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생명력, 아름다움 상징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
​​​​​​​지화엔 지극한 염원 담겨

사월은 갖가지 봄꽃들로 설레는 달이다. 고운 색상으로 뒤덮인 산과 들을 보노라면 속세를 벗어난 듯 아름다움에 취하게 된다. 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찬양과 숭배,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전할 때 즐겨 선택되어왔다. 어여쁜 이의 얼굴을 ‘화용(花容)’이라 하고, ‘꽃 같은 시절’이란 말로 화려한 전성기를 표현한다.

과거에 장원급제한 이에게는 어사화(御史花)를 내려 영화로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마른 가지에 싹을 틔워 신비롭게 피어나니 생명력을 상징하고, 불성(佛性)의 열매를 꽃피우는 의미도 지녔다. 따라서 불교에서 꽃은 부처님께 올리는 소중한 공양물이자, 정토왕생을 바라는 상징물로 널리 쓰인다. 의례에서는 생화 대신 한지를 염색하여 만든 종이꽃[紙花]을 주로 쓴다. 우리나라에서 이른 시기부터 지화를 쓴 것은 겨울이 길어 꽃이 귀한 데다, 가능하면 생화를 꺾지 않고자 함일 것이다. 조선 중·후기 감로도(甘露圖)를 보면, 공양물로 지화가 빠짐없이 올라가 있다. 그림 속의 꽃을 생화가 아닌 지화로 보는 것은, 피는 시기가 서로 다른 꽃이 함께 하고 녹색ㆍ갈색 등 실재하지 않는 꽃 색깔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참관한 수륙재(水陸齋)에서도 모란·작약·국화·연꽃 등 갖가지 지화가 도량을 화려하게 장엄하였다. 지화 꽃꽂이는 난등(蘭等)이라 부르는데, 이는 난초를 그리듯 가지런히 장식한다는 뜻이다. 수륙재에서는 위로 갈수록 꽃송이를 많이 꽂아 부채를 펼친 것처럼 만든 부채난등을 불단의 양쪽에 장엄하고, 화병에 타원형으로 꽂은 팽이난등은 중단을 비롯한 각단에 올랐다. 특히 하단의 삼면을 수많은 연꽃과 연잎으로 둘러 거대한 연화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영가와 고혼의 왕생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염료를 채집했다가 절구에 빻아 하나하나 염색하고, 손으로 다듬어 봉오리를 만드는 과정은 긴 시간과 정성이 따르는 일이다. 최명희는 소설 〈혼불〉에서 “지화에는 생화로도 못 당할 인간의 지극함이 깃들어있어, 불당에서는 부처님께 온 마음의 향기를 바치는 정성이 되고, 굿당에서는 원혼의 넋을 달래며 신(神)을 울리는 해원(解寃)이 된다.”고 하였다.

또 혼례에서는 잔칫상에 올려 꽃 같은 앞날을 축복하고, 상례에는 꽃상여를 꾸며 저승길의 서러움을 감싸고 극락왕생을 빌어준다. 이에 그녀는 “사람의 심정을 담은 것 가운데 이만한 지물(紙物)이 다시 없다.”고 찬탄하였다. 비록 향기는 없지만, 인간의 지극한 정성과 염원이 담긴 꽃이니 더없는 생명력이 깃든 셈이다.

수륙재에서는 봉송과 함께 동참대중이 모두 지화를 한 송이씩 들고 소대로 행렬을 이루었다. 기왓장으로 둥글게 만든 커다란 소대는 연꽃과 연잎으로 연화단을 꾸몄고, “불! 법! 승!”을 외치며 거화봉으로 소대에 불을 붙이자 지화는 모두 불 속에 던져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사라짐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빛나는 순간이다. 사월, 곧 져버릴 봄꽃의 아름다움을 보며 지화의 염원이 함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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