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단상

내 유치원 졸업발표회 때의 일이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던 내가 ‘갑돌이와 갑순이’ 공연에서 갑순이로 뽑혔다. 외할머니 댁 식탁의자에서 노래 한 곡 불러본 게 무대 경험의 전부였던 나는 며칠 간 남자아이와 앞뒤로 서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무릎을 접었다 펴며 얼굴을 마주보는 동작을 익혔다.

발표회 날, 선생님이 무릎까지 오는 한복 치마를 입히고 얼굴에 분칠을 해주더니 머리에 주먹만 한 족두리를 씌워줬다. 생애 첫 무대, 사람들 사이로 부모님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떨릴 새도 없이 익숙한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1절을 마쳤을까? 객석에 앉은 친구들의 반응이 엄청났다. 얼어서 꼼짝할 수 없었던 내 눈에, 풀린 저고리 고름이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게 보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갑순이 저고리 고름 사건’을 떠올리면 몸이 굳는다. 나는 갑순이 사건 이후 한동안 타인이 내게 갖는 관심이 불편해 마음에 빗장을 걸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바라던 대로 점점 타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타인은 기대 이상으로 나의 일에 무관심해졌다. 무관심에서 오는 허기는 외로움을 느낄 정도였다.

우리는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 부추김은 이기주의를 낳고, 이기주의는 이웃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귀를 닫는 무관심도 큰 문제고, 남의 불행을 보고도 외면하는 방관자적 무관심도 큰 문제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사회 구성원으로써의 책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창궐한지 6개월이다. 우리는 집을 벗어나면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여럿이 모이는 밀폐된 공간은 찾지 않는다. 반드시 지켜야 할 방역수칙이지만, 이 같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서로에 대한 무관심을 부채질할까 우려된다.

무관심은 모든 사회 구성원을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무관심한 사회는 소통이 안 되는 불통사회(不通社會)다. 고인 물이 썩듯 정치도 사회도 부패해 간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관심 좀 갖고 살자. 따뜻한 시선으로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눈길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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