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눈으로 불교 직시
그의 ‘순수 경험’ 이론은
불교의 空과 맥 같이해


성공적인 심리상담을 위해서는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의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교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본질을 이해하고
불교의 심리학적 가치를 드러낸 학자가 있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다. 
그는 이것을 ‘순수 경험’이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심리상담에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행동에 관한 충분한 자료 없이 상담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상담을 진행하면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고, 몇몇 과정을 거쳐 내담자는 의식과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다. 성공적인 상담을 위해서는 내담자의 행동에 관한 객관적 자료가 많을수록 도움이 클 것 같지만, 이보다는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의 공감이 더욱 중요하다. 공감이 잘 형성되려면 상담자가 어떤 선입관도 없이 내담자의 모든 부분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심리학자 중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의 마음을 공감하듯이, 불교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본질을 이해하고 불교의 심리학적가 가치를 드러낸 학자가 있다. 바로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순수 경험’이라고 불렀다. 순수 경험은 판단이 개입되기 이전에 생생하게 포착되는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순수 경험’의 특징은 바로 생생함과 충만성이다. 아직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없지만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모든 것을 초월하면서도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텅 비어있으면서도 꽉 차있는 경험이 바로 순수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을 위해서는 어떠한 사전지식도 필요하지 않다. 어떤 선입관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경험 그 자체에 마음을 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 후반에 실용주의를 크게 발전시킨 철학자다.

순수 경험과 불교의 空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 후반에 실용주의[Pragmatism]를 크게 발전시킨 유명한 철학자이자 미국에서 심리학을 처음 가르친 학자이다. 그는 또 종교적 체험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였던 종교심리학자이기도 하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철학·종교학·심리학 중 어느 분야든 공부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뛰어난 학자이다.

제임스는 과학과 실증적인 학문에 능통했으며, 동시에 증거만능을 주장하는 과학적 학문방법의 약점과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본래 지니고 있는 선함과 직관적 이해력을 중심으로 우리의 경험 그 자체를 온전하게 체험하는 실천적 수행을 강조했다. 이것은 제임스가 실용주의와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에 토대를 둔 학문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실용주의는 ‘실행’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프라그마(Pragma)’에서 유래한 용어다. ‘어떤 것에 관해 제대로 알고 싶으면 실제로 해보면서 알아가자.’는 모토(Motto)로 경험을 통한 검증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이다. 이와 달리 초월주의는 우리가 가진 능력 중에서 이성보다는 직관이 정신의 본성을 제대로 볼 수 있으므로 뛰어난 직관으로 인간과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진리를 탐구하자고 주장한다.

제임스에게 불교는 낯선 종교였지만, 그는 특유의 열린 눈으로 불교를 보았고 경험했다. 그리고 불교에서 과학과 종교가 화해하고, 정신적 차원을 높여 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보았다. 그는 불교에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던 당시 유럽과 미국학계에 불교가 얼마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종교인가를 역설했다. 그 덕분에 많은 후학이 제임스의 사상을 바탕으로 불교의 미국화를 전개해 나갔다. 선불교가 미국에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1870~1966)가 대표적인 예이다.

윌리엄 제임스가 살았던 19세기 중후반의 유럽과 북미에는 불교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만연했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는 제국주의의 진출과 기독교 문명의 전파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서구화하려는 움직임이 상당히 강했다. 당연히 서양과 동양, 기독교와 비기독교, 문명과 비문명(야만)이라는 이원적인 구도로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팽배했다.

불교는 서구화되지 않은 사회에서 나온 야만적인 이교도 신앙으로 또는 ‘무(無)’를 숭배하는 허무주의적 종교로 공격받고 있었다. 더구나 불교경전에 대한 바른 번역보다는 잘못된 번역이 더 많았다. 불교용어와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올바른 체계도 없어서 당시 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마저 “불교는 단지 힌두교의 일부분이며, 불교도들이 목표로 하는 해탈이란 매우 염세적인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았다. 불교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시각은 1890년대 이후 막스 뮬러, 폴 카루스, 리즈 데이비스 등의 체계적 연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점차 수정되었다.

심리학자인 제임스가 불교를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를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1903년 12월 어느 날, 하버드대학교에서 자신의 심리학 수업에 노란 승복을 입은 스리랑카의 재가수행자 다르마팔라(Dharmapāla, 1864~1933) 법사가 청강을 하러 들어왔다. 10년 전 시카고에서 열렸던 세계종교의회에서 인기를 모았던 스타 강사인 그를 제임스 교수는 금방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 의자에 앉으세요. 당신은 나보다 심리학 강의를 더 잘 하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입니다.”

제임스 교수의 즉석 제안에 다르마팔라는 마음과 관련된 몇 가지 불교 교리를 간단히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제임스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오늘 들은 내용은 25년 후 모든 학생이 공부하게 될 심리학입니다.”

제임스는 불교를 ‘심리학’이라고 불렀다. 제임스에게 불교는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비관적인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관한 심층적인 이론체계와 정신적 계발을 단계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수행체계를 갖춘 고도로 발달된 종교이자 심리학이었던 것이다.

또한 제임스는 불교가 힌두교의 일부분이라는 기존의 오해에 대해 반박하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희망적인 종교라고 주장했다. 불교에 대한 제임스의 긍정적인 확신은 유명한 요가 스승인 비베카난다(Vivekananda, 1862~1902)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893년 세계종교의회에서 비베카난다는 “불교는 힌두교의 일부이자 브라만의 철학에 얽매여 있다. 또 무신론으로 인도 안에서 소멸한 종교”라고 말하며 불교에 대한 비관적인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을 듣고 제임스는 자신이 얼마나 불교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면서 비베카난다의 불교에 대한 생각을 반박하는 서한을 보냈다.

불교에 대한 제임스의 옹호는 꼼꼼한 이론적 연구가 아니라 공감을 통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제임스의 시대에는 불교에 대한 이론적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아비달마의 이론체계를 접할 수 없었으며, 공(空)사상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는 불교에 대한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불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교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고, 불교가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를 생각하면, 그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측)와 그의 동생 헨리 제임스(Henry James, Jr.). 헨리 제임스는 유명한 소설가이다

“마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주장

윌리엄 제임스는 1842년 1월 11일 미국 뉴욕의 부유한 가정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이민자로서 뉴욕에 정착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제임스의 아버지는 철학과 신학에 깊은 관심과 상당한 지식을 가진 재력가로 다섯 자녀에게 풍부한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제임스와 동생들은 유럽을 자주 여행했고, 뛰어난 학교와 가정교사들로부터 폭넓은 교육을 받았으며 문학과 예술을 배우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자란 제임스와 그의 동생들은 후에 각자 자신의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제임스는 어릴 때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다가 후에 마음을 바꿔 과학자가 되고자 대학에서 화학과 생리학을 공부했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자립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의사가 되기 위해 하버드 의과대학으로 전학했지만, 이내 의사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아마존 탐험에 뛰어들었다. 20대 중반에는 우울증과 시력 문제, 허리통증에 시달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독일에 머문 적이 있다. 독일에서 홀로 쉬는 동안 그는 심리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의대로 돌아와 1869년 대학을 마친 후 의사자격을 취득했지만 의사가 되지 않고 대학 강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생리학을 가르쳤지만 이후에 자신이 원하는 심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때가 1875년으로 미국 심리학의 원년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은 심리학 강의는 바로 내가 처음 했던 심리학 강의야.”라는 제임스의 말은 상당히 유명하다. 제임스는 하버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심리학의 교과과정을 정비했고 미국 최초로 심리학 연구실을 만들었다. 1890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심리학의 원리〉는 영어로 쓰인 최초의 심리학 연구서이다.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연구한 심리학 서적 중에서 이렇게 깊이 있게 연구한 책은 드물다는 평가를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당시 한 발 앞서 있던 유럽 심리학계는 미국 심리학계를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당시 실험심리학을 창시해 이름을 떨치던 독일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의 구조주의적 성찰, 즉 인간 심리를 여러 가지 요소로 분류해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 반대했다. 분트가 인간의 정신을 여러 가지 방과 칸으로 나뉘어져 있는 하나의 집으로 보았다면, 제임스는 인간 정신을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보았다.

제임스는 “마음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강물을 잘라낼 수 없듯이 우리의 경험에서 경험의 내용을 떼 낼 수 없다. 경험에 대해 가장 잘못된 생각이 뭔가 하면 경험을 인공적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쓰는 언어로 경험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개념적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체험하지 못하게 한다고 보았다. 결국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의식과 의식의 대상과 그 대상을 향한 태도와 그 와중에 느껴지는 자기에 대한 느낌 등은 애초에 없다. 애초에 모든 것이 합쳐진 온전한 의식의 흐름만이 있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형이상학적인 논쟁보다는 경험론적 입장에서 생생하게 경험한 것만을 토대로 진실을 탐구했다. 우리는 세상을 마음속에 이미 형성돼 있는 관념적인 틀로 구분하고 나누어 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인식은 세상을 정말로 경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경험이 통째로 들어온다. 제임스의 표현으로는 ‘격류처럼 흐르는 의식’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대표 저서.

이러한 의식에는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하는 대상이라는 구분이 없다. 단지 생생한 체험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말로 현상만이 있을 뿐, 그것을 분류하고 개념 짓는 작용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생짜의 경험은 생생하고 충만하고 신비롭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아니 사람들은 이러한 순수 경험을 관념으로 나누고 구분 짓고 판단해 일부의 경험만을 떼어낸다. 그들은 관념에 사로잡혀 나와 너를 구분하고 사물을 실체화한다.

제임스는 “우리가 관념에 사로잡히기 전에 본래의 생생한 체험이 선행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념에 사로잡힌 이론적 논쟁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보고, 실천적 수행에서 오는 충만한 경험에 무게를 두었다. 제임스의 눈에 불교는 가장 뛰어난 현상학이었고, 경험주의였으며, 실용주의였다. 의식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한 장면을 보고 집착해 그것을 마치 정지된 화면인 냥 왜곡하고, 영원히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고 보는 우리의 잘못된 견해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던 제임스는 불교도 동일한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문진건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조교수. 미국 ‘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CIIS)’에서 동서양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CIIS 동서양심리학과 초빙교수(2012~2014), 미국 중독심리전문상담사(CAADAC), 동국대학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2015~2019)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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