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 _ 인도 바이샬리 성, 유마거사의 방

∷ 주요 등장인물 _ 유마거사, 문수사리보살, 사리불, 천녀(天女)

∷ 함께 한 대중 _ 많은 보살대중과 성문대중

∷ 주요 전개 과정

문수사리보살이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에 대해 유마거사는 “중생이란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으니, 환술로 만들어진 존재를 보듯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살이 중생을 이렇게 바라봐야 중생을 향해 걸림 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정한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실천해 나가는 길을 설파한다.

유마거사의 방에 머물고 있던 천녀가 유마거사와 문수사리보살의 이 같은 문답을 듣고, 환희심에 가득 차 꽃을 뿌린다. 성문들은 그 꽃을 털어내려고 하는데, 꽃은 오히려 달라붙었고, 보살들의 몸에는 붙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천녀와 사리불의 문답이 이어지는데, 천녀의 언변과 지혜가 무척 뛰어나다. 이에 사리불이 묻는다. “그대는 이토록 언변과 신통지혜가 뛰어난데 왜 아직 여성의 몸을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천녀는 “나 자신에게서 고정불변한 여성성을 찾아도 찾을 수 없었는데 스님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는가?”하고 반문한다. 그리고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여자로 변화시킨 후 “스님은 왜 여자 몸을 바꾸지 않는가?” 되묻는다.

이런 문답 속에서 대승의 참된 의미가 드러나고, 중생을 보는 올바른 관점, 그들을 교화하고 자비를 실현하는 올바른 길이 제시된다. 천녀야말로 대승보살의 이념을 대변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현장역에는 ‘관유정품(觀有情品)’, 구마라집역에는 ‘관중생품(觀衆生品)’이라고 부르는 이 품의 흐름과 내용은 앞서 대략 정리했습니다. 읽어 보시기만 해도 너무 재미있지 않습니까? 천녀(天女)가 사리불을 여성의 몸으로 바꾸어 놓고, “왜 스님은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고 묻는 부분은 오늘날 남자와 여자의 문제를 보는 관점에 큰 전환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경전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고, 천녀와 사리불의 대화를 먼저 살피고, 그에 맞춰 품 전체의 의미를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유마거사와 문수사리보살이 말하는 깊은 의미들이 결국 천녀와 사리불의 대화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유마거사의 방에는 천녀가 머무르고 있었답니다. 보통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유마거사와 문수사리보살의 문답을 듣다가 환희심이 넘쳐 모습을 드러냈고, 하늘 꽃을 뿌립니다. 유마거사의 방에 하늘 꽃비가 내리네요. 그런데 이 꽃이 보살들의 몸에는 붙지 않고 떨어지는데, 성문 스님들의 몸에는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털어내려고 애써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스님들은 왜 꽃을 털어내려 했을까요? 꽃이 법(法)답지 못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계율 때문입니다. 스님들은 몸에 어떤 장식도 해선 안 되거든요. 그 계율이 마음에 걸림돌이 됐다는 겁니다. 천녀가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꽃에 무슨 법다움과 법답지 못함이 있겠냐?”고요. “스님들의 마음에 분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꽃이라는 것에 걸림이 생겼다.”는 것이지요. 그런 분별을 털지 못하면 계율이 오히려 장애가 될 뿐이라는 것을,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꽃에 비유했다고 하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계기로 전개되는 사리불과 천녀의 대화가 참으로 재미납니다. 사리불이 해탈이란 언어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자, 천녀는 언어문자로 설하는 것이 다 해탈의 모습이라고 응수합니다. 탐진치(貪瞋痴)를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라는 말에는 탐진치의 본성이 그대로 해탈이라고 말합니다. 고정불변의 진리에 대한 소승의 집착을 부숴버리는 지혜의 금강저를 휘두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천녀의 지혜와 언변에 놀란 사리불이 “그대는 왜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하고 묻습니다. 대승을 빛나게 드러내기 위한 못난이 역할을 하는 사리불의 모습이 절정에 달한 느낌입니다.

여자의 몸으로는 부처를 이루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남녀의 성에 대한 차별적인 관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부처님의 본질적인 가르침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남녀 불평등의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부산물로 봐야 할까요? 일단 부처님이 직접 여자의 몸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는 말을 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불교도 남녀불평등 사회 속에서 독야청청할 수만은 없었기에, 불교 경전에도 여성 차별적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여자 몸으로 부처가 될 수는 없다는 둥, 여자가 부처가 되려면 일단 남성으로 몸을 바꾼 다음 부처를 이룬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이 생겼지요. 그러나 남녀 불평등의 사상은 평등을 근본으로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에 대승불교의 사상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여성의 몸으로도 성불할 수 있다는 이념이 정착하게 되는 추세를 보입니다. 그리고 〈유마경〉의 바로 이 대목, 사리불과 천녀의 이야기는 그런 남녀 성차별적 관점을 한 방에 때려 부수는 통쾌한 몽둥이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천녀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게 좋겠네요.

“내가 이 방에 있었던 12년 동안 여인의 성품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 환술사(幻術師)가 환술로 여자의 몸을 나타냈는데, ‘당신은 왜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하고 묻는다면 올바른 물음이겠습니까?”

그러면서 천녀는 직접 신통을 통해 보여주지요. 사리불과 천녀의 몸을 바꿔버립니다. 그러니까 사리불이 여자가 된 겁니다. 그리고 “존자께선 왜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하고 묻지요. 이 대목, 제가 구구절절 해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느껴지지 않나요? 그 의미를 해설하려 애쓰는 대신,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대학에 교수로 재직할 때, 학생들의 요청으로 제 연구실에서 경전 강독을 진행했습니다. 예닐곱 명의 관심 있는 학생들과 함께 모임을 이어갔지요. 〈유마경〉·〈금강경〉·〈장아함경〉 등을 함께 읽었는데, 바로 〈유마경〉의 이 대목에서 한 여학생이 물었지요. 석사과정의 학생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지요.

“선생님, 이 경은 언제 이루어졌나요?”

“글쎄, 적어도 성립된 지 1,500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와! 그렇게 오래 전에요! 이건 남녀 성평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핵폭탄급의 이야기예요!”

여기서 제가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핵폭탄이면 뭐하니? 불발탄인데!”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첫 번째는 천녀가 사리불에게 말한 것, 그리고 신통을 통해 보여준 남자와 여자에 대한 관점은 정말 핵폭단급의 파급력을 지닌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남자 중심의 사회에서 여자가 사람 대접을 받은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서양으로 말하면 1,800년대 중반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인형의 집〉이 나올 당시만 해도 여성은 ‘사람’이기 이전에 ‘여자’로 묶여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틀을 깨고 똑같은 사람이며, 그 바탕 위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만 나누어져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정착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동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관념 아래서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처럼 여겨지던 것을 벗어던진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1,500년 이전에 남자와 여자라는 것이 단지 환술사가 빚은 환상과 같다는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여학생이 ‘핵폭탄급’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그 느낀 충격의 크기를 잘 말해주고 있지요. 현대에 들어와서도 성차별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사리불을 여자의 몸으로 휙 바꿔버린 뒤 “존자께서는 왜 여자 몸을 바꾸지 않으십니까?”하고 묻는 〈유마경〉의 이 대목은 참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렇게 시대를 뛰어넘는 뛰어난 사상이 과연 우리 인간의 역사를 바꾸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반성입니다. 제가 좀 심하게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부처님의 이 위대한 가르침은 결과적으론 ‘불발탄’으로 끝나지 않았나요? 과연 이런 가르침을 통해 우리 현실 속 남녀평등을 실현하는데 불교가 얼마나 기여했나요?

그렇게 본다면 정말 우리 불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관념의 유희에 머물렀을 뿐 구체적으로 현실을 바꾸는데 등한시했던 길고도 긴 불교의 역사! 핵폭탄급의 파괴력을 가진 가르침을 불발탄으로 만든 역사 아닌가요? 부처님의 빼어난 가르침을 찬탄하고 기뻐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가르침을 통해 우리 현실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바로 오늘, 여기 우리들의 실천이 불국토를 건설해 나가는 움직임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 다시 경전 이야기로 돌아가 보지요. 천녀가 사리불에게 말한 남자와 여자에 대한 관점은 바로 보살이 중생을 어떻게 보는가와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문수보살이 묻지요.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유마거사가 대답합니다. “환술사가 자신이 환술로 이룬 일을 보듯이 해야 합니다.” 불변의 여성성이란 것은 없고, 환술사가 만들어낸 환상과 같다는 말과 똑같은 구조지요? 〈금강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생이란 것은 중생이 아니고 그 이름이 ‘중생’일 뿐입니다. 중생을 실체로 인정하고 부처와 딱 구분하는 순간, 중생을 벗어날 길은 막혀 버립니다. 또 보살이 중생을 그렇게 보고 그들을 교화한다고 나선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중생무시의 죄업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나는 교화하는 보살이요, 너는 중생이니라!” 이런 마음이 바탕이 되면 올바른 교화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대승의 이념을 대표하는 말에 조금 유감이 있습니다. 깨달음은 높은 곳에 있으니 위로 구하고, 중생은 낮은 존재이니 아래로 교화한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되거든요. 그리고 높은 깨달음을 먼저 구하고, 그 깨달음으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선후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무식한 도깨비의 무식한 말이라고 하면서 ‘하구보리 상화중생(下求菩提 上化衆生)’이란 표현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받들어 가면서 교화한다는 의미로 말입니다.

유마거사가 말한 중생을 보는 시각은 공(空) 사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모든 법은 비어있는[空] 것이며, 나라고 할 것도 중생이라 할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자칫 이러한 비어있음의 측면에 빠지면 참된 실천의 길로 나가는 길이 막혀버릴 우려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헛되다!”는 생각이 허무주의로 나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자비실천, 불국토 건설, 그런 것들도 비어있음이니 ……. 유마거사는 이런 잘못된 치우침을 벗어난, 참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파합니다. 중생을 고정불변한 실체성을 가진 것으로 보지 않기에, 중생을 낮은 존재로 깔보고 자신을 높은 존재로 생각하는 계급의식과 집착에서 벗어납니다. 집착에서 오는 사랑이 아닌 참된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중생을 환술사가 빚은 환상과 같이 보기에 오히려 크나큰 사랑의 실천이 가능한 것이지요. 〈유마경〉의 표현을 몇 구절 들어볼까요?

“보살은 모든 번뇌가 끊어진 사람을 닦으니 어떤 집착도 없기 때문이며, 열광에 빠지지 않는 사람을 닦으니 번뇌를 벗어났기 때문이며 …… 평등한 사람을 닦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 치우침이 없는 사람을 닦으니 애증을 끊었기 때문이며 ……”

정말로 멋진,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표현들이 가득합니다. 제 이야기는 정말 여러분이 〈유마경〉을 직접 읽도록 호기심을 일으키게만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집착을 버린 마음, 비어있음을 바탕으로 하여 크나큰 사랑이 실현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유마거사의 힘찬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여자는 여자이기만 하고, 남자는 남자이기만 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끝없는 갈등을 빚어내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요?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철저히 나누는 양극화가 나날이 심해지고, 참으로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지향점은 사라지고 네 편 내 편 가르기만 남아있지 않은가요? 사리불과 자신의 몸을 휙 바꿔놓고 “왜 당신은 그 모습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천녀의 신통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신통이 없으니, 너와 나의 입장을 바꿔보고, 나는 왜 이런 모습으로 너는 왜 그런 모습으로 있는가를 한 번 돌아보기만 해도 얼마나 좋을까요? 부처님의 핵폭탄급 파급력을 가진 가르침을 불발탄으로 만든 부끄러움은 이제 그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지금 여기의 나와 세상을 바꿔 나가는 건강한 흐름을 일으켜 봅시다. “핵폭탄이면 뭐하니? 불발탄인데!” 하는 말이 어느 누구의 입에서도 나올 수 없도록 말입니다.

성태용
전 건국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한학자 양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故임창순 선생에게 한학을 배웠다. EBS에서 ‘주역과 21세기’라는 제목으로 강의했으며, 한국철학회 회장과 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주역과 21세기〉·〈어른의 서유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