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문학 사랑한 두 시인
부처님 중생구제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휴머니즘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주었던 문인가운데 1919년에 태어나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8명을 기리는, 문학제의 하나로 개최된 심포지엄의 주제는 ‘전후(戰後) 휴머니즘의 발견’이었다. 이중 필자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장애인문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두 시인이다.

구상 시인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15년 동안 장애인문학을 위해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2억 원을 상금으로 쾌척, 제정한 솟대문학상은 2005년부터 구상솟대문학상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상 시인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남다른 연민을 갖고 계셨다. 이런 휴머니즘은 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 ‘어느 친구’에서 회자는 명동성당 앞에서 구걸을 하는 뇌성마비 분과 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그와 내가 허물을 벗은 털벌레처럼 나비가 되어 함께 날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시인과 뇌성마비 장애인이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몸에 장애가 있건 없건 인간은 허물을 벗고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구상 시인의 사랑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등 모든 생명에게도 적용된다. 한쪽 발목이 잘린 이웃집 강아지가 보이지 않으면 걱정을 하고, 화분의 난초와 새장 속의 잉꼬 등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셨다.

그리고 또 한 분 권오순 시인은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3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어 자연을 벗삼아 지내며 동시를 지었다. 18살 때 잡지 〈가톨릭소년〉에 발표한 ‘구슬비’는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동요이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그녀는 1948년에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곳에 대한 동경으로 월남하였지만,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갈라져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995년에 돌아가셨다.

국민 동요 ‘구슬비’는 빗방울을 은구슬과 옥구슬에 빗대어 순수한 동심에 보석을 박아주었고, 꽃의 이미지로 채색된 권오순의 시는 독자를 꽃동산으로 안내하여 편안히 쉴 수 있게 해주는데 이것 역시 휴머니즘의 발로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인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역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고도 휴머니즘 정신을 잃지 않으며 인간 삶의 내면을 탐색해 들어가서 인간의 자유와 정의를 형상화하였다.’는 고려대 고형진 교수의 총론이 마음 시끄러운 오늘의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정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어느 시대이건 사람이 실천해야 할 것은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100년이란 무게로 들려준 문인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장애인 문학을 사랑해주신 구상 시인, 본인이 장애 문인이었던 권오순 시인이야말로 온몸으로 휴머니즘을 실천한 자유의 구원자이며 정의를 문학으로 표현한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스승이다. 두 분 모두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셨다. 두 분의 휴머니즘은 불교의 인간 존중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실제로 구상 시인은 평소에 말씀을 하실 때 ‘부처님의 중생구제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휴머니즘’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런 휴머니즘 정신 때문에 두 분은 장애인 문학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장애인 문학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던 것이다.

구상·권오순 두 시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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