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종의회의장 도정 스님. 최근 우리 사회는 대통령 선거 때문에 온통 정신이 없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를 다스릴 국가지도자를 뽑는 행사이니만큼 어느 면에서 아주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그렇게 정신이 없는 가운데라도 법과 원칙이 지켜지고 사회적인 윤리와 예절이 지켜지는 경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모든 것을 잃고 만다는 그런 절박한 심정의 발로라고는 하지만 경쟁 상대의 진영간에 도저히 용납되기 어려운 막말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집권세력인 대통합민주신당에서는 한나라당의 이명박후보를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 빚대어 ‘나라의 재앙이 될 사람'이라고 하고 있고,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여당의 정동영후보에 대해 ‘노인 폄하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에다 ‘자기를 키워준 삼촌을 돌보지 않아 7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받은 패륜아(悖倫兒)'라고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보면 이렇게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말은 점잖은 설득과 이치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무조건 상대를 부정하겠다는 욕이고 막말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막말과 욕을 하는 사람들이 후보자 자신이 아니라 그 지지자들이라는 점입니다. 지도자가 될 사람이 직접 그런 말을 하고 나선다면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상황이고 그 후보자도 지도자로서의 인격과 덕망을 갖추지 못한 것이겠습니다.

옛 성현들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하늘의 도에 순응하고 자연의 이치에 따랐으며, 백성 가운데 덕 있는 자를 적재적소의 관직에 배치하고 대의명분을 세워 직무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결코 하늘의 뜻을 어기고 자연의 이치를 무시하며 인격과 덕망도 없는 자들을 관직에 앉혀 편파적으로 또 개인적 탐욕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도 한결같이 인격과 덕망을 갖춘 지도자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승군왕소문경》에서 “왕이 자애로운 마음으로써 모든 인민을 대함에 마치 자식을 대함과 같이 하면, 모든 인민이 또한 왕에 대하여 그 부모를 대하는 것 같이 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도자가 자비심이 있어야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공정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잡보장경》에는 “왕은 온 나라의 우러름을 받는 바이니 마땅히 다리와 같이 만인을 건네주고 저울과 같이 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은 자비(慈悲)와 공정(公正)에 이어 준법(遵法)을 강조하셨습니다.
 
《작왕경》에서 부처님은 “왕이 되어도 살생하지 말고 남을 시켜 살생하지 말며, 한결 같이 법대로 행하고 법 아닌 것을 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 보이는 ‘법대로'는 단순히 사회 통념의 실정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의 도리, 부처님의 진리 정신이 드러나는 법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는 자기 편, 남의 편을 갈라 이익을 독점하지도 말아야하고 남을 시켜 악을 행하지도 말아야 하며 편의적으로 법을 마음대로 집행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법요집경》은 “만약 임금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면 신하들도 다 청정해질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십선업(十善業)을 닦아 실천한다면 지도자를 따라 그 밑에서 일하는 이들도 자연 바른 행과 청정행을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이 나라 지도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면 오죽 좋겠습니까. 하지만 오늘과 같은 다종교사회의 현실에서 이 나라 지도자가 불자여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다만 우리 불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이 나라 지도자가 적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지 않는 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종교가 따로 있다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불자들을 존중할 줄 아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생과 도적질과 사음하지 않는 이어야하고 거짓말과 양설·악구 ·기어로 말만 잘하는 이가 아니어야하며, 탐욕과 진에와 우치의 삼독을 벗어나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는 인사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을 하늘처럼 받들고 제대로 국민의 뜻에 따를 줄 아는 인격과 덕망을 갖춘 인물이 지도자로 선출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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