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마음 관조한 후
소통 기회로 승화시켜야”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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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사회는 갈등과 분노가 심각한 수준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진영 갈등뿐만 아니라 남녀 갈등, 세대 갈등, 노사 갈등, 빈부 갈등 그리고 가정에서는 부부 갈등과 부모-자녀 갈등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렇게 마음속에 분노의 폭탄을 지닌 사람을 잘못 건드리면 쉽게 폭발하곤 한다. 매번 뉴스에서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채 폭력을 휘두른 사건을 보도하는데, 이때 ‘분노조절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를 ‘분노사회’ 또는 ‘울분사회’라고 진단한다. 실제 심리상담소에도 분노조절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 대학생인 P양은 주기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문제로 상담자를 찾아왔다. P양에 따르면, 기분이 상해 있을 때 누가 성질을 건드리면 심한 짜증이 나면서 욕설을 퍼붓거나 폭력을 행사하곤 한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더워서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한 아줌마가 말도 없이 창문을 닫아 버렸다. 기분이 상해 “더워서 창문을 열었는데 왜 닫느냐?”고 쏘아붙였더니 “어린 것이 왜 째려보느냐?”고 꾸짖듯이 말했다. 성질이 나서 “나이 많으면 나이 든 값을 해야지, 아무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문을 닫으면 되느냐? 나이를 더 처먹었으면 그렇게 해도 되느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무안했는지 아줌마는 다음 정거장에 내려 버렸다. 집에서는 엄마와 자주 싸우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성질이 나면 쌍욕(이년, 저년)을 퍼붓고 때리기도 한다. P양은 이렇듯 사소한 일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족과 사이가 나쁠 뿐만 아니라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했다.

#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남성인 Y씨는 평소 말이 없고 차분한 편인데 술을 마시면 매번 동료직원에게 싸움을 걸거나 폭력을 사용하는 문제로 상담자를 찾아왔다. 둘째로 태어난 Y씨는 공부 잘하는 형을 편애하는 부모로부터 차별과 무시를 당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입시험에 실패해 고졸 신분으로 취업한 Y씨는 동료직원들에게 학력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으며, 업무에 관한 지적이나 비판을 받을 때마다 동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몹시 화가 났다. 평소에는 분노를 참으며 마음에 쌓아두었다가 회식 때 술을 마신 후 직장동료에게 시비를 걸면서 분노를 폭발시키곤 했다. 술이 깬 다음 날에는 잘못을 빌면서 재발방지를 약속하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을 사용하는 일이 반복되어 한 직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고 있다. 이 문제로 인해 Y씨는 부모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자 마음의 짐이 되고 있다.

기능적 분노와 역기능적 분노

분노(忿怒, Anger)는 자신에게 좌절과 피해를 준 사람을 향한 적대감으로 가볍게는 짜증에서 심하면 살해 충동을 느끼는 격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도로 표출될 수 있다. 피해의 정도가 심할수록, 그 피해가 상대방의 의도적 행위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분노도 더욱 강렬하게 발생한다. 분노는 피해를 준 상대방에게 보복하려는 공격충동을 촉발하는데, 다양한 유형의 공격행동(째려보기·비난하기·욕하기·폭행하기 등)으로 표출된다.

불교에서는 분노를 세 가지의 근본적 번뇌, 즉 삼독(三毒)의 하나로 경계한다. 분노는 인간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감정이지만 항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부당한 위협이나 피해를 입게 될 상황에서는 분노를 느끼며 상대방에게 저항하는 것이 자기보호와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분노는 인간의 생존과 적응을 돕기 위해 진화해온 기본감정으로 부당한 위협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를 제공한다. 문제는 P양이나 Y씨처럼 분노가 과도하거나 부적절하게 표출돼 부적응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다.

심리학자들은 분노를 기능적 분노(Functional anger)와 역기능적 분노(Dysfunctional anger)로 구분한다. 기능적 분노는 상대방의 잘못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에서 유발되며, 분노의 강도가 중간 정도를 넘지 않는다. 또한 미래의 피해를 예방하는 문제해결적 행동으로 표현되며 자신과 상대방을 불필요하게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반면에 역기능적 분노는 빈도, 강도, 지속기간에 있어서 과도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특히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함으로써 부적응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현재 ‘분노조절장애’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정신의학분야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다. 역기능적 분노를 주된 증상으로 나타내는 정신장애는 다양하며 그 예로는 적대적 반항장애·간헐적 폭발성 장애·품행장애·경계선 성격장애·반사회성 성격장애 등이 있다.

분노가 유발되는 심리적 과정

분노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에 대한 생각에 의해 유발된다. “‘나’와 ‘나의 것’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분노를 일으키는데, 이러한 생각을 ‘분노촉발사고(Anger triggering thoughts)’라고 한다. 역기능적 분노를 지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무시나 비난으로 왜곡하거나 과장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저명한 심리치료자인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에 따르면, 역기능적 분노를 나타내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비합리적인 생각을 지닌다. 첫째, 다른 사람에 대해서 비현실적인 과도한 기대를 지닌다. 예를 들면 “당신은 항상 나를 정중하게 대우해야 한다.”, “당신은 결코 나를 무시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등이다. 둘째,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고 과장되게 평가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렬한 분노감정을 느끼게 된다. 셋째, 자신의 기대를 좌절시킨 사람은 “사악한 존재이며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은 보복적인 공격행동을 유발하게 된다.

역기능적 분노를 나타내는 사람들은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학대나 차별의 심리적 상처로 인해 취약한 자존감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마치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은 바람만 스쳐도 강렬한 통증을 느끼듯이, 심리적 상처가 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소한 행동에도 자존감의 위협을 느끼며 강렬한 분노로 대응하게 된다. P양은 성장과정에서 냉정한 어머니로부터 학업성적에 대한 심한 압박과 학대 수준의 처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모의 부부갈등과 이혼으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Y씨 역시 형에 대한 깊은 열등감과 더불어 부모의 차별적 양육으로 인한 깊은 좌절감과 분노를 지니고 있었다. 유식학(唯識學)의 용어를 빌리면, 이러한 성장과정의 경험들이 무의식의 마음 밭에 종자(種子)로 심겨있다가 외부자극의 인연(因緣)을 만나 분노촉발사고로 현행(現行)해 분노라는 번뇌를 유발하는 것이다.

상담자는 일차적으로 내담자와 신뢰관계를 맺은 후에 역기능적인 분노를 유발하는 비합리적인 생각들을 세밀하게 탐색해 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내담자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있는 심리적 상처를 발굴해 따뜻하게 위로하면서 치유하는 동시에 공감적 지지를 통해 내담자의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분노의 문제를 지닌 내담자를 상담하다 보면, 우리의 삶이 인과업보(因果業報)의 촘촘한 그물로 연결돼 있음을 깨닫게 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이 있듯이, 가족이든 남이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심리상담은 가족관계 속에서 얽히고 설킨 악업(惡業)의 악순환을 해소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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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가장 중요한 수행 과제

분노는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수행 과제이기도 하다.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서 치솟아 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밑바닥 생각들을 찬찬히 관조하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마음 밑바닥에는 연약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엄청난 인정 욕구가 존재한다. 과도한 욕망은 좌절감과 분노를 초래하게 된다. 더구나 자존감의 취약한 부분을 자극하는 사건은 강렬한 분노를 유발한다. 분노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의해 촉발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아상(我相)과 아집(我執)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분노의 감정은 일으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범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는 세속의 인간관계에서 분노는 피할 수 없는 괴로운 감정이자 위험한 마음의 불길이다. 그래서 분노는 우리의 몸과 입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의 주된 원천이 된다. 분노의 감정을 일으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해치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마음으로 짖는 의업(意業)으로 마음 밭에 미움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이런 미움의 씨앗은 즉각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더라도 마음 밭에 뿌리를 내려 더 강렬한 분노로 성장할 수 있다.

역기능적 분노의 가장 큰 문제는 분노를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말이나 욕설을 내뱉는 것은 구업(口業)을 쌓는 행위이다. 말은 허공을 오가는 소리에 불과하지만 상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만드는 언어적 폭력이다. 분노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육체적 폭력으로 표출돼 신업(身業)을 쌓는 행위이다. 많은 사람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언이나 폭력으로 표출한 후 그 대가로 돌아온 고통의 과보를 뒤늦게 후회한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분노의 감정을 덜 느끼도록 돕는 동시에 분노를 덜 파괴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도록 돕는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분노를 참는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분노를 지속적으로 억제하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분노는 쌓아두면 위험하기 때문에 지혜롭게 잘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분노를 과격하게 표출할 경우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를 바라보도록 돕는다. 즉, 분노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생각하도록 격려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의 좌절감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되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비폭력적인 언어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다.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해 갈등을 더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서로의 바람을 인식하고 서로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소통의 기회로 승화시키는 지혜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분노감정에 휩싸여 공격충동을 느낄 때가 바로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순간이다. 분노하는 마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분노감정을 현저하게 완화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 좀 더 편안한 삶을 유지하려면 분노하는 마음을 깨어서 지켜보는 수심(守心)의 노력이 필요하다.

권석만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적 장애의 원인을 밝히고 치유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 이상심리학〉·〈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인간 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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