄성주대재를 봉행하고 있다. 성주신은 민간에서 집을 지켜주는 가신(家神)이라 여기며 성주(城主)’·‘성조(成造)’ 등이라 부르는 신격으로, 땅설법에서는 성주(聖主)’라 표현한다.

성주신을 사찰에 모시는 것은 화엄신중의 한 분이기 때문이다. 104위로 분화된 한국의 화엄신중을 살펴보면 집을 지키는 옥택신(屋宅神), 곧 성주신이 하단의 67번째 신중으로 좌정하고 있다. 이에 성주대재는 각 가정을 옹호하는 신을 청해 부처님 법문을 듣게 하고 공양을 올리면서, 그 공덕을 신도들에게 회향하는 의례이다. 상단·중단 권공에 이어 성주권공을 행할 때, 성주신이 부처님의 인가를 받아 화엄성중에 좌정하게 된 내력을 땅설법으로 재현하게 된다.

천상의 존재인 성주가 인간에게 집 짓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세상에 내려와 고난을 겪던 중, 부처님이 설한 화엄경을 듣고 깨달아 화엄성중의 한 분인 성주신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집 짓기와 관련된 갖가지 연희가 펼쳐지고, 모함을 받아 귀양을 떠나게 되면서 수많은 토속신의 도움을 받는 여정이 펼쳐진다.

성주신일대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귀양길에 오른 성주가 성황신·우물신·마당장군·측신·군웅신·말명신·업신·산신·디딜방아신·풀신·굴뚝장군·화덕장군 등 토속신을 차례로 만나는 과정이다. 이들 신은 모두 각자의 특징을 먹으로 그린 바가지탈을 쓰고 한 명씩 등장하여 법주와 대담을 하는데, 이 대목을 신중신 탈놀이라 부른다. 탈을 쓴 신도들의 활달하고 유쾌한 기상이 잘 드러나며 구성과 연행방식도 탄탄하다.

아울러 땅설법 연희의 공통점은 흥미를 끄는데 머물지 않고 불법으로 귀일한다는 점이다. 민중의 풍습을 불교적으로 마무리하고, 불법이 담긴 극을 연행하며, 하나의 연희를 마칠 때마다 의미를 짚어간다. 따라서 땅설법의 가르침은 중층적이다. 법주의 설법과 해설이 직접적이라면,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전개 속에서 은연중에 전하는 방식이 함께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전개이다. 성주신일대기에서 귀양길에 오른 성주는 곤경을 거듭하는데, 어느 날 성주가 먼 길을 걷다가 마구간에 쓰러져 잠을 자게 된다. 이때 마구간을 지키는 군웅신(群雄神)이 소머리 탈을 쓰고 나타나,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말을 빌려준다. 성주가 누구신지 묻고, 군웅신이 춤을 추며 자신을 소개하고 나면, 성주가 묻는다.

성주 : 이 은혜를 어찌 갚으면 좋겠습니까?

군웅신 : 모든 중생이 노력한 만큼 얻는 재물에 만족하고 헛된 탐욕에서 벗어나는 진리를 알게 되거든, 나에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성주 : 그리하겠습니다.

〈성주신일대기〉에서 군웅신과 성주신이 대담하는 탈놀이 장면. 2019년 3월 땅설법 학술대회.
〈성주신일대기〉에서 군웅신과 성주신이 대담하는 탈놀이 장면. 2019년 3월 땅설법 학술대회.

 

곤경에 처할 때마다 각각의 토속신이 나타나 도움을 주는데,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물어보면 그들은 늘 중생을 향한 깨우침으로 답하는 것이다. 이러한 땅설법의 은유적 가르침은 교리에 약한 신도나 비신도들에게 쉽고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포교방식이라 하겠다. 후일 화엄성중으로 좌정한 성주신이 토속신을 모두 불러 대접하며 불법을 전하는데, 이 대목은 땅설법 현장에 모인 이들에게 불법으로 이끄는 훌륭한 극적 장치이기도 하다.

(좌) 2019년 8월 백중 땅설법에서 장엄물과 법구 등을 설명하는 모습.(우) 2018년 12월 땅설법에서 〈만석중득도기〉의 그림자인형극 연희 장면.
(좌) 2019년 8월 백중 땅설법에서 장엄물과 법구 등을 설명하는 모습.(우) 2018년 12월 땅설법에서 〈만석중득도기〉의 그림자인형극 연희 장면.

 

단절된 민속 연희의 계승

땅설법은 민중과 눈높이를 함께하고자 당대의 방대한 민속 연희를 수용하는 가운데, 오늘날 전승 맥락이 단절된 여러 예술 장르의 요소들을 전승해오고 있어 학계의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자.

전통연희 전공자들은 땅설법의 만석중득도기(曼碩衆得道記)야말로 전통 그림자극의 정수로서,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던 그림자극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라 말한다. 만석중득도기는 인형극 땅설법으로, 배접한 한지로 인물·사물·배경을 오려 인형을 만든 다음, 단층장으로 조성한 무대에서 호롱불을 켜고 인형을 조정한다. 바깥에서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법주가 강창으로 구연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를 감상하는 것이다.

전체 40마당으로 구성되어 완창에 4시간 정도 걸리지만, 땅설법 중에서는 가장 짧다. 그간 전통 그림자인형극으로 분류되어온 기존의 만석중놀이는 서사나 대사 없이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해왔고,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복원이 진행되면서 많은 혼란이 있었다. 둘 사이의 연관성은 알 수 없으나 만석중득도기는 서사를 기반으로 한 그림자극이니, 서사나 대사 없이 으로 분류되어왔던 만석중놀이와 뚜렷이 차별됨이 분명하다.

성주신일대기에 나오는 신중신 탈놀이는 사찰에 전승된 유일한 탈춤이자, ‘민간의 신들이 화엄사상에 입각해 불교의 신중으로 유입되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따랐다. 탈놀이에 이어지는 활인선생 인형극에서는 법주가 베틀에 앉아 입으로 창을 하고, 손으로 장구를 치며, 발로 인형을 조정한다. 민간에 사라져버린 발탈의 삼위일체 조정방식이 땅설법에 전승되어온 것이다. 여러 마을을 다니며 설법하던 시절에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물품을 활용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집집마다 갖추고 있던 베틀이었다.

또한 신중신일대기(身衆神一代記)에 나오는 산멕이오금잠굿은 강원도의 전통민속으로 온전하게 전승되지 않던 차에, 땅설법에 전하는 사설과 소리를 채록해 관련 학술대회에서 발표가 잇달았다. 오금잠제(烏金簪祭)는 삼척에서 단옷날 오금잠신에게 지내는 제사이고, 산멕이는 산간지역에서 문중 단위로 조상을 섬기는 제사로, 그 중에는 태백산의 문수신앙을 반영한 문수맞이가 들어있다.

이처럼 민중의 희로애락이 담긴 연희는 땅설법의 소중한 기반이기에, 민간에서 단절된 요소들을 이어올 수 있었다. 지금의 우리는 안정사에 전하는 땅설법만 볼 수 있지만, 어느 시기엔가 다른 사찰에서도 여러 모습의 땅설법이 행해졌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구미래_ 불교민속학 박사. 동국대ㆍ중앙대ㆍ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등에서 불교의 의례ㆍ무형유산ㆍ세시풍속 등에 대해 강의했고, 현재 불교민속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불교의 일생의례〉ㆍ〈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ㆍ〈존엄한 죽음의 문화사〉ㆍ〈한국인의 상징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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