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영화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 알려주고 파”

2021년 12월 초, 영화 ‘칼융이 보내온 편지(A Letter from Carl Jung)’가 ‘뉴욕국제필름어워즈(New York City International Film Festival)’·‘베스트 이스탄불 영화제(Best Istanbul Film Festival)’·‘포트 블레어 국제영화제(Port Blai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칼융이 보내온 편지’는 윤용진 감독(60·법명 헐화·歇和)이 영화 ‘할(喝)’·‘선종 무문관’에 이어 세 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CF감독으로 잘나가다가 돌연 불교에 심취해 불교영화를 만들게 된 사연을 묻자 “공황장애가 나를 불교로 이끌었다.”고 대답했다. 서울 용산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삶과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픽디자이너에서 CF감독으로

윤용진 감독은 1963년 서울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족의 대부분이 학자·의사였던 집안에서 그는 유달리 미술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지나가는 관심 정도로 여겼던 가족들은 그가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다.”며 극구 만류했다.

가족들의 설득에 윤용진 감독은 꿈을 접고, 1982년 인하대학교 환경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자 학업에 매진했다. 졸업 후에는 바로 동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해 한 학기를 마친 뒤, 25세에 입대했다. 윤 감독은 군 생활을 하면서 미술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래보려고 제대 후 복학을 미루고 집 근처 디자인학원에 다녔다.

1982년 여의도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친구와 윤용진 감독(오른쪽).
1982년 여의도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친구와 윤용진 감독(오른쪽).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마음이 편해졌다.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났다. 그는 ‘이게 내 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다시 부모님을 설득했다. 아들이 미술에 대한 꿈을 접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부모님은 그의 뜻을 존중해주었다. 윤 감독은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디자인전문학교(東京デザイナー学院)’에 입학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었지만, 디자인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힘든 줄도 몰랐다. 그는 3년여의 유학생활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와 광고대행업체인 오리콤의 그래픽디자이너로 입사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내부사정에 의해 CF프로듀서로 인사발령이 났다

전공도 달랐고, 실무경험도 전무했던 터라 맨땅에 헤딩하듯 현장에서 부딪히며 일을 익혀야했다. 이때 윤 감독은 CM플래너(광고설계자) 출신의 일본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와 협업을 하게 됐다. 윤 감독은 그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았고, 함께 일하며 촬영·연출과 관련된 다양한 노하우도 배웠다.

3년 후 윤 감독은 외부프로덕션으로 이직해 CF감독으로 활동했고, 35살에는 자신의 프로덕션을 개업했다. 그는 라이코스·캐논·모토로라 등 기업의 브랜드 광고를 다수 제작하며 잘나가는 CF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불혹(不惑)’의 나이가 됐다. 슬하에 두 딸을 뒀고, 프로덕션도 잘 운영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스스로 ‘성공’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마흔이 됐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뜻 모를 허무함이 온몸에 퍼졌다.

예고 없이 찾아온 허무함과 허탈감은 서서히 불안으로 변했고, 결국 공황장애로 악화됐다. 시도 때도 없이 불안·과호흡 증상이 나타났고, 머리가 멈추는 느낌과 가슴 답답함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중요한 회의에서 실수도 하고, 밤잠을 설치는 등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겼다. 그 무렵 아내와 자녀들은 교육을 위해 호주로 건너가 있어서 윤 감독 혼자 공황장애를 견뎌내야 했다.

“공황장애 증상은 제게 ‘죽음’에 대한 공포로 다가왔어요. 새벽에 증상이 발현하면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소파에 앉아 TV 채널만 하염없이 돌렸어요. 그러다 우연히 틀게 된 채널에서 ‘염불 소리’가 흘러나왔어요. 그 소리를 듣는데, 숨통이 트이고 호흡이 제대로 돌아오더군요. 그 순간 염불 소리는 제게 생명줄처럼 느껴졌어요.”

2003년 캐논 카메라 CF 촬영 당시, 정일성(가운데)·이상문 촬영감독과 함께. 
2003년 캐논 카메라 CF 촬영 당시, 정일성(가운데)·이상문 촬영감독과 함께. 

불교 공부로 공황장애 치료

증상이 완화돼서 뛸 듯이 기뻤지만, 도대체 염불 소리가 무엇이기에 증상이 완화됐을까 궁금했다.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불교 공부를 결심했다. 호기롭게 〈반야심경〉부터 펼쳤는데, 낯선 용어와 전무한 배경지식 탓에 한 문장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시중에 나온 해설서도 읽어 봤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그 의미를 해석하겠다고 결심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한 단어를 찾으면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하게 나와서 쉽지 않았다. 꼬박 일주일이 걸려 〈반야심경〉 첫 구절을 해석했다. 그렇게 불교 공부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불교는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동아줄이자,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의 영역이었다.

윤용진 감독은 불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인연 있는 사찰이나 스님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독학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또 프로덕션을 운영 중이라 따로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대신 매일 불교방송, 불교TV 등에서 방영하는 ‘불교와 물리학’과 같은 강의를 서너 시간씩 듣고 정리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르자, 어느새 ‘나는 이제 불교에 대해 잘 안다.’는 자만심이 샘솟았다.

“당시 다른 사람들보다 불교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자부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을 찾아봤어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들으면, 나도 그 정도의 깨달음을 얻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게 경허 선사(惺牛, 1849~1912)의 어록을 찾아봤는데, 정말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이분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선문답 공부를 시작하게 됐지요.”

윤 감독은 경허 스님의 말을 이해하고자 선(禪) 공부를 결심했다. 곧장 〈벽암록(碧巖錄)〉을 구입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열었지만, 이내 “도대체 이게 뭔 소리야!”하며 책을 내팽개쳤다. 그는 책의 내용이 말장난처럼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했고 조금 화도 났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조사했다. 그는 선문답을 이해하는데 노장사상(老莊思想)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노자와 장자에 대해 한참을 공부하고 다시 책을 펼치자 조금씩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윤 감독은 선 공부에 심취하게 됐다.

그는 불교를 공부하면서 ‘사고의 틀’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또 그토록 괴롭히던 공황장애에서 벗어나면서 정신적 자유로움을 느꼈다. 윤 감독은 자신처럼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떤 방법으로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영화’를 제작해서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선종 무문관’은 다양한 고뇌에 직면한 현대인을 각기 다른 깨달음을 구하는 다섯 스님에 빗대 표현한 영화다. ‘선종 무문관’의 스틸 컷(Still Cut). 
2018년 개봉한 영화 ‘선종 무문관’은 다양한 고뇌에 직면한 현대인을 각기 다른 깨달음을 구하는 다섯 스님에 빗대 표현한 영화다. ‘선종 무문관’의 스틸 컷(Still Cut). 

“영화로 불교 포교 앞장설게요”

영화 제작을 결심한 후 본업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곧장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두 달여 만에 시나리오를 탈고했고, 곧장 스태프와 배우를 모집했다. 영화를 찍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을 바쁘게 했다. 그렇게 제작한 영화가 바로 2010년 10월 개봉한 ‘할’이다.

영화 ‘할’은 불교와 가톨릭의 교리를 소재로 우천 스님이 청송 스님과 1박 2일간 화두 여행을 떠나며 부처수업을 받는 게 줄거리다. 윤 감독은 ‘부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은 하나의 가르침이고, 모든 종교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영화에 담고자 했다.

불교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에 불교계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그 덕에 제작비 걱정을 줄일 수 있었고, 영화의 도입부와 엔딩을 장식하는 통도사 사명암에서의 촬영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영화가 완성된 뒤에는 서울 조계사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영화는 불교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을 하진 못했다.

“애초에 상업성을 노리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보니 성적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영화를 촬영하면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됐죠. 전 통도사승가대학장 현진 스님과도 그때 인연이 닿았어요.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고, 스님께서 직접 법명을 내려주시기도 했어요.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부처님의 가피 덕분에 맺은 크고 작은 인연들은 이후 영화작업에 큰 도움이 됐지요.”

첫 번째 영화를 제작한 후에도 선어록에 푹 빠져 살았다. 서점에서 무심코 선문답만 담긴 〈무문관(無門關)〉을 구입했다. 소책자라 크기가 작아서 출퇴근길에 들고 다니며 읽었는데, 문득 ‘선문답으로만 이뤄진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영화 ‘선종 무문관’의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영화는 경주 보림선원을 배경으로, 다양한 고뇌에 직면한 현대인을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승에 빗대 표현했다. 현대사회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선종 무문관’도 저예산 독립영화다 보니 예산과 시간에 쫓겼다. 부족한 제작비를 채우기 위해 사비를 들였다. 그와 십여 년간 함께 한 스태프들도 급여를 마다하고 영화 제작에 힘썼다.

수많은 사람의 원력으로 ‘선종 무문관’ 제작을 마쳤지만, 상영관을 찾기 힘들어 개봉이 미뤄졌다. 그러던 중 “영화 ‘선종 무문관’은 다섯 명의 수행자와 함께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2017년 ‘조계종 불교언론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게 됐다. 이 기세에 힘입어 상영관을 찾을 수 있었고, 영화는 2018년 12월 무사히 개봉됐다. 이어 2019년 휴스턴 국제영화제(Houston Independent International Film Festiva)에서 종교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2019년 영화 ‘선종 무문관’으로 휴스턴 국제영화제 종교부문 금상을 수상한 뒤 배우들과 함께. 
2019년 영화 ‘선종 무문관’으로 휴스턴 국제영화제 종교부문 금상을 수상한 뒤 배우들과 함께. 

이후 윤용진 감독은 호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호주에서도 그는 불교 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자신의 전공인 그래픽디자인을 살려 불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중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코로나19로 외부활동이 줄면서 윤용진 감독은 불교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당시 그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에 빠져있었다. 칼융의 저서 〈심리학과 종교〉가 불교를 분석 심리학적으로 정리한 내용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 오묘한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면 어떨까?’ 고민했다.

차기작 소재를 찾던 중 무속인 이해경 씨와 강영호 사진작가의 ‘접신과 흡혼’ 공연을 접했다. 공연은 이 씨가 벌이는 굿판을 강 작가가 사진을 찍고 무대 뒤 스크린에 즉각적으로 띄워 관객에게 선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윤 감독은 두 사람의 공연과 칼융의 사상, 초기 경전의 ‘십무기(十無記, 부처님이 답하지 않은 열 가지 질문)’를 중심으로 영화 제작에 나섰다.

“이번 영화에서는 ‘인간은 고통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풍요로워졌지만, 모두 ‘행복’과 ‘힐링’을 외치고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고, 힐링이 필요하다는 말이잖아요.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성장을 줄 수 없다는 말이죠. 고통을 회피하고, 편안함에 안주하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고통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공황장애를 겪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이를 극복하고, 더 큰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 저처럼 말이죠.”

이 영화가 4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칼융이 보내온 편지’이다. 뉴욕국제필름어워즈를 비롯한 21개 영화제의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올해 국내에 개봉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를 제작한 윤 감독은 앞으로 ‘생활 속에 들어온 법문’을 주제로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꿈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계속해서 불교 공부를 해왔고, 그 안에서 느낀 부처님의 깊은 뜻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영화 제작뿐만 아니라 불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메타버스 시대에 발맞춰 ‘가상사(假想寺)’라는 새 프로덕션도 준비 중이다.

힘이 닿는 데까지 불교 포교를 위해 앞장서겠다는 윤용진 감독.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磨斧爲針]’는 말처럼,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려는 그의 행보에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함께하길 기원한다.

윤용진 감독은 불화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 중이다. 윤 감독이 제작한 ‘살불살조’와 ‘아미타삼존도’. 
윤용진 감독은 불화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 중이다. 윤 감독이 제작한 ‘살불살조’와 ‘아미타삼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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