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복건성 이주민 전래
1979년 아미호 인근 자리잡아
40년 간 ‘동방미인차’ 생산해

대만차(臺灣茶)는 뛰어난 품질과 청결함으로 정평이 나 다인(茶人)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대만의 차(茶) 역사는 약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는 청나라 말기 최대 수출품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차를 구매하려는 상인들의 배가 중국 대륙 동쪽 항구로 줄이어 드나들곤 했다.

당시 복건성에 거주하던 주민 중 일부가 바다를 건너 대만으로 이주하면서 각종 농산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차나무도 전해져 중요한 작물로 재배됐다.

200년 전 무이산 차나무 전래

〈대만통사(臺灣通史)〉에 따르면 청나라 시대인 1796~1820년경 중국 복건성에서 대만으로 이주해 온 ‘가조(柯朝)’라는 사람이 복건성에서 차나무를 가져와 대북현(臺北縣) 어갱이라는 곳에 심었는데, 차나무가 매우 잘 자라서 대북현 일대에 널리 퍼졌다. 이것이 오늘날 문산포종차의 원조가 되었다. 또 남투현(南投縣) 녹곡향(鹿谷鄕) 동정산(凍頂山)에 살던 임봉지(林鳳池)라는 선비가 복건성에 가서 과거 시험을 치르고 선조들이 살던 무이산(武夷山)에 들러 차나무를 선물로 받아 돌아온 뒤 집 주변에 심었다. 이 나무들이 무성해져 동정오룡차(凍頂烏龍茶)의 원조가 되었다.

이후 복건성 산악지대에 거주하다가 대만 남부로 이주한 사람들도 중·북부로 이동해 자신들의 고향과 비슷한 환경을 찾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무이암차(武夷岩茶)처럼 묵직하고 화기(火氣)가 강한 차를 생산했고,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반면 평지에 거주하던 이주민들은 대체로 청향(淸香) 계통의 푸릇푸릇한 차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만에서는 이미 ‘가조’ 이전에 대만에서 차 재배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대만 지방지의 기록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공업이 급성장하면서 차 생산에 필요한 기계 및 기구들이 대만에 대량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만차의 생산 면적과 생산량이 대폭 증가했다. 오늘날 대만의 다원(茶園) 면적은 5,000만 평 정도이고, 연간 차 생산량은 1만 8,000t에 이른다.

주요 차 생산지구는 대만 중부 남투현(南投縣)을 중심으로 서쪽의 가의현(嘉義縣)·운림현(雲林縣), 북쪽의 태중현(台中縣)·묘율현(苗栗縣)·신죽현(新竹縣)·도원현(桃園縣)·태북현(台北縣), 남쪽의 태동현(台東縣), 동쪽의 화련현(花蓮縣) 등이다.

그중에서 남투현이 전체 다원 면적의 48%, 가의현이 14%, 도죽묘(桃竹苗, 도원·신죽·묘율)가 13.5%를 차지한다. 현재 대만은 녹차·백차·황차·청차·홍차·흑차 등 6대 다류(茶類) 중 흑차류를 제외한 다섯 종류의 차를 생산하고 있다. 그중 청차류(靑茶類) 즉, 오룡차(烏龍茶) 생산량이 70%를 차지하고, 홍차(紅茶)가 약 20% 정도, 나머지는 녹차·백차 등이다.

40년 간 ‘동방미인’ 생산해

‘동방미인(東方美人)’으로 불리는 백호오룡차는 대만을 대표하는 차 중 하나다. 동방미인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차밭 중 한 곳인 서요량다원(徐耀良茶園)은 대만 신죽현(新竹縣) 아미향(峨眉鄕) 아미호(峨眉湖) 인근 해발 400m의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아미호는 수량이 풍부한 호수이고, 인근 농경지는 일체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재배지이다.

서요량다원의 차 재배 면적은 11만 평이고, 연간 차 생산량은 6t에 이른다. 생산하는 차는 대부분 ‘동방미인’이며, 홍차와 녹차도 약간씩 생산하고 있다. 서요량다원에서 재배하고 있는 차 품종은 중국 전래종인 청심대유(靑心大冇), 대만 신품종 중 대차17호인 백로(白鷺)와 대차12호인 금훤(金萱) 등이다. 아직 생산하지 않는 신품종도 몇 가지 육성하고 있다.

서요량다원은 인근의 다원에 비해 차 생산 역사는 짧은 편이다. 1979년부터 동방미인차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1997년부터 2010년 사이 ‘동방미인차 비새(比賽·품평대회)’에서 일곱 차례나 챔피언을 획득했을 정도로 제다(製茶) 실력이 출중하다. 그렇다 보니 연중 두 차례 서요량다원이 동방미인차를 생산할 때면 좋은 품질의 차를 선점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전 세계의 차상들이 몰려와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곤 한다.

서요량 대표는 대만에서 ‘차대사(茶大師)’로 불릴 만큼 동방미인 차농(茶農)으로 이름나 있다. 그는 동방미인차로 두 개의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첫째는 2005년 여름 비새(比賽·차 품평대회)에서 관군(冠軍·챔피온)을 획득하며 출품한 차 1근(斤, 600g)을 대만달러 101TWD(한화 4,000만 원)에 판매한 기록이다. 둘째는 비새(比賽)에서 14차례 관군(冠軍)을 획득한 기록, 특히 아홉 차례 연속 관군(冠軍) 획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필자는 서요량 대표를 매우 존경하는데, 그가 세운 대기록보다 차에 대한 애정과 동료 및 후배 농민들을 위한 배려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차 생산이 끝나는 10월에는 서요량다원도 여느 다원과 마찬가지로 농한기에 접어든다. 이때 서 대표는 인근의 농회(農會)와 협력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앞서 개발한 기술을 널리 전파하는 데 힘을 쓴다. 서요량다원은 연중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데, 방문객 중에는 차를 구매하러 오는 상인과 손님 외에 동방미인차 제다법을 배우러 오는 차농도 많다. 서 대표는 배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서 대표가 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차창(茶廠)의 청결이다. 그는 “차창의 청결과 함께 적정한 온도·습도 유지가 동방미인차 제도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서요량다원은 대만 정부가 보증하는 가장 청결한 차창으로 알려져 있다. 서 대표는 14번의 관군과 1근을 101대만달러에 판매한 기록보다도 대만 정부가 수여한 ‘모범농민’ 선정에 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의 신념과 자부심은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선 아들 서유신(徐維伸)이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서유신은 동방미인차를 세계에 더욱 널리 알리고자 포장디자인과 포장 무게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만 신죽현 아미향 아미호 인근 해발 400m의 구릉에 자리한 서요량다원은 동방미인을 생산하는 대표적 차밭 중 한 곳이다. 서요량 대표와 아들 서유신 씨가 찻잎을 따고 있다.
대만 신죽현 아미향 아미호 인근 해발 400m의 구릉에 자리한 서요량다원은 동방미인을 생산하는 대표적 차밭 중 한 곳이다. 서요량 대표와 아들 서유신 씨가 찻잎을 따고 있다.

‘동방미인차’ 생산과 제다법

동방미인차의 원래 이름은 팽풍차(膨風茶)다. ‘팽풍’은 하카족[客家族, 대만에 사는 한족의 한갈래] 말로 ‘허풍을 떤다’는 뜻이다. 중국어로는 ‘취우(吹牛)’라고 한다. 전하는 말로는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어느 해, 지금의 신죽현 북포향(北埔鄕)의 차농이 찻잎을 채취하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찻잎은 이미 벌레를 먹었지만, 차농은 얼마라도 벌고 싶은 욕심에 벌레 먹은 찻잎으로 우롱차를 만들었다. 당시는 차를 싹과 어린잎으로만 만들었기에 벌레 먹은 다 자란 잎으로 만든 차를 판매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이다. 차농은 이 차를 마을 인근이 아니라 멀리 타이베이 시장에 팔려고 가지고 갔는데, 그 맛과 향이 독특하다고 평가한 서양 상인이 매우 높은 가격에 구입해서 가져간 차를 모두 판매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횡재 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했는데, 마을사람들은 허풍이라며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 바람에 ‘허풍 떤 사람이 만든 차’, 팽풍차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팽풍차가 ‘동방미인’이란 멋진 이름을 가지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영국 상인이 팽풍차를 구해 영국 여왕에게 바쳤는데, 차 맛을 본 여왕이 ‘먼 동양에서 온 아름다운 여인과 같다.’며 ‘동방미인(Oriental beauty)’이라고 부른데서 유래됐다는 주장이다. 팽풍차를 마셔 본 영국 여왕은 대체로 빅토리아여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빅토리아여왕은 1901년까지 생존했고, 팽풍차는 여왕 사후 등장했으므로,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다.

또 다른 설은 현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1960년대 런던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서 대만 우롱차를 맛보고 그 맛과 향에 감탄해 ‘오리엔탈 뷰티(Oriental Beauty)’라고 말했고, 이때부터 ‘동방미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차 시장에 유통되기 시작한 시기가 1980년대 후반 내지 1990년대 초반이란 점을 고려할 때 동방미인차는 영국 여왕이 붙인 이름이라기보다 차의 가치를 올리고자 상인들이 만들어낸 말로 보는 게 타당하다.

팽풍차 찻물에 브랜디 한 방울을 첨가해 마시면 매우 좋은 맛을 내는데, 유럽 사람들은 ‘향빈우롱(香檳烏龍·샴페인)’이라고 부른다. ‘백호우롱(白毫烏龍)’이란 명칭은 찻잎에 토실하고 영롱한 흰털(융모)이 가득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세기 중엽 문인들은 “백호우롱의 탕색은 맑고 깨끗하고 등황색을 띠어 아름답기가 술을 마셔서 홍조를 띤 양귀비와 같고, 그 향기는 꽃의 꿀과 잘 익은 과일과 같고, 그 맛은 깔끔하고 부드러우며 달콤하면서 촉촉하고 온유하다.”고 묘사했다.

동방미인차는 반 발효(산화) 청차 중에서 발효도가 가장 무거운 차다. 우롱차의 일반적인 발효도는 60%인데, 동방미인차는 발효도가 75~80%에 이르는 것도 있다. 그래서 어떤 잡냄새도 나지 않고, 쓰거나 떫은맛도 나지 않는다. 주요 산지는 대만 신죽·묘율·타오위안 일대이며, 최근에는 타이베이 근처 북평림 성정 일대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동방미인차는 5월말에서 6월 중순, 그리고 10월 중순 손으로 직접 채취한다. 절기상으로는 망종(芒種)과 한로(寒露) 때다. 이 차의 가장 큰 특징은 저연(著涎) 현상으로 발생하는 독특한 향이다. 저연현상은 소록엽선(小綠葉蟬)이라는 벌레가 찻잎을 갉아먹을 때 벌레의 타액과 찻잎의 효소가 혼합돼 특별한 맛과 향기가 나는 걸 말한다. 동방미인차의 품질과 생산에 소록엽선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보니 생산과정에서 농약을 사용할 수 없어 친환경으로 재배하게 돼 더욱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팽풍차는 전통적으로 도원(桃園)·신죽(新竹)·묘율(苗栗) 지역에서 생산하는데 포장에 적혀있는 명칭은 생산지역에 따라 다르게 붙여진다. 신죽현 북포향에서 나는 것을 ‘팽풍차(膨風茶)’ 혹은 ‘병풍차(椪風茶)’라고 하고, 신죽현 아미향에서 나는 것을 ‘동방미인차(東方美人茶)’, 묘율현 두상향·삼만향에서 나는 것을 옛 명칭을 따 ‘번장오룡(番庄烏龍)’이라 부르고 있다.

동방미인차는 채청(採菁)→일광위조(日光萎凋)→실내정치(室內靜置)·교반(攪拌)→취퇴발효(聚堆發酵)→살청(殺菁)→습포회윤(濕布回潤)→유념(揉捻)→건조(乾燥) 등의 제다과정을 거친다. 아침 일찍 찻잎을 따서 한낮에 차창으로 가져와 다음 날 오전까지 꼬박 하루를 제다해 완성한다. 한낮과 오후에는 기온이 너무 높고 자외선이 매우 강해 찻잎을 따지 않는다. 차를 만드는 시기에는 일이 너무나 많아서 하루에 고작 세 시간 남짓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 휴식시간에 젊은 차농은 쪽잠을 청하고, 나이 든 차농은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식사를 한다.

‘봉차’ 즐기는 대만 茶문화

대만에서는 어느 지역에서든 거의 매주 차와 관련한 행사를 볼 수 있다. 당나라 때 육우(陸羽)가 지은 〈다경(茶經)〉을 바탕으로 차와 관련한 역사·인문·다구(茶具)·강좌·박람회·시음회 등 다양한 행사가 일 년 내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매년 10월 남투현에서 열리는 천인다회(千人茶會)와 천인유념(千人揉捻)은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는다. 천인다회는 넓은 잔디밭에서 1,000명이 차를 우리고, 팽주 앞마다 서너 명씩 앉아 차를 마시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참여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감동을 안겨준다. 차농이 제공한 찻잎을 넓은 채반에 올려놓고 직접 손으로 비벼보는[유념] 천인유념장에는 비빌 때 발산되는 차향이 사방을 가득 메운다.

대만 사람들은 주말마다 간단한 다구(茶具)를 챙겨 야외로 나간다. 저마다 편안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손수 우려낸 차를 대접하기를 즐긴다. 이를 ‘봉차(奉茶)’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다인(茶人)들도 본받아 행해보면 참 좋겠다. 대만 사람들은 이렇게 일상에서 차를 마시고 즐긴다. 집과 일터에서 차를 마시고, 외출할 때는 차를 우려서 행동배(行動杯, 일종의 텀블러)에 담아 수시로 마신다. 번화가와 유명 관광지의 찻집은 가격이 비싸 현지인들도 특별한 날이 아니면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대신 퇴근 후 또는 저녁식사 후 동네 찻집에 들러 차를 마시며 시끌벅적 담소 나누기를 즐긴다.

동네 찻집은 단골손님의 차와 찻잔을 보관하는 게 보통인데, 신차가 나오는 때에는 특별 차회 및 공동구매를 추진해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만 여행을 간다면 저녁에 숙소 근처 찻집에 들러 현지인과 차 한 잔 나누며 그들의 꾸밈없는 차 문화를 직접 느껴보길 권한다.

서요량다원의 차 재배 면적은 11만 평이고, 연간 차 생산량은 6t에 이른다. 생산하는 차는 대부분 ‘동방미인’이며, 홍차와 녹차도 약간 씩 생산하고 있다.

권남석
포담티하우스(대만차전문점) 공동대표. EBS교육방송 PD·안동 건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대만관광청 서울사무소 특강강사·서울 서대문구·마포구 茶강좌 강사 등을 역임하며 차 문화 홍포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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