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시간 견디고자
<화엄경> 사경 다시 시작
​​​​​​​부정적 기운 맑아져

만 86세 노모는 아침마다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소)에 가신다. 오전 8시 40분쯤 센터의 승합차가 엄마를 모시고 갔는데 얼마 전부터는 10시로 늦췄다. 아침 일찍부터 케어센터에 가 있으려니 지루하시다는 거다. 게다가 허리통증이 심해서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하소연을 하신 까닭이다.

데이케어센터 등원을 늦췄더니 오히려 어머니의 조바심이 커졌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침대 끝에 걸터앉아서 승합차가 도착했다는 전화만을 기다리시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뛰어나오며 “전화 왔니?”라시는데, 그 성화를 견디는 건 오로지 내 몫이 되었다. 아침 설거지와 함께 대충 집안 정리를 하고도 엄마의 조바심을 견디면서 오전시간을 보내려니 사실 짜증도 밀려왔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화엄경〉 사경이다. 예전부터 해오다 주춤했던 사경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자는 마음에서였다.

〈화엄경〉의 앞부분은 수많은 불보살님과 불국토가 등장하고 있어 현실감은 떨어진다. 허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는 하소연, 전화가 왔느냐는 확인, 복지사들이 나를 깜박 잊어버린 건 아니냐는 불안 등이 뒤엉킨 노모를 상대하려는 내게 <화엄경>의 중중무진한 법계는 허공의 뜬구름 같은 소식일 뿐이었다.

그러다 경전에 등장하는 불국토 이름과 부처님 명호가 참으로 복되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행복한 글자로만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졌다.

어느 사이 경전에서 묘사하는 불국토를 머리에 그려보고 행복과 지혜를 뜻하는 단어로만 이뤄진 부처님 명호를 옮겨 쓰면서 애초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던 부정적인 기운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법정 스님은 〈그 여름에 읽은 책〉이라는 수필에서 “해인사 소소산방에서 〈화엄경〉 ‘십회향품’을 독송하면서 한여름 무더위를 잊은 채 지난 적이 있다.… 한여름 그 비좁은 방에서 가사와 장삼을 입고 단정히 앉아 향을 사르며 경을 펼쳤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비가 올 듯한 무더운 날에는 돌담 밖에 있는 정랑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왔다.”라는 문장을 보자면, 맑고 향기롭기만 했던 독송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현실의 문제에 마음이 바싹 메마른 나의 마음자리만큼이나 스님의 <화엄경> 독송의 자리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십회향품’을 10여 회 독송하시면서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고 고백하셨다.

늙음과 병듦에 시달리는 노모와의 아침시간을 어쩌지 못해 사경을 이어가고 있는 내게도 그런 회심의 순간이 종종 찾아오고 있다. “중생이 법 그릇이 아니면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없지만 마음에 즐거움이 있는 이는 그 어떤 곳에서라도 부처님을 보리라.”는 ‘화장세계품’의 문장에 이르러서는 ‘혹시 우리 엄마가 부처님인데 내가 법 그릇이 아니라서 몰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기 때문이다.

데이케어센터의 승합차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아쉽지만 오늘의 내 〈화엄경〉 사경이 끝났다. 지팡이를 짚은 부처님이 득달같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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