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교육부장 세운 스님.한국은행이 2009년경 발행할 예정인 5만원, 10만원권 화폐의 인물초상 최종후보로 김구와 신사임당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부 여성계에서는 여성이 화폐 초상에 삽입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유교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현모양처'로 상징되던 신사임당은 변화하는 시대의 여성상에 부합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조선 500년 간 유교문화의 영향 아래 살아오다보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후 급격한 변혁기를 거친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저간에 유교의 잔재가 짙게 깔려있는 게 사실입니다.

인물 선정의 적정성을 떠나 역사 속 인물이 그 시대상황에서 존경받을 만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면 시대가 변해도 그 위상은 유지돼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원인은 몇 해 전부터 간간이 사용되고 있는 ‘황혼이혼'이란 신조어 때문입니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이혼이 1996년 971명에서 10년이 지난 지난해 4,338명으로 4.5배나 늘어났습니다. 특히 여성 노인들의 요구에 의한 이혼은 평균을 훨씬 웃도는 6.3배에 달했습니다.

광복을 전후해 태어난 이들은 유교문화에 깊이 젖어있는 세대입니다. 그런 이들의 변화는 ‘이혼'을 크게 터부시하지 않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무엇보다 여성의 경제적인 안정이 중요한 원인이라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경제활동은 남성이 하고, 여성은 가사를 돌보는 것을 당연시 여겼지만, 현대에 들어서며 여성의 경제활동이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富)가 사회와 가정의 주도권과 직결될 만큼 중요시됐던 것은 부처님 당시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자는 다섯 가지 힘을 가지고 남편을 가볍게 본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색(色)의 힘이다. 둘째는 친척의 힘이며, 셋째는 농사의 힘이요, 넷째는 아이의 힘이며, 다섯째는 스스로 지키는 힘이다. 이것을 일러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만일 남편에게 한 가지 힘만 있으면 그 여자를 눌러 버리니 그것은 바로 부귀(富貴)의 힘이니라. 남편이 부하고 귀하면 색의 힘도 당하지 못하고, 친척과 농사와 아이와 스스로를 지키는 힘도 당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 한 가지 힘으로 모든 힘을 이기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근기에 맞는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보니 이런 세속적인 설법도 하셨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간은 부정하고 싶어도 ‘황금만능주의'에 찌들어 있으니 말입니다.

세속의 때를 씻어내야 할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사람들이 오히려 세속의 때에 물들어가는 모습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힘든 삶을 무턱대고 참고, 양보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남녀를 불문하고 항상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인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사찰에 다니는 불자 중에는 나이든 신도들이 많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가정에서조차 실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세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가정에서 ‘자타불이'의 실천이 보다 활발해진다면 노인부부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 형제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낯부끄러운 가정사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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