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선도하는 한국불교의 힘은 수행에서 비롯

정부나 사설기관에서 종교에 관하여 조사해서 내놓는 보고서들을 보면, 남한 인구의 반 남짓이 이런저런 특정 종교의 신행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종교인구 가운데에서는 불교신자가 거의 반을 차지하고, 그리스도교의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를 합치면 불교신자보다 조금 많다. 그 외 종교의 신자는 다 합쳐도 미미한 숫자이다.

그러니까 잘 알다시피 불교가 남한인구의 1/4을 신자로 하는 최대의 종교인 것이다.

그러나 신행의 빈도나 밀도를 보면 그런 분포가 무색해진다. 1999년도 통계청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개신교 신자들은 73.4%, 천주교는 55.2%가 매주 한번 이상 신행에 참가한다. 한편 불교신자의 경우는 그 비율이 2.2%에 불과하다. 월 1-2회가 12.9%, 1년에 3-6회 정도가 27.1%, 그리고 1년에 1-2회 정도가 가장 많아서 34.4%로 나타났다. 아예 참여 않는다는 응답도 21.9%였다.

신행활동에 참가하는 빈도가 모든 경우에 그대로 신행의 밀도, 강도를 말해준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 빈도와 밀도가 일치하리라 짐작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의 통계숫자를 잠깐 들여다보기만 해도 불교는 신자 숫자로는 최대이지만 그 신행의 총량에서는 다른 두 주요 종교에 밀려도 한참 밀린다는 점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불교 신행의 특징이 워낙 그렇기 때문에 통계숫자만 가지고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1년에 딱 한번, 그것도 어떤 해에는 사정 상 건너뛰기도 하면서, 부처님 오신 날에 등 하나 달아매는 것이 유일한 신행활동이면서도 당당하게 불자라고 자처할 수 있는 그런 심성도 오롯이 귀중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지금 불교가 담당해야 할 막중한 시대적 책무를 생각하면 그런 여유롭고 느슨한 양상이 자못 조바심을 일으킨다.

다른 종교와의 경쟁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흔히 나온 진단이지만 이른바 물질문명의 도도한 권세가 횡행하고 세속화의 추세가 거스를 수 없이 진행되면서, 종교는 너 나 할 것 없이 위축되어가고 있다. 사회와 사람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사유와 행동 방식 등을 건전하게 지탱하고 선도하는 힘이 갈수록 찌그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바람직한 미래를 빚어내기 위한 선도적인 노력의 무대에서 종교는 점점 보잘 것 없는 조연으로 밀려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무대 밖으로 밀려났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무대 아래 그 궁벽한 자리에서 일종의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모습으로 종교끼리 치열하게 싸우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특히 불교는 근대화 이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사회와 문화 선도의 주 무대로부터 일찌감치 밀려난 바 있다. 지금도 완전히 그 핸디캡을 시원하게 극복하고 질곡에서 벗어났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더욱이 당대 문명과 사회의 폐해를 날카롭게 인지하고 크고 넓은 안목과 지혜로써 인류의 앞길을 이끌어가는 밝은 빛을 내려면 밀도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선대가 물려준 유품의 관람료를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는 데 만족해서는 그런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없다. 남한 총인구의 1/4이라는 엄청난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흐릿한 불빛만 내고 있는 현황을 타개하고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결집시키는 방안을 찾는 데 한국불교의 장래가 달려있다.

윤원철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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