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香 ‘물씬’ 관세음 자비 숨결 곳곳에

열반이란 단어에는‘불어 끈다'는 본뜻이 있다. 세상의 모든 번뇌, 시름, 갈애 그리고 애착을 불어서 끈 고요한 상태가 바로 열반인 것이다. 늦가을 단풍을 보다 보니 열반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자신의 몸을 태워 완전히 끈 상태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나무가 만들어내는 열반의 경지인 것이다. 전라북도 부안에 있는 내소사는 이런 나무의 열반을 몸 안 깊숙이 느끼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이다. 자, 이제 길을 떠나 볼까!


민간 신앙 배척 않고 부처님 가피로 머금어
관음조·중창설화 등 전설 이어져 내려와

서해 바다를 끼고 변산반도 국립공원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내소사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내소사에 도착하면 사찰보다 커다란 봉우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로 관음봉이다.
내소사는 관음봉으로 둘러싼 능가산 아래 자리하고 있다.‘여기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의 일이 다 소생되게 해 주십시오'란 뜻의 내소사의 의미는 관세음보살의 원력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커다란 전나무 숲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절로 가는 길 치고는 오르막이 없어 천천히 선을 행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상쾌한 숲의 내음은 사찰로 들어갈 때까지 속내에 든 많은 것을 정화시켜 준다.


부안 내소사 천왕문. 일주문과 약 600m에 걸쳐 형성된 전나무숲을 지나면 천왕문을 만날 수 있다.

경내 나무에 제 지낸 풍습도

어느 정도 걸으면 환하게 펼쳐진 경내가 눈앞에 한가득 들어온다. 관음봉이 둘러싸고 나지막하게 들어서 있는 전각들은 평온함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내소사 경내ㆍ외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 사람들은 밖에 있는 느티나무를‘할아버지 나무'라고 부르고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를 ‘할머니 나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 14일 밤 내소사 스님의 주관으로 먼저 경내의 당산나무에 제를 모시고 다시 내소사 입구 당산에서 마을 사람들과 합동으로 동제를 지녔다고 한다.
이 풍속은 불교가 가지고 있는 포용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민간 신앙이나 타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그대로 머금어서 부처님의 가피 안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불교와 우리 불자들의 삶의 방식이리라. 아름다운 나무는 사찰의 웅장함에 포근함을 더해 주면서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천왕문을 거쳐서 경내로 들어 가보자. 대웅보전에 들어가기 전 꼭 봐야 할 것은 바로 대웅보전 꽃모양의 문살들이다. 연꽃과 수련모양으로 장식된 꽃문살은 3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약간 발갛게 바랜 색깔로 정교하게 조각이 돼 있다.

백제 무왕 때 세워진 뒤 조선 시대에 중창된 것으로 알려진 부안 내소사 대웅전.


대웅보전에 들어가면 꼭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봐야 할 것이다. 천장에는 두 마리의 학과 여의주가 있는 24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 안쪽에는 모란과 연꽃 그림이 있다. 그리고 이 천장의 좌우로는 비파, 해금, 북, 장구, 바라, 나팔, 젓대 등의 열 개의 악기가 그려져 있다. 이들 그림은 모두 중앙에 있는 석가모니의 설법을 찬탄하기 위한 여러 가지 형태들이다.

본존불 뒤로 가면 그 유명한 내소사 관음보살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목이 꺾일 듯이 올려다봐야 하지만 간절한 소원을 일념으로 생각하면서 이곳 관음보살을 쳐다보고 앞으로 걸을 때 관음보살의 눈이 자기 눈과 마주쳐 계속 따라오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일심으로 바라는 소원은 그 소원이 진정 간절할 때 분명 이루어지리라.

내소사에는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대표적인 두 가지 이야기가 다음과 같다.

내소사 중창설화 전해져

첫째는 내소사의 중창설화이다. 내소사를 중창할 때 한 목수를 불렀는데 이 목수는 3년 동안 말을 않고 나무만 깎았다고 한다. 이에 이 절의 사미승이 장난기가 발동해서 나무토막 하나를 숨겼는데 목수가 나중에 하나가 부족한 것을 알고 자신이 수양이 부족해서 절을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놀란 사미승이 감추었던 나무토막을 내주면서 잘못을 빌었으나 이미 부정 탄 나무로는 법당을 지을 수 없다고 해 남은 토막만으로 절을 지었다. 그래서 법당 안 오른쪽 윗부분에는 나무 자리가 하나 비어 있다.

둘째는 단청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한 화공이 날아와 단청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100일 동안 아무도 건물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99일 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으나 한 사미승이 너무나 궁금해서 기어이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러자 법당 안에서 입에 붓을 물고 단청을 그리고 있던 하얀 새가 놀라서 그만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대웅전 안에 좌우 한 쌍으로 그려져 있어야 할 그림이 좌측은 바탕면만 그려져 있고 내용은 없다. 이 새를 ‘관음조'라고 한다.

대웅전을 나오면 한 쪽에 문이 활짝 열려있는 누구나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는 다실이 있다. 차 한 잔도 나눌 수 있는 사찰의 넉넉한 인심이 전해지는 공간이다.

다실에 앉으면 삼층석탑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라고 한다. 나지막하지만 층층이 쌓인 돌의 힘이 그대로 느껴진다.

독립투사 은거지 청련암도

또한 내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은 바로 내소사 뒤편의 산길로 올라가서 다다를 수 있는 청련암이다. 근대 독립투사들이 은거하기도 했다는 이 암자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곰소만 푸른 바다의 절경과 내소사 전경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의 힘든 과정은 청련암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으로 모두 해소될 정도이다. 이곳의 관음이 서해바다를 통해서 들어온 해상관음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을 청련암에 가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또한 일주문 앞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가다보면 보이는 지장암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통일 신라 때부터 있었던 암자이며 1941년 이후 해안선사가 서래산림을 개설해 선 중심 도량으로 만든 기초가 되는 암자다. 해안선사의 뜻은 후에 혜산선사에 의해 봉래선원을 건립하게 했다. 지금도 봉래선원에서는 10여 명의 수행자들이 용맹정진을 하고 있다.

절 한 바퀴를 돌고 내려오면 대장금 촬영지라고 적힌 푯말이 보인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까지 했을까 싶다.
이 가을에 조용한 사찰에서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얻고 싶다면, 더불어 덤으로 만추를 만끽하는 행운도 가지고 싶다면 내소사로 발길을 돌려야 할 것만 같다.

자은림/ 불교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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