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아름다움은 형상과 마음 중 어디에 있을까?

지오토(Giotto di Bondone)가 그린 제단화 ‘성인과 천사에 둘러싸인 성모와 예수(Maestà, The Ognissanti Madonna)’.

우리는 르네상스의 남상(濫觴, 기원)이자 중심지였던 피렌체(Firenze)로 향했다. 아펜니노 산맥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를 아르노강이 수억 년에 걸쳐 다듬은 분지에 꽃이 흐드러졌고 사람들이 모여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창조했다. 이름 그대로 꽃마을(Fiorentina, 처음 이름은 두 강 사이의 마을이란 뜻으로 ‘Fluentia’). 기름진 땅과 풍부한 물, 맞춤한 기온, 밝은 태양 아래 무수한 꽃이 피어났다. 그 향기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천재의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분위기 속에 그리스와 로마 정신을 토양 삼고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신의 종속에서 벗어나 인간을 표현하며 르네상스(Renaissance)의 꽃을 만개시켰다. 그 꽃은 곧 열매를 맺고, 그 씨는 유럽으로 세계로 퍼져나갔다.

차에서 내려 아르노강변을 걸으며 수 백여 년 전에 이 길을 걸으며 여러 생각을 했을 이곳 출신 위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단테의 〈신곡〉 가운데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구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가곡 ‘피렌체의 꽃 파는 아가씨(La fioraria Fiorentina)’의 가락을 흥얼거리며 조금 천천히 이동했더니 일행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콘크리트로 지은 고층건물, 아파트식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되돌아간 듯,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다. 도시 전체가 예술품이고 문화유산이었다. 단테 알리기에리·산드로 보티첼리·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레오나르도 다빈치·필리포 브루넬레스키·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도나토 디 니콜로 디 베토 바르디는 인간의 꿈과 현실을 노래한 시로, 신을 떠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으로, 인문주의의 정신을 과학으로 구체화한 건축으로 주술의 정원에서 근대의 세계로 대중을 이끌었다.

메디치가가 소유했던, 르네상스와 그 이후의 시대의 예술품 2,500여 작품이 전시된 우피치 미술관의 외관.

예술은 거짓인가? 이데아인가?

예술은 진리를 표현하는가? 아니면 허구·가짜·거짓인가? 서양의 예술을 이해하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해야 한다. 플라톤의 〈국가〉 7권을 보면 동굴의 비유가 나온다. 동굴이 있고 죄수들은 머리조차 돌릴 수 없도록 묶여 있다. 죄수의 뒤로는 나무조각으로 만든 말과 새의 상들이 있다. 더 뒤로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럼 이 죄수들은 벽에 비친 말과 새의 그림자를 실제 말과 새라고 착각한다. 이 그림자는 허상이고 허위이다. 그러면 죄수들이 실재하는 말과 새를 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누구인가 와서 이 죄수를 풀어 주고 그 죄수가 햇빛이 비추는 대지에서 실상을 실상대로 보게 해야 한다. 그러면 죄수들은 그 전에 동굴에서 말과 새라고 간주했던 것이 실은 이를 조각한 나무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렇게 태양 아래에서 실상을 실상대로 보는 것이 이데아(Idea, 단일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한 궁극적 실재)를 인식하는 것이고, 반면에 동굴에 갇혀 잘못 봤던 것이 그림자다. 죄수를 풀어줘 태양 아래서 이데아를 볼 수 있게 하는 자, 그가 바로 철학자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고 시인은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데아는 단일하고 영원불변하지만 그림자는 변화무쌍하고, 그래서 덧없고 참이 아니라 거짓이다. 플라톤은 인간이 가짜인 그림자의 세계에서 참된 이데아의 세계로 상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플라톤, 〈국가·政體〉)

이어서 플라톤은 10권에서 세 가지 침대의 비유를 한다. 여기에 이데아의 침대가 있다고 간주하자. 이 침대는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고 5분만 자도 모든 피로가 다 풀린다. 목수가 이데아의 침대를 본 따서 정교한 침대를 만든다. 이데아의 침대에 이르는 것이 목표이지만 그 어떤 목수도 그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래도 목수는 모든 노력을 다해 모든 사람이 잠을 잘 자고 쌓였던 피로가 금방 해소되도록 만든다. 화가는 목수가 만든 침대를 본 따서 그림을 그린다. 이처럼 예술이란 것은 이데아를 모방한 것을 다시 2중으로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진리의 세계에서 두 단계나 떨어진 허위인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반박했다.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은 운문을 쓰느냐, 산문을 쓰느냐 하는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 〈詩學〉)

실제로 18세기 조선시대에서 기생이 양반집 도령과 사랑을 하다가 신분 차이 때문에 혼인을 하지 못하자 자살을 한 역사적 사건과 이에 상상을 보태어 소설적으로 구성한 〈열녀춘향수절가〉 판소리가 있다고 설정하자. 전자는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고 후자는 허구이다. 하지만, 전자는 개별적 사건이기에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지는 않다. 반면에, 당시 〈열녀춘향수절가〉를 판소리로 공연하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함께 울고 웃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기생도 양반처럼 정절의 이념에 충실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신분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 있으며 다 같이 존엄하다.”라는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어서 대중을 감동시킨 것이다. 이처럼 플라톤의 생각과 달리, 시와 예술은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기에 허구의 양식이라 하더라도 이데아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랐다. 그럼에도 논란은 계속되었다. 기독교가 예술을 압도하던 시대에, 성상파괴주의자들이 말했다. “지상 최고의 장인이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형상을 아무리 거룩하게 빚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의 거룩함에 미치지 못하기에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미지는 가짜인데, 보이지도 경험할 수도 없는 신을 이미지로 재현한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며 불경이다.” 성상옹호론자들은 이에 반박한다. “설혹 형상이 보이는 것과 경험할 수 있는 것 저 너머에 있는 신성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매개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를 수 있으니 성상이야말로 ‘가난한 자들의 성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페스트가 신의 벌이니 기도하고 면죄부를 사라고 한 데 맞서서 병균 때문이라며 위생과 방역, 의학적 치료를 행했다. 인간은 서서히 ‘주술의 정원’에서 해방되어 계몽의 빛이 환한 세계로 나아갔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재해석하며, 신의 종속에서 벗어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했고, 종교나 이데올로기에서 탈각해 예술 그 자체(Art for art itself)를 드러냈다.

우피치 미술관 외벽 벽감에 세워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상.

우피치에서 만난 아름다운 세 여인

우리는 세계 최고의 르네상스 박물관인 우피치(Uffizi) 미술관을 관람했다. 7월에는 네댓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4월에 온 덕분에 대략 한 시간을 기다려 입장할 수 있었다. 미술관으로 쓰는 건물은 조르조 바사리가 메디치를 위해 지은 것으로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다. 가운데 광장을 회랑 형식으로 4~5층의 건물이 둘러싸고 있고, 광장은 아르노강으로 이어졌다. 건물에는 벽감(niche)을 파고 다빈치를 비롯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예술가들과 메디치가의 여러 인물 조각상을 배치했다. 치안 판사 사무실, 이어서 피렌체 시정부의 사무실(Uffizi, office의 뜻)로 쓰인 것에서 유래해 우피치 미술관으로 명명했다.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가 피렌체 시에 기부하는 바람에 한 해 수백 만 명이 방문하는 미술관이 되었다. 총 45개의 방에 2,500점에 달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수많은 성모 가운데 돋보인 것은 지오토와 리피의 성모였다. ‘모든 성인에 둘러싸인 성모와 예수(Maestà, The Ognissanti Madonna)’는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7~1337)가 피렌체 베네딕토회의 요청에 따라 그린 오니산티 성당의 제단화이다. ‘마에스타’란 모든 성인과 천사에 둘러싸인 채 옥좌에 앉은 성모를 가리킨다. 첫 느낌은 금빛 찬란함이었다. 황금빛 바탕을 하고 있고 성모·예수·예언자·성인·천사 모두 금빛 후광이 빛난다. 옥좌의 문양과 기둥에도 금빛이 칠해져 있다. 전체 구도를 보면 프레스코화의 평면 구도에 약간의 입체감과 원근법이 더해진 느낌이다. 3차원의 3단계 구도로 가운데 옥좌가 있고 옥좌의 뒤에는 성인이, 앞에는 천사가 봉헌할 왕관과 보석·꽃병을 들고 있다. 성인의 얼굴도 약간의 음영 처리를 해 입체적으로 보인다. 모든 성인과 천사가 하나 같이 성모를 응시하고 있다. 성모와 예수님은 정면으로 그려졌고, 다른 이들은 측면으로 그려졌다. 그 시선들의 정점에 거룩한 모습을 하고 성모와 예수님이 자리하며, 성모와 예수님은 성인과 천사보다 훨씬 크다. 금빛 가운데 성모가 입은 옷의 청색과 흰색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Gloria Fossi, Uffizi Gallery-art, history, collection)

프라 필리포 리피가 젊은 수녀 루크레치아 부티를 모델로 그린 ‘성모와 아기예수와 두 천사’. 관객을 향해 천진하고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천사는 리피가 루크레치아를 납치하여 관계를 맺은 후 낳은 아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

다음은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 1406~1469)의 ‘성모와 아기예수와 두 천사’다. 바람둥이 수도사 리피는 젊은 수녀 루크레치아 부티(Lucrezia Buti)를 보고 한눈에 반해 모델로 삼고, 이어서 납치해 성관계를 맺고 자식까지 낳았다. 그럼에도 코시모 메디치가 뒷배를 봐주는 바람에 파문도, 추방도 당하지 않았다. 이는 코시모의 부탁에 의해 그린 그림이다. 자신과 관계를 맺은 여인을 그린 탓일까? 이 그림은 한 마디로 세속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성모다. 단아한 이마, 날렵한 코, 살포시 뜬 커다랗고 맑은 눈과 기다란 속눈썹, 길게 뻗은 목과 피부를 투명하게 비추는 미사포 등 현대의 기준에서도 아름다운 여인이다. 흘러내린 옷의 주름도 자연스럽고 입체적이며 양감이 풍부하다. 전면에 보이는 천사는 관객을 향해 미소 짓고 있다. 이 또한 자신과 루크레치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모델로 했기 때문인지 거룩하기보다 장난스럽다. 리피는 배경의 산수를 액자에 담아 그림 안의 그림을 표현하고 있다. 이 천사가 예수님을 바치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성모는 감사하다는 듯 양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 잉태하심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혹시 리피가 자신이 루크레치와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은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변명하려는 저의는 아니었을까?(Giorgio Vasari,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rchitects/Gloria Fossi, Uffizi Gallery-art, history, collection)

발걸음을 옮기니 교과서나 미술도감에서만 보던 ‘비너스의 탄생’이 있다. 필리포 리피의 제자인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스승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딕양식의 전통에 시에나파의 양식을 결합하고 미술에 시와 서사와 신비를 더했다. 그림을 보면 가운데 조개 위에 미의 여신 비너스가 가슴과 성기를 가린 채 전신으로 서 있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금발 머리는 바람에 날리고 8등신의 늘씬한 나신이 살짝 오른 발을 들어 왼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서 있다. 반듯한 이마, 초승달과 같은 눈썹, 곱게 흘러내린 코, 도톰한 입술, 무언가를 응시하는 맑고 커다란 눈, 얼굴만큼 길게 뻗은 목, 적당하게 봉긋 솟은 가슴, 알맞게 살집을 형성하며 매초롬하게 흘러내린 다리 등 완벽한 미인의 모습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크로노스(Kronos)는 어머니 가이아(Gaia)의 성기 안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 우라노스(Uranos)의 성기가 들어오자 잘라서 바다에 던져 버린다. 이에 하얀 거품이 피어나고 그 속에서 비너스(Venus)가 탄생한다. 그러자 새벽의 여신 오로라(Aurora)는 제피루스(Zephyrus)를 안고오고, 제피루스는 그리스 지역에서 봄바람인 서풍을 불어 조개와 비너스를 해변으로 밀어 올린다. 헤라(Hera)의 시종인 호라이(Horai)는 봄의 님프답게 데이지 문양으로 가득한 옷을 입고서 비너스를 맞는다. 비너스 주변으로 천화(天花)로서 장미가 무수히 떨어지고 있다.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평한 대로 “정신과 물질의 융합(The fusion of spirit and matter), 이데아와 자연의 조화로운 혼인(The harmonious marriage of Idea and Nature)”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Gloria Fossi, Uffizi Gallery-art, history, collection)

르네상스를 수놓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피렌체의 아르노강과 강변 풍경.

가장 아름다운 것은 마음 속 불상

〈금강경〉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을 보면 석가모니께서 “형상으로 나를 보고, 음성으로 나를 구한다면, 삿된 도를 행함이니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고 게송을 읊는다. 그럼에도 왜 그리 엄청나게 많은 불상이 제작되고 불화들이 그려졌을까?

진정하고 완벽한 사랑이 100이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랑의 시와 말,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80에서 90의 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가끔은 사랑한다고 말해주어야 상대방이 좋아한다. 그렇듯 진여실제는 언어를 벗어나 있지만, 방편으로서 언어를 동원하되 말을 떠나 실상을 직시한다. 한마디로 말해 ‘인언견언(因言遣言)’이다. 그렇듯 지상 최고의 장인이 지상 최고의 불상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여실제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불상을 부정하거나 파괴할 일은 아니다. 상투적인 불상은 불법을 왜곡하여 진리를 은폐하고 허위를 드러내지만, 창조적이고 불법의 진리를 제대로 담은 불상은 진여를 드러내는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불교예술을 통해 그 조형이 주는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그 속에 담긴 진여실제를 깨달을 수 있다. 불상 등 불교미술에서 형상에 치우쳐 감상하고 이해하는 것은 불교철학에 반하는 행동이다. 형상은 진여실제로 가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형상을 무시하고 부정해서는 안 된다. 형상 자체가 진여실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는 가난한 걸인의 모습으로 부처님이 나투셨는데 대중만이 아니라 원효와 같은 현인마저 알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여럿 전한다. 그렇듯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은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연주자가 모여 연주한 음악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악보를 보고 상상한 음악이다. 자크 데리다(1930~2004)가 “텍스트 바깥에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면, 불교는 “마음 바깥에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지극히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론과 방법론으로 분석한 불상이라 할지라도 마음 속 불상의 아름다움에 이르지는 못한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현재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 한국시가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   한국기호학회 회장    ·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 한국학연구소장  ·  〈문학과 경계〉 주간을 역임했다. 원효학술상  · 유심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이 있다.

성미니아토 성당에서 바라본 피렌체 전경.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