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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설법> 연민으로 완성된 사랑·자비
  • 천태종 문덕 총무원장
  • 승인 2020.05.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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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을 국민과 함께 찬탄하며 자비광명을 온누리에 나누고자 합니다.

경전에선 아기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나오시자 때에 맞춰 하늘 신들이 일제히 부처님의 탄생을 찬탄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본생경〉에는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땅에서는 오색연꽃이 피어올라 아기부처의 발을 받쳐주었다. 오색구름이 하늘에서 일어나고 온누리는 향기로 가득한데 구름 속에서 아홉 마리 용이 깨끗하고 성스런 물을 뿜어 내 아기부처의 몸을 씻어주었다.”고 찬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새가 울고 꽃이 만발한 화창한 봄에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환한 웃음과 기쁨 대신 깊은 연민(憐憫)으로 오셨습니다. 무명(無明)에 갇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내어 육도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늘 절망과 고통에 허우적대는 중생들은 부처님에게 연민의 대상이었습니다. 연민은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길 때 연민이 일어납니다.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시게 된 이유는 세세생생을 거듭해 아픔과 고통을 반복해야 했던 중생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습니다.

부처님이 카필라국의 태자로 있던 12살 때 일입니다. 아버지 슛도다나왕이 태자와 성안의 대신들을 데리고 성문 밖 농사짓는 것을 시찰하고 있었습니다. 부왕의 뒤를 따르는 태자는 바깥 풍경에 한껏 기분이 들떴습니다. 그러나 태자의 이러한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 일하는 농군들의 모습은 무척 고되 보였습니다. 또한 농군의 쟁기질에 흙속에서 기어 나온 벌레를 어느 순간 새가 날아 와 쪼아 먹는 것을 본 태자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고통과 죽음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고 태자는 그것이 남의 일같이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흙투성이가 되어 일하는 농군의 모습과 새에 쪼아 먹히는 벌레의 모습이 선히 떠오르자 태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죽음을 없앨 수는 없을까? 태자는 염부수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농군의 고된 농사일과 한낱 벌레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렇듯 연민을 품는 태자의 품성은 훗날 열반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지속되었습니다.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말미암아 태자는 아버지 슛도다나왕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감행합니다. 어느 날 출가를 더 이상 미뤄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태자는 부왕을 만나 허락을 구하자 왕이 말했습니다.

“싯다르타야! 네가 그렇게 말하는 데는 충분한 결심이 서있는 줄 안다. 그러나 야쇼다라와 아들 라훌라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젠 늙었다. 거기에 슬픔을 이겨낼 힘도 없다. 나는 하루빨리 왕위에서 물러나 편안히 살고 싶다. 진정 출가의 마음을 거둘 수는 없겠느냐? 출가 이외의 다른 소원은 모두 들어주마.”

“아바마마! 그렇다면 저의 네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시겠습니까?”

“그러마, 무엇이든 너의 소원을 말하라.”

“첫째는 늙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병들지 않고 셋째는 죽지 않으며 넷째는 서로 이별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 네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저는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오, 싯다르타야! 그런 무리한 얘기가 어디 있는가.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다오.”

태자는 부왕의 슬픔과 고뇌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출가 의지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중생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었고 이로 인해 가슴을 저미며 커지고 있는 연민을 저버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연민은 훗날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란 핵심적 실천사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대자대비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애주려는 불보살의 한없이 큰마음을 뜻합니다. 즉 ‘자(慈)’가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비(悲)’는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이 대자대비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분이 관세음보살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에겐 구고구난(救苦救難)이란 수식어가 따릅니다. 중생들을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제해주시는 보살로서 중생에 대한 부처님의 연민을 가슴에 품고 있는 분입니다. 또 문수보살은 중생을 대할 때 “부처님은 자비로 군생(群生)을 구호하라고 가르치시며, 남을 해치는 마음 없이 모든 중생을 민애(愍愛)하라고 가르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생에 대한 연민에서 큰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큰사랑은 연민에서 나옵니다.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사랑을 일으키고 그 사랑이 실천으로 옮겨질 때 자비가 이루어집니다. 즉 자비는 사랑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사랑의 완성인 대자대비로 오셨습니다. 부처님은 연민을 품은 채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영원한 자유와 해탈의 기쁨을 중생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은 중생들이 자비로 축복을 입은 날입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합시다.

천태종 문덕 총무원장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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