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러러 발원하옵나니,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께 무릎 꿇고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의 향화를 올리며 귀의하나이다. 오늘 봉암사 청정수행도량에 모인 저희 불문조종(佛門祖宗)의 후학들은 그 동안의 잘못을 참회하옵나니, 자비로써 증명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저희들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했고, 수행보다는 명리를 탐하였으며, 칭찬보다는 비방을 일삼았으며, 지혜보다는 지식 얻기를 즐겼으며, 화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수행인의 본분은 망각하고 교만과 방일만 늘어왔습니다.

이런 까닭에, 최근에 불교계를 대상으로 한 세간의 평가가 일부의 그릇된 인식과 의도적인 음해의 요소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나, 근본적으로는 우리 불교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지금의 현상을 단순한 외부의 음해와 몰이해로 구실삼아 무사안일한다면 교단은 더 큰 위기와 재앙에 휩싸일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선대의 수행 정신을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오늘 이곳 봉암사 역사의 자리에서 예참(禮懺)하는 마음으로 모이게 된 것은 60년 전 청담, 성철, 자운 스님 등 청정납자들의 자정과 혁신 운동이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닌 바로 지금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결사 자세로 돌아가서 지금의 수행 풍토를 점검하고 솔직한 참회와 반성을 통해 제2의 결사 운동을 주창할 시절인연이 도래한 까닭이옵니다. 이제 우리는 구산선문의 이 자리에서 잘못된 불교계의 폐습이 있다면 과감히 혁신하고 청정한 수행가풍을 회복하는 결사의 원년으로 삼을 것입니다.
저희 참회제자들은 이제부터 수행의 근본으로 돌아가서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서 중생의 아픔을 살피고 중생제도의 서원을 굳건히 하며,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부대중이 일심으로 참회하나이다.

1.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무상의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받들어 실천하지 못함으로 인해 세상의 밝은 빛이 되지 못하였음을 참회합니다.

2.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고, 갈등을 극복하고, 희망을 안겨주어야 함에도 오히려 중생에 아픔을 주고 걱정을 끼치고 갈등을 유발하는 존재가 되어 있음을 참회합니다.

3.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소임을 맡고 실행함에 있어 대중을 소중히 여기고 공정하고 투명해야 함에도 사사로운 이해와 아집으로 이를 그르쳤음을 참회합니다.

4.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정진하라, 무명을 떨치라, 상을 버리라 외쳤지만 정작 우리는 게으름과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음을 참회합니다.

5.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승가 공동체는 무엇보다 ‘화합'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음에도 편 가르기와 차별에 빠져들어 ‘화합'을 지키지 못하였음을 참회합니다.

6.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우리 내부에 작은 허물이 있을 때 바로 드러내어 치유하지 못하고 남의 일인 것처럼 무관심하여 수수방관하고 다른 곳에 책임을 전가하며 냉소하였음을 참회합니다.

7.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용맹정진하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이거늘, 명예와 이익을 떨쳐버리지 못하였음을 참회합니다.  

8.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율장의 전통과 종헌 종법의 절차가 우리 스스로 존중해야 할 소중한 가치임에도, 우리의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세간의 질서와 규율에 더 집착하였음을 참회합니다.

9.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스스로의 허물을 부끄러이 여길 줄 알며 남을 기꺼이 존중하고 칭찬하여야 함에도,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비방하였음을 참회합니다.

10.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옵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큰스님들의 결사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수행자의 본분을 망각한 허물을 가슴깊이 참회합니다.

거듭 참회 발원하옵나니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시여.
자신의 단점을 모르는 것보다 더 심한 병이 없으며, 자기 허물에 대하여 충고 듣기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큰 장점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위기와 고난이 졸음을 깨우는 경책의 죽비 소리임을 알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것입니다. 고려중기 보조국사가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에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다시 일어나라'고 하신 선언을 참회의 주제로 삼아 잘못된 자리에서 자정하고 참회하여 다시 시작할 것이옵니다. 그래서 도반과 더불어 탁마하면서 수행과 지계를 실천하여 출가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수행종풍을 진작시켜 불자와 국민들로부터 믿음과 존경을 받는 구도자가 되려하오니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또한 한 구절의 가르침을 얻기 위하여 천개의 산을 넘는 자세로 용맹 정진할 것이며, 머리를 태우는 불을 끄듯이 각자의 수행을 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간절히 참회 하옵나니, 이제부터는 부처님의 부사의한 훈습(薰習)을 인(因)으로 삼고, 모든 부처님의 대비원력(大悲願力)에 의지할 것입니다. 아울러 오늘의 이 참법의식을 통해 불일은 증휘(增輝)하고 교단이 화합하고 종문(宗門)의 근심이 사라지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나이다.
나무석가모니불.
참회진언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21독)

불기 2551년 10월 19일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 동참대중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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