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마의 주검으로
‘육신 집착 벗어나라’ 가르쳐

라자가하(Rājagaha)의 상인들은 창녀 암바팔리(Ambapālī) 덕분에 베살리(Vesālī)시가 더욱 빛나고 화려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라자가하에도 아름다운 유녀가 있어야 한다고 빔비사라(Bimbisāra)왕에게 건의했습니다. 빔비사라왕이 허락하자, 상인들은 아주 예쁜 여인 살라바티(Sālavati)를 공식적인 유녀로 위촉했습니다. 살라바티와 하룻밤 동안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많은 돈을 내야만 했습니다.

몇 해가 지나 유녀 살라바티가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기는 길에 버려졌고, ‘지바카(Jīvaka)’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살라바티의 두 번째 아이는 딸이었습니다. 딸은 유녀라는 어머니의 직업을 이을 수 있어서 버림받지 않아도 되었기에, 지바카의 경우와 달리 잘 양육되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시리마(Sirima)’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살라바티가 죽자 시리마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공식적인 유녀로 인정받았습니다. 시리마와 하룻밤을 지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1,000냥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시리마는 라자가하의 큰 부자인 수마나의 며느리 웃타라(Uttara)에게 1만 5,000냥을 받고 고용돼 보름간 그녀 대신 그녀의 남편을 모시는 아내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리마는 웃타라에게 질투심을 느껴 끊는 버터기름으로 그녀를 해치려고 한 악업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 후 웃타라의 인욕과 자비심으로 인해 부처님께 귀의했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예류과를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금강 294호 참조〉

유녀 시리마는 예류과(豫流果, 수다원과)를 성취한 다음 날,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대해 대규모로 음식공양을 베풀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매일 여덟 명의 수행자를 초청해 음식을 공양했습니다. 초청 첫날부터 여덟 명의 비구들은 차례대로 시리마가 있는 집으로 가서 음식을 공양받았습니다. 시리마는 몸소 나와 존경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공양했습니다.

“버터를 받아 주십시오. 존자시여!”

“우유를 받아 주십시오. 존자시여!”

시리마는 스님의 발우에 한가득 음식을 담았습니다. 스님 한 분이 시리마로부터 받은 음식의 양은 서너 명이 먹기에 충분했습니다. 시리마는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시리마로부터 음식을 공양받았던 여덟 승려 중 한 명이 라자가하에서 멀리 떨어진 사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저녁에 방문한 스님이 대기 장소에 앉아 있는 동안 사원의 장로와 동료 스님들이 인사하며 그에게 물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어디에서 음식 공양을 받고 여기로 오셨습니까?”

방문한 승려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시리마가 공양하는 음식을 먹고 왔습니다.”

승려들과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시리마가 공양하는 음식은 먹음직스럽게 보이던데, 실제로 맛이 있습니까?”

“저는 그녀의 음식을 온전히 칭찬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녀는 가능한 제일 나은 방법으로 음식을 요리한 후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공양했습니다. 그녀에게서 받은 음식은 서너 명이 즐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양도 많습니다. 그녀의 음식을 보는 것보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큰 행운입니다.”

“시리마는 참으로 아름답습니까?”

방문한 스님은 시리마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칭찬했습니다. 대화 중 한 스님이 시리마의 아름다운 자태를 칭찬하는 말을 듣고 실제로 보지 않고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 스님은 “라자가하에 가서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스님은 방문한 스님에게 자신이 비구로서 몇 년 동안 지냈는지 말하면서 자신도 시리마의 집에서 공양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벗이여! 지금 가면 내일 시리마의 집에 가서 음식을 받을 것입니다.”

방문한 스님의 대답을 들은 젊은 스님은 바로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는 그날 밤 라자가하에 도착할 수 없었지만 쉬지 않고 걸어서 새벽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두근거리며 일곱 명의 다른 스님들과 함께 시리마의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시리마는 전날 여덟 명의 승려가 자신의 공양을 마치고 떠났을 때부터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걸치던 장신구를 벗어 두고 소파에 누워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여종들은 여덟 명의 승려가 오는 것을 보고 시리마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시리마는 자신이 직접 공양 자리를 준비할 수 없었고, 자신의 손으로 그릇을 가져가서 개인적으로 대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녀들에게 지시했습니다.

“먼저 자리를 준비해 안내해라. 그리고 죽을 내놓아라. 그런 다음 케이크를 공양해라. 본격적인 식사시간이 되면 그릇에 음식을 채워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거라.”

하인들은 시리마의 지시대로 스님들을 집으로 안내한 후 자리를 마련하고 먼저 죽을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케이크를 제공했습니다. 식사 시간에는 밥과 다른 음식으로 그릇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녀들이 일을 마치고 시리마에게 보고하자 시리마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스님들에게 경의를 표시하고 싶다. 나를 부축해 스님들께 데려가다오”

하인들이 시리마를 부축해 스님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시리마는 병약해져 있어 제대로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떨리는 몸으로 비구들에게 정중하게 절을 했습니다.

이전에 시리마를 직접 보지도 않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젊은 스님은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온갖 장신구로 치장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아픈데도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까?”

그러자 그의 몸속에는 마치 수억 년 동안 축적된 것처럼 거칠고 정열적인 정욕이 일어났습니다. 스님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고 식사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젊은 스님은 발우를 가지고 인근의 사원으로 돌아가서 시리마가 공양한 음식이 든 발우를 덮고 제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몸을 곧게 펴고 누웠습니다. 어떤 동료 비구도 그가 음식을 먹도록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음식을 완전히 끊고 누워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시리마는 죽고 말았습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 시리마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사 지바카의 여동생 시리마가 죽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빔비사라왕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직 시리마의 유해를 화장하지 마십시오. 그녀의 시신을 공동묘지 뒤쪽에 뉘어 놓고 까마귀·개·여우 등으로부터 보호하십시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이렇게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 되는 날, 시리마의 몸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몸의 아홉 구멍에서 벌레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시리마의 온몸이 가스로 가득 차 끓는 냄비의 물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빔비사라왕은 라자가하 전역에 전령을 보내 그의 명령을 발표했습니다.

“모든 시민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아이들은 제외하고) 공동묘지에 와서 시리마의 시신을 보아야 한다. 이를 어기는 자는 모두 소정의 벌금에 처한다.”

왕은 또한 부처님께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도 “시리마의 시신을 보자.”하고 말했습니다.

욕정에 빠진 젊은 스님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나흘 전 시리마에게서 받은 음식은 이미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릇도 더러워졌고 악취도 심했습니다. 친절한 한 스님이 젊은 비구에게 말했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시리마를 보러 가신다고 합니다.”

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젊은 스님은 시리마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물었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시리마를 보러 가신다구요?”

친절한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벗이여, 부처님께서 시리마를 보러 가실 것입니다. 그대도 가고 싶지 않습니까?”

젊은 스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대답했습니다.

“예, 물론이지요. 보러 가야지요.”

그는 부패한 음식을 버리고 그릇을 씻고 다른 스님들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도착하자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묘지 한쪽에 서 계셨습니다. 한 무리의 왕족, 남녀 재가자들이 또 다른 편에 서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였을 때, 부처님는 빔비사라왕에게 물었습니다.

“대왕이여! 이 여인은 누구였습니까?”

“그녀는 시리마였습니다.”

왕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여인이 그 아름답던 시리마가 맞냐고 재차 물었고, 왕은 재차 시리마라고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왕에게 제안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시리마를 원하는 사람은 천 냥을 지불하고 그녀를 데려갈 수 있도록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왕은 부처님의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천 냥을 지불하고 시리마를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아무도 그녀를 데려가려 하지 않려고 합니다.”

“그럼 가격을 내리시오.”

부처님의 말씀에 왕은 오백 냥을 주면 시리마를 데려갈 수 있다고 알렸습니다. 이때도 그녀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시 가격은 250냥, 200냥, 100냥, 50냥, 5냥, 1냥, 반 냥, 1/16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신을 가져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왕은 그 어떤 대가도 없이 무료로 시신은 가져갈 수 있노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럼에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공동묘지에서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들이여! 과거에는 천 냥을 내고도 그녀를 보고 즐길 차례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짜라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왕이 부처님께 사정을 보고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이여!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던 이 여인(시리마)을 보라. 이전에 이 라자가하에서는 천 냥을 지불해야 그녀와 함께 하룻밤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아도 됨에도 그녀를 데려가려는 이가 없다.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아름다움은 이제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부패해 사라지게 되는 이 육체를 지혜의 눈으로 관찰해야 한다.”

이 몸은 연약해 견고함이나 굳건함이 없습니다. 쉽게 질병에 걸립니다. 몸은 관리하지 않으면 더러워집니다. 몸은 아름다운 의복과 장신구, 꽃과 향수, 기타 다양한 화장품으로 치장돼 있을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름답고 균형 잡히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노력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남미녀도 몸속에는 소화된 음식 찌꺼기가 저장돼 있습니다. 오물이 가득 차게 되면 몸 밖으로 주기적으로 배설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몸은 깨끗하지 못합니다.[不淨] 부처님은 지혜의 눈으로 부정관을 공부해서 육신의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장·불교문화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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