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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의 책 읽어주는 남자6 〈부처님의 밥맛〉담백한 밥맛에서 中道의 가르침 찾아
<삽화=배종훈>

나는 이 책을 읽고 놀라웠는데, 독자 여러분은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붓다의 아버지 이름은 ‘정반(淨飯)-정갈한 밥’이다. 그런데 그 부계(父系) 형제들은 이 책에서 보고 처음으로 인지했다. ‘둘째가 백반(白飯), 셋째가 곡반(斛飯), 넷째는 감로반(甘露飯)’이다. 밥 반(飯)자 돌림이다. 저자의 말대로 고대 농업국가의 왕가다운 이름이다. 

‘그렇다면 밥맛은 어떻게 해서 깨달음의 모티브가 됐을까?’ 저자는 이런 의문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붓다는 우리가 배웠듯이 고대 농업국가 카필라국의 태자였다. ‘태자’란 신분 덕에 당연히 상품(上品)의 쌀로 지은 밥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품의 쌀만을 좋아했다.’는 기록에 의거하면 밥맛을 알고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에는 <부처님의 밥맛>을 읽어드리고자 한다. 두 달에 한 번씩 행복한 고민을 하며 이 지면에서 여러분과 만난 지 1년, 예정된 마지막 만남이다. 매번 이 책은 어떨까? 저 책은 어떨까? 생각하며 어설프게 여기까지 왔는데, 회향의 글을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다가 헤밍웨이의 유명한 <노인과 바다>와 이규항의 근작 <부처님의 밥맛>이라는, 다소 생소한 책을 떠올려 편집실에 의논한 결과 후자가 선택 됐다. 여기에 싣는다면 두 작품이 모두 의미가 있는데 택일의 결정은 내가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헤밍웨이의 책은 거대한 청새치를 낚으려는 산티아고 노인의 꿈이 허무로 바뀐 현실이 불교의 무상을 느끼게 하는 주제로 좋을 듯도 했고, <부처님의 밥맛>은 내가 아는 저자의 작품이라 간접광고의 오해가 있을까하는 우려였다.

<부처님의 밥맛>의 저자 ‘이규항’은 나의 선배인데 가톨릭 신자였다. 아직도 올드팬들은 그를 잘 기억하는데 ‘네잎 클로버’라는 노래를 부른 유명 아나운서다. 지금 팔순인 그는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평생 아나운서의 길을 걸었다. 직업 관련이기도 하지만 그는 많은 독서를 했으니, 경서를 비롯해서 불교 관련 서적도 두루 섭렵했고 인연 닿은 대덕 스님들을 자주 만나 불교에 대해 대화했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말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아나운서 세계에서도 주지적인 아나운서로 유명하다. 독서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와 문명에 대한 비평이 날카로우며, 사유의 폭이 넓고 깊다. 술은 말술로 즐기는데, 현역 시절이나 지금이나 동료후배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항상 대화가 깊고 풍성하여 유쾌하다. 그런 그가 꽤 오래전 큰 술탈로 병원신세를 지고 회복한 날 병상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행복은 ‘0’이다!”하는 자각이었다. 음주의 쾌락과 그로 인한 병상의 고통과 후회, 그리고 술탈에서 쾌차하던 날, 그 병상에서의 평온한 감정은 처음 느낀 행복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후 그것을 화두로 꽤 긴 세월, 공부하며 이 책을 쓰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스님을 비롯한 재가불자 등 여러 독자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는 <김 군에게 들려준 0의 행복>이라는 원저를 저자 스스로 부족하다 여겨 최근 완전히 새롭게 쓴 것이다.   

<삽화=배종훈>

앞서 언급했듯이 ‘이규항’은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전 어느 날 서울 인사동을 걷다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선사를 만나면 선사를 죽이고’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스스로 ‘돈키호테’ 불자가 되었다. 물론 지금은 책에 밝혔듯이 20년 세월 동안 자주 찾아뵙고 많은 가르침을 받은 석성우 스님과의 인연으로 재가불자가 됐고.
‘돈키호테 불자’라고 스스로를 낮춘 그는 이 책의 첫 머리에 이렇게 썼다. ‘유사 이래 수많은 철인들이 인생과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려왔다. 하지만 정답은 없고 기성복 같은 획일적 해답이 있었을 뿐이다. 반면 붓다께서 인류에게 생활철학으로 제시하신 중도(中道)·선(禪)은 서양인들에게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수용됐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불교가 포교에 성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이익과 함께 타인도 배려하는 서양 사회의 개인주의가 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0의 행복’의 개념은 무엇인가?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 시간에 배운 좌표의 플러스(+), 마이너스(-) 개념을 떠올려 보자. 저자는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심한 에어포켓(Air pocket, 기류로 불안정한 상태)을 겪던 날을 말한다. 공포와 악몽의 시간을 벗어나 미동도 없는 안정을 되찾았을 때, 순간 무중력 상태에서의 안온한 행복감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으며 그때의 경험으로 싯다르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한다. 선정 당시 싯다르타의 마음자리는 고행의 마이너스(-) 자리를 거친 반작용으로 좌표 평면의 ‘0’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했다. 

‘산의 정상에서 느끼는 물맛. 이는 허위단심 올라온 마이너스(힘든)의 시간을 거쳤기에 느낄 수 있는 0의 행복이 아닐까? 공양 때마다 별생각 없이 먹고 마셔온 (출가 전) 싯다르타 태자는 (고행 이후) 지금껏 느끼지 못한 밥맛과 물맛에 새삼 놀란다. 사람은 누구나 식욕 본능이 있다. 특히 맛에 관한 기억은 뚜렷하며 오래가는 법이다. 고행 중단 이후 보리수 아래에서 경험한 밥맛과 물맛이 태자 시절보다 더 맛있게 느껴진 것은 어째서일까? 고행 수도 덕분일까? 그렇다면 고행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때의 심경을 붓다는 표현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 태자는 출가 6년의 고행 끝에 득도에 다다른다. 첫 번째 고행 수행을 실패하고 재수 수행에서 무상정등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이렇게 득도하고 나서도 21일을 더 그 자리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 선정기간인 40일 가운데 득도를 하신 뒤에도 보리수 아래서 21일간 더 머물렀다고 한다면 (40-19=21), 19일째 득도한 셈이다.
1차 고행 때만 해도 태자 시절에 누렸던 쾌락의 세계(+)와 출가 후 겪었던 고행(고통)의 세계(-)밖에 알지 못했던 붓다였다. 고행 무익(無益) 선언 이후 보리수 아래서 2차 선정을 수행한 뒤엔 어땠을까? 붓다는 이 세상엔 두 극단(즐거움(+)과 고통(-)의 세계)뿐 아니라, 제3의 세계인  신세계(중도/0의 세계)가 있음을 새삼 발견하기에 이른다.
중도를 깨닫는다는 건 단맛(+)도 쓴맛(-)도 아닌 구수하고 담백한 0의 밥맛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중략) 중도는 0의 행복이다. 그렇다면 붓다는 0의 행복이란 인생의 신세계를 발견한 콜럼버스가 아닐까?’ 

이렇게 해서 고타마 싯다르타는 한 나라의 태자에서 전 인류를 위한 해탈의 대자유인으로 거듭난다. 다만 붓다의 깨달음은 없던 사실의 발명이 아니라 있던 사실의 발견이었던 것이다. 고대 인도인들에게는 진리·실리·성애라는 3대 요소가 있었다. 붓다는 실리에 따라 ‘중도’라는 신세계(0의 행복)를 인류의 생활철학으로 제시하신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제1세계·제2세계·제3의 신세계란 풍요로운 삶을 골고루 누릴 수 있게 됐다. 

 저자가 책에서 말한 ‘0’의 개념과 그 개념에 따른 ‘0’의 행복,  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시한 ‘행복한 0의 세계’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고 다양하게 제시되는데, 놀랍다. 우리가 늘 먹고 마시는 밥맛에서, 물맛에서 그리고 설탕을 타지 않은 차맛에서부터,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보는 놀라운 상황들까지. 

쓰려고 마음먹은 후 27년간 통찰하고 공부한 300쪽 분량의 이 책을 어떻게 여기에 다 설명할까? 본문 내용을 인용하며 이 정도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마음자리가 0의 무심한 경지에 있을 때 이 세상은 미술관이나 음악의 전당과도 같이 다가온다. 지상의 행복에는 소유권자가 없다. ‘이따가’의 일을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를 촛불처럼 완전 연소하면서 향유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이란 무릇 현재 완료형이기 때문이다.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에게 극락이나 천당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종교의 목표를 내세에만 둔다면 이 지구라는 낙원을 모독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기독교가 현세와 내세에서 영생하는 이생종교(二生宗敎)라면, 불교는 현세의 업보에 따라 윤회하는 다생종교(多生宗敎)다. 윤회사상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있게 마련인 현세를 살아가는 절반의 실패자들에게 위안이자 희망의 등불이다. 

그동안 졸문을 애독해주신 〈금강〉 독자들께 합장합니다. 

이계진

방송인.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30년간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제17대,18대 국회의원. 현재 국방FM 시사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고,〈무소유〉읽기 작은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저서로〈아나운서 되기〉•〈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딸꾹!〉•소설〈솔베이지의 노래〉•〈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이계진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똥꼬 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3인 아나운서 이야기〉등이 있다.

글·이계진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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