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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물리학5_전체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
  • 글  ·  김성구
  • 승인 2019.09.1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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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의 18분 ‘일체동관분’에 나오는 “…… 많은 부처님 나라 가운데 있는 중생의 여러 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아나니 …….”와 같은 구절을 소설처럼 허황되다고 생각하면서 읽으면, 경전을 수백 번 읽어도 그 가르침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데에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 경전 구절은 마냥 허황되기만 할까.

“…… 많은 부처님 나라 가운데 있는 중생의 여러 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아나니 …….”

<금강경>의 18분 ‘일체동관분’에 위와 같은 구절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구절을 보면 소설 같은 표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경전을 이렇게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으면, 경전을 수백 번 읽더라도 경전의 가르침을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을 알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 코펜하겐 해석

과학은 보통 실험과 이론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실험과 이론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실험결과를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말하지만, 이론(Schrödinger, 방정식)에 나타나는 것은 오직 파동뿐이다. 양자이론에서 소립자의 파동함수와 별도로 존재하는 소립자는 없다. 따라서 이론에서 말하는 소립자는 위치[파동]라는 속성도 갖지 않고, 운동량[속도]이라는 속성도 갖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험에서 관찰자가 특정 위치에서 발견하는 입자란 무엇이며, 소립자가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갖는다고 할 때, 파동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여기서 이론과 실험, 파동과 입자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해석이 필요해진다. 양자역학의 해석은 파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된다. 독일의 물리학자 보른(Max Born)은 확률파의 개념을 제안했고, 이를 검토한 후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개념을 받아들였다. 확률파란 입자가 존재할 확률이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널리 퍼져있다고 보는 것이다. “입자가 존재할 확률이 퍼져 있다.”는 것은 입자에 관한 정보가 파동의 형태로 공간상에 퍼져 있다는 것이고, 파동이 퍼져나간다는 것은 이 정보가 파동의 형태로 퍼져나간다는 뜻이다.

양자역학이 탄생한지 9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물리학자들 전체가 동의하는 양자역학의 해석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계에서 정통적인 해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덴마크의 물리학자 보어(Niels Bohr)가 주창한 ‘코펜하겐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확률파의 개념을 바탕으로 객관적 실재를 부정한다. 이 해석에 의하면 관찰자가 어떤 소립자를 ‘X’라는 위치에서 발견했다면 그것은 그 소립자가 그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소립자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측정에 의해 소립자가 위치라는 속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이러한 코펜하겐 해석이 못마땅했다. 입자를 어딘가에서 관측했다면 이론이 그것을 예측하지 못했을 뿐, 입자는 관측된 곳의 부근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수학자 포돌스키(Boris Podolsky), 물리학자 로젠(Nathan Rosen)과 더불어 측정 없이 물리량을 결정할 수 있는 실험방법을 제시하고, “‘물리량은 측정과 더불어 만들어진다.’는 해석에 모순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세 학자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EPR 패러독스’라고 한다.

| EPR 패러독스

양자역학의 기본원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속도]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측정은 반드시 계(系)를 교란시킨다. 즉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면 계가 교란되어 그것의 속도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성 원리를 인정하면서도 측정을 하지 않고서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측정값이 측정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어떤 패러독스가 따른다고 주장하였다. EPR이 제안한 초기의 실험은 과학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그들이 처음 제안한 그 방법으로는 실제로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국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은 EPR이 제안한 초기의 실험과 원리적으로 같으면서 실제로 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스핀값이 ‘0’인 입자가 전자와 양전자(陽電子)라는 두 개의 입자로 분리되어 서로 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고 가정하자. 양자역학 이론에 의하면 측정 전에는 전자도 양전자도 어느 쪽의 스핀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스핀이 1/2일 확률이나 -1/2일 확률이 똑같이 50%라는 것뿐이다. 분리된 후 시간이 흘러 전자와 양전자 사이의 거리가 수백 광년쯤 떨어졌다고 하자. 이제 EPR의 분석을 담으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전자의 스핀을 측정하여 그 값이 1/2이면, 그 즉시 수백 광년 떨어진 양전자의 스핀도 -1/2로 결정된다. 이렇게 양전자의 스핀값이 즉시 결정되는 것은 수수께끼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정보의 전달속도는 빛과 같다. 전자의 스핀이 1/2로 결정되었다는 정보를 얻고서 양전자가 자신의 스핀값을 나타내려면 수백 년이 걸려야 할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전자의 스핀을 측정했다면 -1/2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는 양전자의 스핀값이 1/2로 나타날 것이다. 정보전달에 걸리는 시간을 무시하고 양전자의 스핀값이 즉시 결정된다는 것은 패러독스이며, 패러독스가 없으려면 분리된 순간 전자나 양전자는 물리적 실재로서 존재하고 측정 이전에 이미 결정된 스핀값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EPR의 생각이다. 여기에 대해 보어는 이렇게 응수했다. 측정 전에는 두 개의 파편이 분리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관측 결과, 몇백 광년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판명될지라도 측정 전의 계는 단일체로 보아야 한다. 분리되었다고 생각하고 계를 기술하면 이미 물리계에 교란을 준 것이다.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상반된 주장은 1982년 아스펙이라는 물리학자에 의해 보어가 옳음으로 결론 났다. 수백 광년 떨어져 있어도 전체는 하나로 얽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양자 얽힘’이라고 한다. 우주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가면 모든 만물은 양자적으로 얽혀있다. 자타불이(自他不二)라는 말 그대로 전체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인 것이다.

| 벨의 정리와 양자 얽힘

보어와 아인슈타인 중 누가 옳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벨(John S. Bell)은 EPR 패러독스 속에 내포된 철학적 논란들을 검증 가능한 부등식의 형태로 나타내고, ‘벨의 정리(Bell's theorem)’를 발표했다. 과학사상가들 중에는 벨의 정리를 가리켜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는 평을 할 정도로 벨 부등식은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남북한에 있는 남자의 수는 남한에 있는 남자의 수보다 크다.”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자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전체는 부분보다 크기 때문이다. 허깨비라면 남한에 있는 허깨비의 수가 남북한에 있는 허깨비의 수보다 큰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있지도 않은 허깨비에서 일어난 일이 이치에 맞아야 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크고 작음의 관계를 독립적인 세 가지 물리량에 차례로 적용할 때 어떤 하나의 부등식이 얻어지는데 그것이 ‘벨의 부등식’이다. 인간의 사물인식 방식에 잘못이 없다면 벨의 부등식을 위배하는 사례는 관찰되지 않아야한다. 이것을 ‘벨의 정리’라고 한다. 벨의 부등식을 위배하는 사례가 한 가지라도 발견된다면 인간의 사물인식 방식에 어떤 근원적인 잘못이 있음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사물인식 방식이란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것처럼 물리량에는 물리적 실재가 대응하고, 이 실재는 측정과 관계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측정해보지 않고서 한 개의 입자가 두 개로 분리되었다고 가정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달리 말하면 벨의 부등식을 위배하는 경우를 한 가지라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실재성이 없거나 분리성이 없거나 아니면 둘 다 없다는 것을 뜻한다.

1982년 아스펙(Alaine Aspect)이라는 물리학자가 실제로 실험을 수행한 결과 보어가 옳음이 판명되었다. 수백 광년 떨어져 있어도 전체는 하나로 얽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양자 얽힘’이라고 한다. 우주의 만물은 태초에 한 지점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우주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가면 모든 만물은 양자적으로 얽혀있다. 자타불이(自他不二)라는 말 그대로 전체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체동관분’의 내용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을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1946년생으로 서울대 물리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소립자 물리학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퇴직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 학  ·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경상남도 함양에 약천사를 창건했다. 이곳에 불교과학아카데미를 개설, 2014부터 매월 불교와 현대물리학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현대물리학으로 풀어본 반야심경>  ·  <천태사상으로 풀이한 현대과학> 등이 있다.

글  ·  김성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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