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호

운남 소수민족 이주하며 전래
연이은 전쟁에 차 생산 타격
90년대 이후 회복, 절반 수출

베트남 동북부 지방 푸토(Phu Tho)는 베트남 최초의 차 농장이 세워진 곳이다.  푸토의 차밭에 새벽 안개가 걷히고 있다. ⓒGettyimagesBank

 

히말라야에서 굽이쳐 내려온 험준한 산세는 라오스를 지나며 남쪽으로 갈라져 베트남의 등뼈인 쯔엉선(Truongson, 長山)산맥을 이룬다. 이 산맥은 오늘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베트남의 국경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운남성에서 발원한 홍강(紅江)은 천길 계곡을 깎아내린 붉은 흙을 품고 흘러와 하구에 거대한 삼각주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강원도 면적만큼 넓은 홍강 삼각주 안쪽은 천혜의 옥토였다. 아열대의 기후와 풍부한 강수량, 비옥한 토지는 부지런한 농부에게 매년 이모작과 두 번의 간작(間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었다. 또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홍강이 들판에 천연의 비료를 뿌려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인류의 정착 이래, 홍강 삼각주는 누구나 탐낼 만한 농경지였다. 그렇다보니 홍강 삼각주는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자 한 수십여 민족이 나타나고 사라짐을 반복하면서 비극의 무대가 되었다. 굶주린 자의 약탈과 지키려는 자의 저항 속에 무수한 양의 피가 땅 위에 뿌려진 것이다. 또한 베트남은 한나라와 위진남북조시대, 당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 간 중국의 지배와 독립을 반복했다. 인류역사상 최강이라 불리던 몽골의 침략도 세 차례나 막아냈다. 이후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던 명나라를 20년 만에 축출했고, 프랑스·미국(1955~1975)에 이어 다시 중국(1979)과의 전쟁을 치러냈다.

중국 입장에서 베트남은 남방으로 가는 통로이자, 세력 팽창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교두보였다. 중국이 베트남을 확보하면 사실상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지배하에 둘 수 있고,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으로 나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중국의 거세고 지속적인 공격에도 지난 1000년간 저항해 국가를 지켰고, 끝내 승리를 쟁취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의 문화와 풍습은 중국과 많이 닮아있다. 음력설과 추석 명절이 있으며, 고유 문자가 없었기에 프랑스 식민지 이전까지 한자를 사용했고, 동남아 국가임에도 대승불교의 교세가 강한 나라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바로 차 문화.

베트남 전체 차밭 규모는 12만 3,000헥타르(3억 7,200만 평 상당)이며, 차 생산량은 약 109만 톤 규모이다. 현재 북부지역에서 남부지역까지 확대돼 전국 서른네 개 지역에서 차를 생산하고 있다.

 

베트남의 차 전래

하노이를 비롯한 베트남 북부지역의 길거리에서는 대중목욕탕에 있을 법한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에 홀로 혹은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의 눈에는 생경할 수 있는 모습인데, 이들은 흔히 길 카페라고 부르는 노점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진하게 우려낸 녹차에 물을 조금 섞어서 미지근한 상태로 마시는데, 무더울 때는 얼음을 넣어 마신다. 한 잔당 가격이 무척 저렴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 잠시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그들만의 길거리 차 문화라 할 수 있다.

베트남 북부지역은 세계 최대 차 생산지인 중국의 운남성(雲南省)과 가깝다. 베트남의 차 역사는 1000여 년 전 중국 운남성 고산지대에 살던 몽족(Hmong)이 베트남 고산지대로 이주해올 때 차의 씨앗을 가져와 재배를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근거는 찾기 어렵다. 다만 지금도 베트남의 북부지역인 하장(Ha Giang)·라오카이(Lao Cai)·옌 바이(Yen Bai)·라이 차우(Lai Chau) 등에는 수령 100년이 넘는 차나무가 많은데, 이는 야생 차나무라기보다는 과거의 재배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차는 수 세기 동안 베트남 문화의 일부였지만 대중화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자리 잡았다. 차의 생산량이 적어서 주로 학자·귀족을 비롯한 사회적 신분이 높은 계급에서 즐겨 마셨다. 이처럼 베트남 차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차를 마시는 문화가 대중에게 퍼진 시기는 비교적 최근이다. 티베트와 네팔, 인도를 잇는 차마고도는 기후와 지리적 조건으로 채소를 재배할 수 없었던 티베트인에게 부족한 비타민 C를 공급해주기 위해 생겨났지만, 베트남은 이러한 외부적 요인도 없었다. 더욱이 11세기까지만 해도 베트남의 영토가 하노이를 중심으로 북부지역과 중부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었다. 베트남은 11세기 이후부터 남진을 추진했으며, 18세기가 되어서야 지금의 베트남 영토가 만들어진 만큼 베트남의 차 문화는 오랫동안 북부지역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차의 50%는 홍차와 우롱차 용도로 수출하고 있으며, 나머지 50%는 국내에서 소비된다. 오늘날 베트남은 세계 여섯 번째 차 생산국이자 다섯 번째 차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사진=부두순〉

 

프랑스 식민시대 대중화

베트남의 차 생산이 지금처럼 대규모로 확대된 시기는 프랑스 식민시대 이후다. 프랑스는 먼저 커피 생산을 시도했는데, 그 결과 베트남은 오늘날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인들은 1890년경 차 생산에 적합한 지역을 조사했고, 지금은 차의 주요 생산지 중 한 곳이 된 동북부 지방 푸토(Phu Tho)에 베트남 최초의 차 농장을 설립했다. 푸토는 사서에 기록된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Van Lang, 文郞)의 수도인 퐁쩌우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푸토는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으로 오래전부터 차나무를 키웠고, 차를 즐겨 마셨던 지역이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이곳에 차 농장을 설립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후 베트남의 차 수확량이 급증했고, 홍차·녹차 등을 프랑스를 비롯해 서유럽·홍콩·싱가포르·중국 등에 수출하게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베트남 전체 차밭 규모는 123,000헥타르(37,200만 평 상당)이며, 차 생산량은 약 109만 톤 규모이다.

하지만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프랑스와의 독립전쟁과 미국과의 월남전으로 베트남의 차 생산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중월전쟁이 종전된 후인 1980년대 후반 베트남 정부가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하면서 베트남의 차 생산량은 서서히 회복했으며, 현재는 남부지역까지 확대돼 전국 서른네 개 지역에서 차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되는 차의 50%는 홍차와 우롱차 용도로 수출하고 있으며, 나머지 50%는 국내에서 소비된다. 오늘날 베트남은 세계 여섯 번째 차 생산국이자 다섯 번째 차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베트남인들은 가볍고 섬세한 맛의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차는 녹차이다. 홍차나 우롱차를 즐기는 사람은 일부다. 베트남 사람들은 차를 나눠 마시면서 인간관계를 맺는다. 현지인의 집을 방문하면 반드시 차를 내준다. 거실 식탁 위에는 찻잔과 주전자가 항상 비치돼 있다. 심지어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해도 녹차 혹은 생수를 같이 주고, 식당에서는 식후에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오까이 주의 고산지대 마을 ‘사파’. 차밭 사이로 체리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GettyimagesBank

 

커피 문화 젊은 층에 확산

베트남의 식음료 문화는 프랑스 식민시기를 전후로 나눌 수 있다. 70여 년간의 프랑스 식민지 시기와 20년 간 치른 월남전은 베트남 식음료 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인 소고기 쌀국수가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탄생한 음식이라면, 커피에 우유 대신 계란 노른자를 섞어 마시는 에그 커피는 오랜 전쟁으로 인해 모든 물자가 부족해졌던 월남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전쟁은 기존의 문화와 음식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요즈음 베트남에서는 차보다 커피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 베트남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길거리 카페를 비롯해 많은 커피숍을 볼 수 있다. 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접할 수 있다 보니 베트남은 차 문화가 아닌 커피 문화가 오히려 대세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특히 젊은 층을 대상으로 커피 문화가 빠르게 정착되어 가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도 젊은 층들은 커피를, ·장년층은 차를 선호해 세대별로 구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또 차와 커피는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커피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차를 마시는 소득별 차이도 나타나고 있다.

커피가 베트남에 처음 소개된 시기는 1857년 무렵이다.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이 전래해 북부지역에서 재배되었으나, 1900년대 초반부터는 베트남 중부 고지대 달랏을 중심으로 로부스타 커피가 재배되었다. 하지만 커피 역시 차처럼 전쟁을 겪으면서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고, 1990년대 들어서부터 생산량이 늘어나 커피 문화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목쩌우는 푸토와 함께 베트남에서 이름난 차 생산지다. 베트남 청춘남녀들이 목쩌우 차밭에서 소수민족의 전통의상을 입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차밭 입장은 무료지만, 의상 대여는 돈을 받는다. 〈사진=부두순〉

목쩌우 차밭은 인기 관광지

푸토 지역과 함께 베트남에서 이름난 또 한 곳의 차 생산지는 목쩌우(Moc Chau). 목쩌우는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서 서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하노이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이곳에는 푸르고 드넓은 차밭이 펼쳐져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선라성(Sơn La Province, 山羅省)에 속하는데, 목쩌우현의 고원지대이다. 베트남에는 약 54개 소수민족이 사는데, 이곳에는 베트남의 다른 차 생산지역처럼 주로 몽족·타이족이 살고 있다. 필자는 베트남을 여행할 때면 매번 목쩌우 차밭을 방문한다.

차 농사를 짓기 전까지 목쩌우 전역은 목장지대였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은 온대 기후와 비옥한 토지, 드넓은 목초지를 갖추고 있어 목장을 운영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베트남의 대관령이라 말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목축업이 성행하고 있어서 목쩌우 곳곳에는 직접 생산한 우유를 홍보하는 입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목쩌우는 차밭으로 더욱 유명하다. 목쩌우에서 채취한 찻잎은 대부분 기본 가공을 마친 후 중국 운남과 대만 등지로 수출돼 우롱차로 생산된다.

잘 정돈된 드넓은 차밭에서 화려한 원색의 소수민족 의상을 빌려 입은 베트남 청춘들이 사진기를 세워두고 다양한 자세와 표정을 취하며 추억을 남기기에 바쁘다. 차밭 입장은 무료인데, 의상은 돈을 받고 대여하고 있다. 이렇게 베트남 각지에서 방문한 수많은 여행객들이 목쩌우 차밭의 푸르름을 즐긴다. 어느 여행지든 마찬가지지만, 여행지에 모인 여행객들은 국적·나이·피부색을 초월해 친구가 되고 형·동생이 된다.

필자가 목쩌우를 세 번째 방문했을 때 독일에서 온 노부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독일의 한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국제연합(UN) 식량농업기구(FAO)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다 퇴직했다고 말했다. 그가 UN에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의 수행을 위해 발령받은 지역이 베트남의 목쩌우였고, UN의 지원 아래 축산업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당시 통역을 맡아 함께 근무하던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는데, 바로 지금의 부인이라고 소개했다.

베트남 외에도 캄보디아·콩고 등 오지에서 농업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그는 퇴직 후 독일과 베트남을 오가며 UN에서 익힌 농업 관련 기술과 정보를 베트남 정부에 컨설팅을 해주며 베트남에서 노후를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 부부와 가끔 만나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셨는데, 한 번은 식사 초대를 해 집을 방문했더니 반기문 전 UN사무총장과 단둘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베트남 목쩌우 차밭이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인 셈이다.

베트남 북부지역의 길거리에서는 대중목욕탕에 있을 법한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에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길 카페’라고 부르는 노점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다. 〈사진=부두순〉

 

다시 찾고 싶은 곳, 목쩌우

베트남의 차 문화는 약 1000년의 세월 동안 이어져 왔지만, 프랑스 식민시기에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현재 또 다른 식민시기의 산물인 커피 또한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 앞으로 베트남 사회에 차와 커피가 공존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처럼 차 문화가 쇠퇴하고 커피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비슷한 경우는 터키(바뀐 국가명은 튀르키예공화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스만 제국(1299~1922) 시절 번창했던 커피 문화는 제국 멸망 후 커피 공급선을 찾지 못하면서 쇠퇴했고, 대체재로 홍차가 급부상했다. 그 결과 현재 터키는 홍차를 많이 마시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에서 아무리 커피가 대세가 되더라도 차 문화는 쉽사리 소멸하지 않을 것 같다. 오랜 기간 차 문화를 이어왔고 충분한 생산량을 가지고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다만 젊은 층의 커피 선호로 인해 차를 마시는 인구가 감소하게 되면,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차는 내수보다 수출 쪽으로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앞으로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해외여행이 보다 자유로워지면 또다시 베트남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이번 여행길에도 목쩌우 차밭을 방문할 계획이며, 또 다른 곳의 차밭과 베트남의 차 문화·역사·차에 얽힌 에피소드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부두순 _ 블로거, 생활 여행자. 30여 년간 건설업계에서 종사했다. 은퇴 후 인생 2막을 여행과 생활을 함께하는 생활 배낭 여행자로 살고 싶어 베트남·라오스 등 동남아시아를 위주로 수년 간 여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생활 배낭 여행자로 지낼 수 없게 되어 블로그 객사를 꿈꾸는 여행을 운영하면서 그동안의 여행기록을 게시하고 있다. 생활 배낭 여행자로 살고자 또 다시 배낭을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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