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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가 불러야 할 노래금강에세이

사람들은 기댈 곳이 필요했다. 각자의 이유로 혹은 공동의 이유로.

본격적인 코비드19(COVID-19)가 2020년 벽두부터 요란했다. 숨을 곳이 필요했다. 내가 전염이 될까보다는 보균자로 피해를 줄까봐 두려웠다. 당연한 개인적 의무에 성숙한 시민의식, 국민의식이란 과대포장이 민망해 마스크 속으로 칩거했다.

공간의 제약으로 대다수를 TV로 유턴시킨 것은 ‘미스터 트롯’. 흥이 많은 민족의 DNA를 자극한 ‘미스 트롯’의 뒤를 이은 미스터들의 트로트는 처음부터 관심이 뜨거웠다. 시청률이 폭주, 온 나라가 젊은 남자들의 꺾기와 콧소리와 바이브레이션으로 들썩였다. 매주 누가 살아남을까 하는 긴장과 흥분이 코로나로 인한 회색빛 현재와 암담한 내일을 잊게 했다. 집집마다 전용 노래방을 들여놓고 ‘목요일은 밤이 좋아’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성악전공자의 참여로 클래식 팬들까지, ‘뽕짝’이라고 깃털 취급하던 사람들까지 모니터 앞으로 소집했다. ‘미스터 트롯’의 기세가 광개토대왕의 넓은 영토와 맞먹는 듯 했다. 참가자들의 여유 없는 환경과 오랜 무명시절로 인한 절박한 스토리는 한 편의 시, 한 편의 수필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아미’가 무색할 정도로 팬클럽도 생겨났다. 트롯의 대약진이었다. 프로그램은 종영되었지만 목요일 밤은 계속 다른 버전으로 전국을 누비고 있고 결승에 오른 일곱 명은 출연료가 몇 십 배나 뛰어 ‘백마 탄 왕자’가 되었다.

나 역시 한동안 입덕했다. 가깝게 지낸 오십 대 비구니 스님께서 4개월의 투병 끝에 3월 7일 입적하셨을 때 ‘천상재회’로 견뎠다. 듣고, 듣고 또 듣고. 노랫말이 가시처럼 박혀 어찌나 아프던지. 그저 ‘천상에서 못다 했던 사랑을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다. 덕분에 슬픔이 많이 꾸덕꾸덕해졌다.

그러나 나의 팬심은 갈대였다. 팬텀으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팬텀싱어3’는 어느 때보다 글로벌한 유령들로 무시무시했다. 사람의 소리가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휴먼이 아니라 팬텀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하나같이 목소리와 외모와 매력이 뛰어난지, 그들에게 미련 없이 영혼을 털렸다. 역시 나는 성격대로 꺾는 것 보다는 직선으로 뽑는 소리에 더 매료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중에도 ‘너는 내가 노래해야 하는 음악이야’라는 쿠바노래는 압권이었다. 노래와 함께 자막에 쿠바어와 번역된 우리말 가사가 나왔다. 듣자마자 온몸이 감전되었다. 국악을 전공한 소리꾼과 예일 음대 테너의 앙상블은 모두를 쿠바로 끌고 갔다. 노래는 아바나의 골목길과 대성당의 광장과 공원을 가득 채웠다.

〈중략〉

7월의 어느 날 공원 한가운데서
네 이름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
집집마다 네 이름을 부르는 것을 느끼고 싶어
넌 행복과 너무 닮았어
그렇게 얻기 힘든 행복과 수정할 필요 없는 색조와
제일 자연스런 예술의 아름다움
넌 내가 노래해야 하는 음악이야

풀어지지 않은 겨자 덩어리를 삼킨 것 같았다. 눈과 귀에 감탄이 퍼져 정신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한계를 모르는 노마드(Nomade)한 고음과 바닥을 훑는 한이 서린 저음의 콜라보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넘는 변증법적 합일이었다.

여기는 어디인가? 벌겋게 상기된 시야에 노천카페에 앉아 모히또를 마시는 헤밍웨이가 들어왔다. 그도 노래에 취해 있어 진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노래가 ‘듣는다’였으면 두 천재의 그것은 ‘삼켜진다’였다. 감동의 여진이 오래 계속 되었다.

그 후 둘러보니 세상은 노래 천지였다. 내가 부르는 혹은 누군가 부르는 또는 모두가 부르는 노래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음표와 리듬과 가사를 가진 악보였다. 아주 가깝거나 그렇지 않거나, 영향이 크거나 외소하거나 하물며 스쳤거나 스치는 소소한 관계까지도 내가 부르는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드라망처럼 얽힌 인연마다 마음의 음파가 흐르고 있다는 것도.

상대의 희로애락에 맞추다보면 어떤 때는 라르고(Largo)로 나직하게, 어떤 때는 안단테(Andante)로 은밀하게, 어떤 때는 경쾌하게 알레그로(Allegro)로 부르게 된다. 마음이 당신이란 음률을 읽고 수많은 말로 가사를 채워서 당신을 향하면, 청록으로 우거진 숲길이 펼쳐지고 그 끝에 나타나는 광활한 바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와 내리쬐는 7월의 햇살이 내 노래를 눈부시게 한다. 당신과 나를 은유한다.

악보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도 다 악보였다. 산사의 새벽과 저녁을 가르는 북소리는 모든 축생을 위해 ‘둥~둥~’ 울리는 노래였다. 지옥까지 뚫고 들어가 그곳 중생까지 제도하려 땅을 향한 범종과 물속에 사는 눈 어둔 중생을 위한 목어와 구름을 닮은 운판이 하늘을 나는 생명들을 제도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삼라만상이 다 악보인 것이다. 누구나 부를 수 있고 누구나 찬송하고 게송할 수 있는.

언젠가는 불꽃이 꺼지고 시간이 멈출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계속 부를 것이다. 시방세계에 가득 찬 마음 에너지로 당신을, 모든 당신을 노래 부를 것이다.

원정란
수필가.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계간 〈에세이피아〉 편집장 및 주간을 역임했다. 현 계간 〈에세이문학〉 주간을 맞고 있으며, 〈힐링 글쓰기〉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에세이집 〈백조를 날게하라(2017)〉가 있다.

글 원정란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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