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의 12·19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와 간담회가 만발하고 있다. 불교종단협의회의 대통령 후보 초청 간담회(10월24일, 11월13일)에 이어 대한불교종정협의회의 초청 간담회(11월20일), 불교정책기획단의 초청 토론회(11월21일) 등이 연속됐다.

불교계의 정치참여와 대선 관심이 이처럼 뜨거웠던 예가 없다. 이번 대선의 종교계 관련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제 없이 여기 저기서 들고 나온 간담회나 토론회는 급기야 이명박·이회창·정동영·문국현 등 4명의 초청 토론자 중 두 이 씨가 나오지 않는 반쪽 토론회가 돼 체면을 크게 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자존심 좀 가진 불자들에게는 그 뒷맛이 아주 씁쓸했을 듯하다. 더욱이 그 형식이나 내용이 다른 토론회들의 치열함과 문제의식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왜 그런 간담회와 토론회를 하느냐는 비판도 없지 않다.

천주교나 기독교 등 다른 종교에서는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 대선에서도 불교계와 같은 대선 후보 초청 토론·간담회가 없다. 한마디로 종교의 정치참여를 선거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후보를 불러내 차담(茶談) 수준을 겨우 넘어선 민원성 문제나 제기하는 토론회로 구체화 시켜서는 안된다. 70~80년대의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과 인권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천주교·기독교의 사회구원 정도는 돼야 정치참여고 사회참여라 할 수 있다.

불교는 그 시절 과연 무엇을 했던가? 확고한 정치참여의 전통도 없이 갑작스럽게 제17대 대선에서만 그처럼 분주한 이유와 명분을 찾을 수가 없다. 종교의 정치참여는 기본 교리인 불성(佛性)이나 천부인권 등과 관련한 인권·민주주의 같은 인류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가치를 수호하는 데 한정되는 것이 정도다. 대통령 선거와 같은 국지적이고 특수한 정치상황은 세속 정치의 몫이다.

토론회나 간담회를 하려면 나온 대선 후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할 통쾌하고 정제된 화두와 기봉(機鋒)으로 신문에라도 크게 날만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 후보는 코피가 날 정도로 바쁜 일정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불교나 종교 문제는 우리의 경우 국가 경영에서 우선순위가 결코 앞서는 문제일 수 없다.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후보들을 불교계 여기 저기서 연일 불러내 비슷한 이야기나 되풀이 하는 것은 대선 후보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바람직한 불교의 사회참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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