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경허ㆍ만공선사를 빼놓고는 한국 근대 불교의 중흥을 논할 수 없다. 오늘의 한국 불교 납자(衲子)치고 경허ㆍ만공의 법은(法恩)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입지 않은 자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한국 근대 불교의 핵심 선맥인 경허ㆍ만공선사의 도량 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 덕숭산 수덕사(충남 예산)가 그 가풍을 살려 지난 5일 선(禪)미술관을 개관했다. 수덕사 선미술관은 경내에 있는 고암 이응노 화백의 고택이었던 수덕여관을 매입, 중수해 미술관을 만든 것이다.

낡은 목재만 교체하고 내부 구조와 초가지붕은 옛모습 그대로 보존했다. 그래서 외관부터가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대문 양 옆의 누마루며 부엌ㆍ툇마루 등은 그 자체로도 전통 한옥의 관광 가치를 갖고 있다. 옆 뜰의 바위에 조각한 고암의 암각화는 이미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수덕사 선미술관의 불교사적 의미는 이러한 외형적인 문화예술적, 관광적 가치 보다 몇 백배 높은 정신적 풍격(風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한국 불교 최초의 사찰 미술관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부 큰 절들에 박물관이 이미 건립돼 있거나 건립 중이지만 전용 미술관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불교사상의 근간인 선사상의 구현이라는 점이다. 미술관 이름부터가 ‘선'자를 붙였거니와 설립 취지 및 운영 방침이 선서화(禪書畵) 중심의 전시회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가시적인 선사상 선양의 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 불교가 선을 그처럼 강조하면서도 이렇다 할 대중화의 길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수덕사 선미술관은 하나의 훌륭한 전등(傳燈)이라 할 수 있다.

수덕사 선미술관이 앞으로 선서화 전시회를 전문적으로 하는 산사 미술관으로 한국 불교 선맥 전승의 향도적 역할를 해주길 기대한다. 이는 조계종 종풍과 덕숭산 가풍을 오늘에 널리 밝히는 광명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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