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젊은 세대
부족한 현실 한탄보다
​​​​​​​희망의 의지 불태우길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편가르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나라는 그 강도가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어 온 지역감정, 학연(學緣), 빈부갈등 등도 지성적 판단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한국인들은 그 감성적 판단을 가족관계, 사회적 질서에까지 연결시킨다. 그 대표적 예가 이른바 금수저 논쟁이다. 경제력이 있고, 사회적 고위직에 있는 부모를 만나면 삶이 한결 수월해진다. 등록금 걱정, 용돈 걱정이 있을리 없고, 결혼 자금, 내 집 마련 등의 고민거리도 없다.

그러나 과연 금수저가 행복할까. 비유하면 금수저는 인삼형 인간이다. 사람의 손에 키워지면서 온실 속의 행복만을 만끽한 존재일 뿐이다. 반면 흙수저는 산삼형 인간이다. 왜 산삼이 인삼보다 귀할까. 산삼은 모진 풍파와 자연의 재해를 꿋꿋하게 이겨냈기 때문이다.

〈유마경〉에는 ‘향적불품(香積佛品)’이라는 인상적인 은유가 있다. ‘향적’이라는 말은 향기가 모여 쌓였다는 의미로, 그 향적[나라]에 사는 이들은 말할 때도 향기가 물씬 풍긴다. 옷에서도 음식에서도 향기가 만발한다. 이 이상적인 세계 사람들을 접한 사바세계의 사람들은 향적나라를 동경한다. 거칠고 험한 이 세상과 비교해 보면 바로 극락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사람들은 향적세계에 왕생하려는 원을 세우게 된다. 그때 유마거사는 그 잘못을 꾸짖는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안락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왕생해 버리면, 지금의 이 차가운 현실은 누가 제도할 것인가 반문한다. 필자는 이 향적이라는 아이디어가 외계인에 대한 고대인들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 이상세계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아픔을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승화하는 극적인 반전이 놀라울 따름이다.

흙수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만 해서는 안된다. 그 부족한 현실을 희망의 미래로 바꾸려는 의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실제로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존경을 모으는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의 처지를 발판삼아 도약의 계기로 삼은 의지적 존재인 경우가 많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성공의 의미를 잘 되새길 수 있는 인격을 갖는 법이다. 인생은 일상적인 시각처럼 허무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길다면 길수도 있고, 무엇을 이루기에는 충분한 시간일 수 있다. 따라서 조급하게 성취를 꿈꿀 필요는 없다. 원래 출세가 빠르면 별세도 빠른 법이다.

필자는 요즘의 젊은이들이 결코 불행한 세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값이 오르고 취직도 힘든 세상이기는 하지만 긍정적 요소 또한 많은 세대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한류(韓流)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BTS 등의 대중적 인기는 물론이고, 드라마·소설 등 거의 모든 문화현상의 주류를 한국이라는 프리즘으로 이해하고 있는 특이한 세대이다. 그 자유분방함이 이들 성공의 열쇠일 수 있다. 적어도 기성세대가 겪었던 암울한 미래는 그들의 사전에 없다. 더구나 풍요 속에 태어나서 컴퓨터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이룩할 미래의 조국은 지금보다 훨씬 성숙하고 아름다운 세계이리라 짐작한다. 흙수저들의 분발과 각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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