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가 들려주는
​​​​​​​깨달음을 향한 발걸음

〈삽화=배종훈〉
〈삽화=배종훈〉

이 책을 쓴 황건 박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해부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5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성형외과학·수술해부학 분야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진보장을 받았다.

2020년에는 대한외상학회장, 대한두개안면성형외과학회장에 임명되었다. 이밖에도 의학용어를 번역한 〈필수의학용어집〉과 검색엔진을 만드는 등 의료계에 꼭 필요한 지식을 보급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2004년 〈창작수필〉에 수필을, 2005년 〈시와 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저서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 세계사〉·〈질그릇과 옹기장이〉·〈시인과 검객〉·〈세상을 바꾼 17명의 의사들〉이 있다.

그는 현재 인하대학교 성형외과 펠로우 교수이며, 의과대학생들에게 ‘의학과 문학’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의협신문 등 언론에 기고한 글 가운데 46편을 추려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는 과연 어떤 글을 쓰는 의사 작가일까?

관세음보살을 외는 의사

외과의사라고 하면 일반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뿐만 아니라 성형외과나 산부인과 등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를 말한다. 이들이 옷을 갈아입는, 수술실에 딸린 휴게실에는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고, 환자의 영상을 보거나 전자우편을 챙길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 정수기와 커피머신도 있다. 운동선수가 체육관에 사물함을 가지고 있듯이 외과의사들은 수술실 휴게실에 개인 옷장을 배정받는다. 옷장에는 수술실용 신발과 개인용 수술모자, 칫솔, 치약이 들어있다. 장시간의 수술에 긴장하고 피로한 외과의들은 수술과 수술 사이에 수술실 휴게실 소파에 기대고 잠시 쉬며, 다음 수술은 다시 평안한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여러 수술실에서 동시에 수술이 준비되고 진행되므로, 아침 시간에 외과의들은 대개 비슷한 시간대에 옷장을 열게 된다. 남의 옷장을 일부러 들여다볼 일은 없지만, 옆자리 의사가 옷장을 열어놓고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하면 스쳐 지나가면서도 남의 살림살이가 시야에 들어오기도 한다.

여러 해 전의 일이다. 평소에 매우 침착하고 어지간한 일에는 전혀 화를 내지 않는 후배 일반외과의사가 옷장을 열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옷장 안쪽에 엽서보다 조금 큰 종이가 한 장 붙어있었다. 글씨가 크고 굵은 펜으로 써 있어서 한눈에 들어왔다.

“여보, 수술실에 들어가시기 전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세 번 외우고 들어가셔요.”

부인이 써준 메모를 수술실 옷장에 붙여놓은 그 의사는 수술복으로 갈아입을 때마다 아내가 적어준 대로 관세음보살을 찾고 수술에 임하였던 것이며, 그래서 늘 침착하고 차분하였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보살(菩薩, bodhisattva)’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며 아래로는 중생을 구한다는 뜻으로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 외과의사의 아내는 남편이 수술하는 환자들이 무사히 잘 치유되기를 바라며,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도와주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정성을 보아서라도 그리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관세음보살이 수술실까지 오셔서 수술을 도와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수술을 시작하려 할 때, 이와 같은 아내의 격려는 긴장한 외과의사에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집중하여 수술에 임하도록 도움이 될 것이다. 감정의 기복이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 외부의 자극에도 동요되지 않는 그 마음을 마조 선사(709~788)는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라고 설법하여 생활 속에서 선(禪)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 평상심의 경지에서 수술 시야에만 집중하여 집도한다면, 수술 칼이 취모검처럼 움직여서 조직을 절개해도 별 출혈 없이 종양을 도려낼 수 있을 것이다. 수술받은 환자가 치유되면 그 수술칼은 바로 활인검(活人劍)이 될 것이다. - ‘외과 의사의 평상심’ 중에서

나는 심혈관계의 이상으로 가슴을 여는 대수술을 받은 바 있다. 예방적 차원의 수술이긴 했지만 당시 내가 받은 충격은 상당하였다.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수술받기까지 한 달 동안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수술 날을 맞았다. 큰일을 앞두고 있는 한 달은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다. 수술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취소하고 퇴원해버릴까 하는 유혹이 머리를 들었다. 수술 전날, 집도의가 병실을 찾았다. 그는 다음날 내가 제일 먼저 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며, 아무 염려 말라고 했다. 의사의 그 말이 천군만마처럼 나를 위로했다.

다음 날 아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스님 한 분이 불쑥 내 입원실로 들어선 것이다. 스님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솟았다. 스님은 나의 등을 쓸어주며 “저도 폐가 하나 없습니다. 송명근 박사 수술 잘하시잖아요. 수술 잘 받으세요.”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나는 수술실로 향하는 이동침대 위에서 ‘석가모니불’과 ‘약사여래불’을 염송(念誦)했고, 안정된 마음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환자의 입장에서 평상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체험했었는데, 황건 박사의 이 글에서는 의사의 입장에서 평상심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나와 관련된 글도 있어 흥미 있었다.

〈삽화=배종훈〉
〈삽화=배종훈〉

향기나는 부처님

얼마 전 불교방송의 ‘BBS초대석-향기로운 만남’에 초대받았다. 불교 내용이 담긴 시집 〈질그릇과 옹기장이〉를 발간한 이후 처음 받은 조명이었다. 방송에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긴장을 풀 수 없었는데 내가 학창시절 인기가 높았던 시인이 매끄럽게 진행을 유도했다. 대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담장의 백장미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그때부터 ‘나는 향기로운 사람인가? 내가 쓰는 글은 향기로운가?’ 생각했다.

내 자신을 돌아보니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대신 ‘부처님들 중에 가장 향기로운 부처는 누구신가?’하는 궁금증이 생겨 경전을 찾아보았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부처님이 한 분 계셨다.

중향국(衆香國)에 계시는 향적불(香積佛)이다. 나라의 이름이나 부처님의 이름이나 그 땅이나 음식이나 모두가 향기가 무성하다는 뜻이 들어 있다. 바로 〈유마경(維摩經)〉 ‘향적불품(香積佛品)’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비말라(Vimala)’라고 불리는 ‘유마(維摩)’는 바이샬리라는 곳의 신흥귀족으로,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도덕적으로 퇴폐하였던 시기에 현실 속에서 불법을 이루려는 원행(願行)의 모델이었다.

학자들은 〈유마경〉이 초기불교의 대승경전 중에도 상당히 일찍 성립한 것으로 손꼽는데 경전의 특징은 5막 6장의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연상시켜서 때로는 엄숙하고 때로는 희화적이며, 군데군데 극적인 반전이 무릎을 치게 하는 점이다.

‘향적불품’은 특이하게도 외계인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주의 별세계 중에 이상적인 나라를 설정하고, 그 나라 사람들과 지구인의 대화를 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많은 사람이 광속으로 순간이동을 하며 그곳에서 가져온 밥을 먹는다. 소승성문은 ‘이 밥이 너무 적어서 대중들이 모두 먹을 수 있을까?’하고 의심하지만 많은 사람이 먹고도 오히려 남는 대목은 조금도 낯설지 않다. 현대의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순간이동 기술과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신약성서〉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등이 〈유마경〉 편찬자의 무한한 상상력에 이미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마는 사찰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나 “도를 이루려고 먹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爲成道業應受此食].”고 말한다. 이 말씀은 내가 존경하는 스님이 주석하시던 그 절의 공양간에서 익히 보았던 것과 같다.

이 나라는 고통과 슬픔이 없는 나라이다. 사바세계의 중생들은 그 나라를 동경한다. 그러나 유마거사는 그들이 느끼는 슬픔이 곧 진실한 열반이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육조단경〉에는 다섯 가지 향기[五分法身香]가 있다고 말한다. 계의 향기, 선정의 향기, 지혜의 향기, 해탈의 향기, 해탈지견의 향기이다. 이 다섯 가지 향기가 있는 사람은 주변 환경을 향기롭게 하고 사람들의 정신을 맑게 하여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 향을 피우는 것[焚香]은 오분법신의 향기를 피워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라는 뜻일 것이다.

이제 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은 따스한 볕을 등에 지고 아카시아향이 펼쳐진 길을 걷고 왔다. 봄에 입적한 그 시인의 2주기가 가까이 온다. 그가 쓴 시조 ‘비슬산(琵瑟山) 가는 길’을 읽으니 글에서 스님 향기가 나는 것 같다.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음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나도 언젠가 향기가 나는 글을 쓰게 될까? 그 스님처럼 남에게 향기를 남겨주는 삶을 살고 싶다. - ‘향기로운 부처’ 중에서

황건 박사가 이 글을 쓴 지도 2년이 지났다. 5월 2일, 조오현 스님의 고향 경남 밀양에서 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불교TV 회장 성우 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스님들과 각계 인사들이 모인 성대한 행사였다. 제막식이 끝나고 참석자들은 오현 스님의 생가를 찾았다. 좁은 시골길을 한참 헤집고 들어간 곳에 다 찌그러진, 그야말로 초가삼간이 있었다. 스님은 생전에 이곳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속가와의 인연도 완전히 끊었다 한다. 그런데 제자들이 인근 땅을 매입해 스님의 기념관 조성을 기획하고 있었다.

“자식이 있는 우리들보다 스님이 오히려 행복하시네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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