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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대석2_김상규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장
  • 글 조용주 기자 사진 정현선 기자
  • 승인 2020.03.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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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핵심 ‘착하게 살라’
“공직자 청렴과 찰떡궁합”

대한민국의 공무원 수는 산출기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2018년 1월 1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약 106만 명이다. 이렇게 많은 공무원 중에 불자 공무원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바로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다. 대표적인 공직자 신행단체인 공불련을 2016년 7월부터 이끌어 온 김상규(60, 前 감사원 감사위원) 회장을 만나 공무원 불자로서의 삶과 35년 공직생활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이하 공불련)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함께하는 조직으로, 지난 2000년 평창 월정사에서 7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됐다. 창립 목적은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단위기관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조직을 융합해 회원 상호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현재 1만2,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고, 김상규 회장은 10·11대 회장을 맡고 있다.

염불소리 매력에 불교 입문

그는 1961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를, 영국 버밍엄대(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1985년 서울국세청을 시작으로 기획재정부 기금총괄과장·경제예산심의관·재정업무관리관 등을 역임했다. 약 30년 간 재정과 경제분야에 몸담아온 전문가다. 2014년 제32대 조달청 청장으로 취임했으며, 2016년 2월 차관급에 해당하는 감사원 감사위원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 2월 17일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35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김 회장은 우연한 계기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1979년 대학교 1학년 시절 문무대(현 육군학생군사학교) 병영체험을 갔을 때다.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사찰에 가보긴 했지만, 고작 부처님오신날이나 큰 행사 때 한두 번이었다. 병영체험 때 종교행사에 참석을 하는데, 발걸음이 자연스레 법당으로 향했다. 뒤편에 앉아 참선하는 흉내를 내고 있는데, 이름 모를 법사 스님의 염불소리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날 이후 ‘불교’라는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법사 스님이 어떤 염불을 하셨는지, 경전을 읽으셨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그때 들은 예불문의 ‘지심귀명례’ 하는 늘어지는 목소리는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불교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님들이 신앙하던 종교잖아요. 그 편안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젖어들었던 것 같아요.”

임용을 앞둔 1985년 어느 날, 종로서적에서 책을 고르다가 스님 한 분과 마주치게 됐다. 그는 스님에게 스스럼없이 책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고, 〈알기 쉬운 반야심경〉이란 책을 추천받았다. 그 책을 통해 지금까지 잘 몰랐던 불교 교리의 핵심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 책을 읽고 난 후 불교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알기 쉬운 관음경〉, 무비 스님이 출간한 〈금강경〉 등의 불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사실 불교 경전은 하나부터 열까지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성경〉과 달리 그 종류가 너무 방대해서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경전을 고를 때 부담이 된다. 그에 비해 김 회장은 쉬운 불서 읽기를 시작으로 가볍게 접근한 후 다양한 불서를 접하면서 불교라는 종교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2016년 8월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공불련 정기법회에서 김상규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11년 동안 경전 염송 큰 힘

공직생활을 시작한 초기에는 종교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참선을 하면서 그날 하루 일정을 생각하거나, 등산 모임에 가게 되면 법당에 들러 삼배를 올리곤 했다. 그러다 2009년 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실에서 일하면서 청와대불자회 회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이때 가족과 함께 의성 고운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는데, 당시 주지 호성 스님으로부터 ‘200년 전 고운사에 있던 한 스님이 〈천수경〉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매일 염송해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11년 동안 특별한 날을 빼고는 매일 아침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하고 있다. 김 회장은 그 후부터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한 후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렸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대부분의 일이 이뤄졌어요. 승진이 안 될 것 같은 상황인데 승진을 하기도 했고, 인사이동 때는 희망하는 부서로 옮겨지기도 했어요. 기대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나니 참 신기하더군요. 기도의 영험 때문인지, 염송을 하면서 제 기운이 맑아진 덕분인지는 모르겠어요. 어찌됐든 이러니 제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안 외울 수가 없죠.”

역사를 돌아보면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청백리(淸白吏)’ 제도가 존재했다. ‘청백리’란 관직수행 능력과 더불어 청렴(淸廉)·근검(勤儉)·도덕(道德)·경효(敬孝)·인의(仁義) 등의 덕목을 겸비한 이상적(理想的)인 관료에게 주어진 최고의 호칭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도 공직자에게 ‘청렴’은 필수요소다. 35년 동안 공직생활을 한 그 역시 ‘청렴’은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덕목이었다. 김상규 회장은 정년까지 청렴하게 공직생활을 하는데 불교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반야심경〉을 예로 들어볼까요? 저는 〈반야심경〉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착하게 살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이 경전의 핵심내용인데, 결국 착하게 살아야 열반에 들 수 있다는 내용인 거죠. 공직자는 매년 청렴교육을 1회 이상, 연 2시간 이상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청렴’이 중요한데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착하게 살자.’를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청렴한 공직생활이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2020년 1월 17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된 공불련·청불회 합동 신년법회 후 기념촬영. 이날 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비롯해 김상규 회장, 김종원 청불회장, 공불회·청불회 회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법회 활성화 위한 세 가지 전략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공직생활을 해오던 김 회장은 감사원 감사위원이 된 후 지인과 감사원 불자들로부터 공불련 회장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원래 드러나지 않게 혼자 수행하는 성격이지만, 당시 공불련이 신임회장을 뽑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불자이자 공무원 선배의 한사람으로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런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정작 새 회장을 선출하는 공불련 합동수계법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중책을 잘 수행할 자신도 없었고, 괜히 하고 싶은 분이 있는데 자신이 나타나서 내정된 것 마냥 보일까봐 우려도 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열정만 쏟아 붓고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됐다. 그래서 수계법회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결국 회장에 추대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 회장은 공불련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불교 공부모임을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또 공불련 조직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2월까지 서울 조계사에서 마흔세 차례 정기법회를 열었고, 전국 합동수계법회도 열세 차례 진행했다. 또 감사원 내에 조직한 공부모임도 50회 이상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김 회장은 종교가 없는 직원들에게 불교만화책을 권유하면서 직접 전해주기도 한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권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할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쉬운 불서를 통해 불교에 입문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쉬운 불교를 먼저 접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공불련 합동수계법회를 할 때 참석 회원들에게 〈불교성전〉·〈대승기신론소〉·〈자타카의 노래〉 등 다양한 불서를 선물로 나눠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김 회장은 수계법회에 공연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물론 초기에는 “신성한 법당에서 음악을 틀고, 시끄럽게 하는 행위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스님들과 많이 부딪혔다. 그러다 백양사와 동화사 전국 합동수계법회 때 처음으로 주지스님의 배려 속에 법당에서 공연을 했다. 회원들은 법당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에 흥겨워하며 공연을 즐겼다. 회원들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어 공연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게 됐는데, 나중에는 다른 사찰 스님들도 이해를 해주기에 이르러 함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회원들이 수계법회에 참석해 재미를 느낀다는 걸 확인한 후 불교 강의를 준비했다. 김 회장은 불교를 잘 알고 쉽게 가르치는 교수들을 초청해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수들은 불교의 전체적인 역사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개괄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기념품과 더불어 앞서 언급한 불서를 선물로 나눠줌으로써 법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양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공불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합동수계법회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계법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보았습니다. 그 결론은 참석한 회원들이 세 가지를 얻어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재미있어야 하고, 무언가 얻는 게 있어야 하고, 양손 가득 선물보따리를 안겨주는 것이었지요.”

그가 공불련 회장직을 맡은 후 공불련은 많은 변화를 보였다. 특히 취임 초기에 밝힌 대로 합동수계법회를 변화시켜 참석률을 크게 높였는데, 그 결과로 정기법회가 활성화됐다. 김 회장의 전략과 노력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김상규 회장은 공불련의 내적 발전과 함께 외적 발전에도 힘썼다. 매년 연말 ‘사회봉사의 날’ 행사를 통해 요양원·복지관 등을 방문, 배식·설거지 봉사를 비롯해 어르신 말벗 돼드리기·화장실 청소·기타 봉사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자비나눔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다. 또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건강한 노후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본인의 노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2016년 12월 11일 서울 영등포 보현의 집에서 실시한 ‘제14차 사회봉사의 날’ 행사에서 김상규 회장(오른쪽)을 비롯한 회원들이 샤워장 청소를 하고 있다.

“법회 참석인원에 일희일비 말길”

김상규 회장은 3월 말로 예정된 임시 대의원총회 때까지 공불련 회장직을 맡을 예정이다. 4년 동안 회장직을 맡아 활동한 그이기에 공불련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남다르다. 그는 다음 집행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현 집행부가 진행해 온 ‘세 가지’를 얻을 수 있는 합동수계법회를 꾸준히 진행하고, 정기법회도 계속 이어가길 희망했다. 그 대신 법회 때마다 참석인원이 ‘많고 적음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법회나 모임이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사람들은 언젠가 모여들게 돼 있습니다. ‘지금은 모임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다음에 참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올 수 있게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길 기대하는 집행부 입장에서 생각하면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고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솔선해 먼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17일 감사원 감사위원 임기를 마치고 정년퇴직을 한 김상규 회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설계를 해놓진 않았다. 35년 동안 출·퇴근을 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니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불교’와 관련된 활동을 꿈꾸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금강반야바라밀경〉의 한 구절인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처럼 새로운 일을 찾아 봉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책을 집필하고, 교리공부도 꾸준히 할 생각이란다. 그렇지만 그에 앞서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니며 수행하고, 좋은 스님들을 만나 차 한 잔 마시는 삶의 여유를 만끽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공직생활을 할 때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상규 회장과 당시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 스님이 2016년 9월 서울 관문사 접견실에서 환담하고 있다.

35년 공직생활을 수행하는 자세로 살아온 김상규 회장. 그는 어떤 업무를 맡더라도 사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공정하게 처리하겠다는 청렴한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다면 일은 보람이 되고, 수행이 되고, 해탈의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땅의 청년들과 모든 직장인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착하게 살자.” 이 한 마디를 조언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착하게 살자.’는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한 요즘 세태에 참 따르기 어려운 조언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착하게 살다가 조금 손해를 보면 또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나쁜 마음을 품었다가 이번 생을 망치는 일은 미연에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부처님께서 여러 경전을 통해 ‘착하게 살라.’고 당부한 이유에 여기에 있을 것 같다.

글 조용주 기자 사진 정현선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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