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 바탕 두고
땅의 수호신에 풍요 기원하던
남성 배우 중심의 가면극

캄보디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 여러 개 있다. 그 중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전통극예술은 크메르(Khmer)의 전통춤으로 ‘캄보디아 왕실 발레’ 또는 ‘압사라(Apsara)’로 불리는 ‘캄보디아 왕실 춤극(Royal ballet of Cambodia)’이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왓 스베이 안뎃의 르콘 콜(Lkhon Khol Wat Svay Andet)’은 캄보디아 왕실 춤극에 비견되는 가면극으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캄보디아 불교는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왕조(Maurya dynasty, B.C. 317∼180)의 아소카왕(Ásoka the Great, 재위 B.C. 273~232년 경) 때 소나(Sona) 스님과 웃따라(Uttra) 스님을 통해 전래됐다고 전한다. 통일국가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불교가 전래된 것이다. 이후 후난(扶南) 왕조(A.D. 86~550)와 첸라(眞臘) 왕조(A.D. 550~802) 중반까지는 불교가 융성하지만, 이후 쇠퇴한다. 그 원인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앙코르 제국을 건립한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Ⅱ, 재위 802~835) 초기에는 불교와 힌두교가 동시에 숭상되면서 공존하지만, 대승불교를 신앙한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Ⅶ, 재위 1181~1218)는 힌두교 대신 불교를 국교로 삼고, 전국에 수많은 불교사원을 건립했다. 그러나 인드라바르만 2세(Indravarman Ⅱ, 재위 1218~1243)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야바르만 8세(Jayavarman Ⅷ, 재위 1243~1295)는 힌두교를 신앙했다. 같은 왕조에서도 왕이 바뀔 때마다 지배층이 신앙하는 종교의 성쇠(盛衰)가 엇갈리다보니 두 종교 간 갈등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르콘 콜은 풍자와 해학도 담겨 있다. 사진은 원숭이 왕자인 하누만이 악마를 물리치는 장면이다.

불교와 힌두교, 르콘 콜

‘왓 스베이 안뎃의 르콘 콜’(이하 르콘 콜·Lkhon Khol)은 ‘반니(Bhani)’극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반니는 10세기에 쓰인 캄보디아 금석문(金石文)에 언급돼 있는 극예술의 한 형태다. 프놈펜에서 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불교사원 ‘왓 스베이 안뎃’의 지역민들은 크메르 시대 이후 매년 한 차례 르콘 콜을 공연하고 있다.

1967년 캄보디아 불교 연구소에서 출간한 〈크메르어 사전〉에 따르면 ‘르콘(Lkhon)’은 ‘연극’, ‘드라마’ 등을 의미한다. ‘콜(Khol)’은 ‘짧고 매력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어떤 이는 ‘방패’를 의미하는 또 다른 크메르어 ‘콜(Khel)’에서 파생됐다고 보기도 한다. 따라서 두 단어를 합친 ‘르콘 콜’은 ‘가면을 쓴 전통 극예술’로 정의할 수 있다.

캄보디아 예술장르 중 가장 인정받은 분야가 춤인데, 특히 르콘 콜은 마을공동체가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며 땅을 수호하는 신 ‘닉 타 첸(Neak Ta Chen)’을 위해 지내는 가면극이다. ‘캄보디아 왕실 춤극’(이하 압사라)이 왕족과 귀족들을 위한 무용이라면, 르콘 콜은 지역사회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 종교적 부흥을 이끌어온 민속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르콘 콜의 전승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크메르 왕조 시대에 이미 르콘 콜이 존재했으며, 힌두교의 데바 레아치아(Deva Reachea) 신들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등 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왕을 비롯한 지배층의 종교관 변화로 인해 불교와 힌두교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르콘 콜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자야바르만 7세 통치 기간에 대승불교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백성들 사이에는 불교의 저변이 넓게 확산됐다. 이전까지 힌두교의 데바 레이치아를 위해 추던 르콘 콜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춤이 되었다. 하지만 지배층에는 여전히 힌두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자야바르만 7세 사후 25년이 지난 1243년에 자야바르만 8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지배층이 신앙하던 종교는 또다시 힌두교로 바뀌게 된다.

르콘 콜을 추던 여성 배우들은 주로 힌두교를 신앙하는 왕족이나 지도자층과 어울리면서 평민이 대부분인 불교 신자들을 비방했다. 힌두교 신자인 왕족과 지배층은 단지 불교와 불교 신자들을 폄훼하는데 르콘 콜을 이용하려고 했고, 여성 배우들은 여기에 동조했다. 반면 백성들은 부패한 지배층과 왕족들이 여성 배우들을 이용해 불교를 폄훼하는 걸 막고자 남성 배우로 구성된 연극을 만들고자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캄보디아 극예술 형태 중 가장 오래된 공연 ‘왓 스베이 안뎃의 르콘 콜’이다. 르콘 콜은 B.C. 3세기 경 시인 발미키(Vālmīki)가 쓴 작품으로 ‘라마야나(Rāmāyana)의 라바나(Ravana) 왕을 물리치고 신으로 환생한 코살라왕국 라마 왕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공연에는 가면을 쓴 남성배우들이 전통 악단과 함께 나오는데 3일 간 밤마다 다른 에피소드로 공연을 한다.

르콘 콜은 공동체 내에서 구전(口傳)으로 전승돼 왔는데, 근대에 들어와 크메르 루주 독재정권으로 인해 1970년부터 1984년까지 14년 간 전승이 단절되기도 했다.

캄보디아 예술의 정점

르콘 콜은 새해를 맞은 후 특정한 날을 정해 행해진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캄보디아 버전인 ‘림커(Reamker)’에 나오는 에피소드만을 공연하는 르콘 콜은 가면을 쓴 남성 배우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실제로 보면 키가 작은 남성 무용수인데, 르콘 콜이 극예술인 만큼 필자는 ‘배우’라는 명칭으로 부르고자 한다.

이 춤의 동작은 캄보디아 고전무용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고전무용보다 동작이 짧고 조금 더 여유롭게 배우의 몸짓이 흐르는데, 전통 가면극 공연을 위해 개발됐다. 공연의 주목적은 땅의 수호신인 ‘닉 타 첸’에게 마을의 번영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함이다. 주로 벼농사 풍년·가뭄 종식·전염병 예방 등 농촌공동체 번영 등을 기원한다.

필자는 2017년 2월 칸달의 타스카르 마을(Ta Skor Village, Kandal)에서 공연을 관람한 바 있다. 신들이 공연에 만족하지 않으면 무대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배우들은 동작을 멈춘다. 음악은 계속되지만, 관객들도 침묵을 지킨 채 신들의 말을 경청한다. 신들이 공연에 만족하면 마을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크메르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도 캐릭터를 풍자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직접 보면 웃음을 터트리고 박수를 보내게 된다.

필자가 관람한 내용을 당시 배우에게 직접 물어봤다. 그는 비슈누(Vishnu)신의 환생인 라마 왕이 마왕 라바나 왕을 물리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 림커(Khmer Reamker)’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라마야나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알려줬다. 줄거리는 라마 왕자가 왕위를 물려받기로 한 후 아내인 시타(Sita)와 누이 락슈마나(Lakshmana)를 데리고 숲속으로 들어갔는데, 시타가 마왕 라바나에게 납치되고 만다. 라마는 원숭이 왕자인 하누만(Hanuman)의 도움을 받아 위기의 상황에서도 슬기로운 지혜를 발휘해 시타를 구출한다는 내용이다.

르콘 콜에 등장하는 인물의 캐릭터는 주로 원숭이(Sva), 군인(Neayrong), 라마(Rama), 거인(Neang) 등이다. 크게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풍자와 해학을 보여주며 영웅과 악마로 구분되는데, 영웅과 주인공은 의인적·고전적인 연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 원숭이 캐릭터는 살아있는 동물의 움직임을 모방해야 하고, 금박 가면을 쓴 악마 캐릭터는 전통 무술을 연마해야 한다.

가면을 쓴 아이들의 르콘 콜 공연을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겁게 관람하고 있다. 우측은 무대 뒤에서 원숭이 역할을 맡은 소년이 활을 쏘는 연기를 연습하는 모습이다.

전통예술의 바탕 ‘핀 핏’ 악단

필자가 즐겨듣는 음악 중에는 캄보디아 타악기 연주단인 ‘핀 핏(Pin peat)’ 악단의 연주곡이 포함돼 있다. ‘핀 핏’은 캄보디아의 모든 전통극예술에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가장 큰 규모의 전통악단인데, 르콘 콜의 음악 역시 핀 핏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주로 사원의 의식음악과 고대 왕실음악을 연주한다. 연주자는 창조적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실제 개별적으로 즉흥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모두 남성 연주자이다.

캄보디아의 공연 음악은 고대 전통 양식과 힌두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로 고대 신화를 묘사하는 종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전통극예술에 쓰인다. 12명의 남성이 연주하는 핀 핏 악단의 공연은 선율 타악기 요소가 강하며, 관현악 악기도 사용된다. 큰 징 및 심벌 (Cymbal, 손가락 심벌즈 Ching), 로나트 및 밤부 실로폰(Roneat, The lead high-pitched bamboo xylophone), 파이아우(Flute), 스랄라이(Sralai), 오보에(Oboe), 샤피(Bass Banjo), 작은 징(청동공 Small Chhing), 트로(Fiddle), 크로이(대나무 피리 Khloy)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드럼(Skor thom & Samphor) 등 대략 9~10개의 악기가 사용된다.

핀 핏 악단은 1~7세기에 걸쳐 캄보디아를 지배한 푸난 왕국 때 인도의 영향을 받으며 탄생했다가 크메르제국이 번영을 누리던 9~14세기 때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인도에서 상좌부불교·설일체유부·대승불교 등이 전해질 때 이 음악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과거에는 궁중 춤·가면극·그림자 연극·종교 의식 등 국가의 사원과 왕실에서 전통 음악을 연주했으나, 지금은 전통 연극이나 결혼식, 다양한 축제에서도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르콘 콜은 공동체 내에서 구전(口傳)으로 전승돼 왔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1970년부터 1984년까지 14년 간 전승이 단절되었다. 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캄보디아의 근대 정치적 상황과 비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르콘 콜 관계자들이 원숭이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옷을 입혀주고 있다.

아픈 역사 견디며 명맥 유지

1970년대 초, 정치적 불안과 오랜 내전으로 인해 캄보디아에는 여덟 개 마을에 르콘 콜 극단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급진 공산주의 정권인 크메르 루주 정권(Khmer Rouge, 1975~1979)이 집권한 후 지식인·의사·학자·연극배우 등 양민 약 200만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의 문화예술은 초토화되었고, 르콘 콜 극단 하나만 살아남았다. 바로 왓 스베이 안뎃 마을의 극단이다.

캄보디아 왕립발레단의 첫 남성 배우이자 ‘록 타 사르(Lok Ta Sar, 하얀 원숭이 할아버지)’로 알려진 사린(Yit Sarin, 1925~2015)은 르콘 콜 전수자다. 그의 본명은 ‘게오 사(Keo Sar)’인데 크메르 루주 정권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명했다고 한다.

사린은 1940년 시소와스 코사막(Sisowath Kossamak, 1904~1975) 왕비로부터 칸달 지방의 왓 스베이 안뎃에서 세 명의 소년과 함께 사흘 동안 원숭이 춤을 공연할 것을 요청받았다. 공연을 보며 만족한 코사막 왕비는 네 명을 왕립발레단에 입단시켰다. 이들은 당시 왕립발레단의 최고 지도자인 맘 얀(Mam Yan)의 지도아래 르콘 콜을 배웠다.

그러나 사린을 제외한 모든 르콘 콜 배우들은 크메르 루주의 학살이 두려워 왕궁을 탈출했다. 혼자 왕궁에 남았던 그는 르콘 콜의 대가로 불리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비롯한 다음 세대 남성 배우에게 연기와 무용을 가르쳤고, 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 1922~2012) 왕의 극단 배우 겸 하인으로 봉사하며 여러 왕실에서 인정을 받는 등 영예를 얻었다.

2015년 사린이 세상을 떠나자 캄보디아의 많은 국민이 크메르 왕국의 무형문화유산 부재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지금은 사린의 유일한 아들인 사린 바타낙(Sarin Vathanak)이 부친으로부터 배운 르콘 콜의 전수를 위해 헌신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선 리티(Sun Rithy, 1971~)도 르콘 콜의 전통을 잇는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크메르 루주 정권 아래에서 살아남은 그는 현재 약 20명의 핀 핏 악단 연주자와 함께 6세에서 15세 사이의 남학생들로 구성된 캄보디아의 마지막 르콘 콜 극단 중 하나를 이끌고 있다. 그가 르콘 콜을 가르치는 이유는 크메르 루주 정권에 의해 파멸된 전통예술을 소수 예술가들에 의해 살려낸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전통을 잇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르콘 콜 배우였다.

필자는 2017년 르콘 콜을 직접 관람했다. 당시 작은 키, 야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남성 배우의 강렬하고 건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크메르문화 간직한 대중 춤

유해교반(乳海攪拌) 설화의 천지창조에서 비슈누 신이 우유 바다를 휘젓자 발생한 거품에서 6억 명의 천사들이 태어났다. 왕실의 공연예술로 ‘천사’라는 뜻을 가진 ‘압사라’는 힌두교의 탄생신화인 ‘바가바타 푸라나(Bhāgavata Purāṇa)’에 그 기원을 두었다. 신성한 신에게 바치는 전통극예술로 주로 왕족과 지식층만을 위해 만들어진 고전 무용이다. 이로 인해 평민들에게는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반해 르콘 콜은 대중을 위한 예술 공연으로 캄보디아 불교 부흥에 일조했다고 평할 수 있다. 또한 크메르 전통춤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약간 현대화된 민족 무용이기도 하다.

르콘 콜은 캄보디아에서 보통 4월 중순에 열리는 새해 축하행사, 종교 제례의식 등 중요한 축제 때 공연되고 있다. 이 공연은 깊은 불교 교리와 철학에 바탕을 둔 의식으로, 공연을 배우는 사람은 마을 주민 중에서 남성에 한한다. 종종 여러 날 동안 지속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하룻밤 공연을 진행한다.

필자는 2017년 압사라와 르콘 콜을 모두 관람했다. 압사라를 관람할 때에는 다소 긴장을 했는데, 르콘 콜을 관람할 때는 우주의 한 가운데 있는 크메르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 마음이 편안했었다. 작은 키, 야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남성 배우 내면의 정신세계와 건강한 기운도 느낄 수 있었다. 춤 속에는 캄보디아인의 창조성과 높은 문화적 자긍심이 스며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캄보디아인 특유의 이타적인 배려심과 크메르 민족의 정체성은 르콘 콜의 높은 문화적 가치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캄보디아의 춤과 음악은 수 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특히 캄보디아의 춤은 움직임과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전통극예술이라고 평할 수 있다. 르콘 콜은 축제를 위한 춤과 종교적 목적으로 공연하는 춤으로 전승되며, 캄보디아 문화와 삶의 일부이자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예술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앞으로도 ‘왓 스베이 안뎃의 르콘 콜’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르콘 콜 공연에 앞서 출연배우, 낭송가, 스님, 마을 이장, 지역단체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선율―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캄보디아 전통극예술을 연구했다. 2018년 논문 ‘극예술에서 배우의 감정과 표현에 관한 의미 체계 연구–카타칼리와 압사라를 중심으로’로 문화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논문으로는 ‘카타칼리와 압사라에서 본 감정표현 연기에 관한 이론적 고찰’(KCI 등재, 한국동양예술학회 2017) 등이 있다. 현재 홍주문화관광재단 이사, 옥천군 도시계획위원회 문화예술자문위원, 제4대 익산시 경관위원회 문화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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