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근검·소박한 삶을 산 어느 부부의 기록

<삽화=배종훈>

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은 감동과 함께 의지 있는 시골생활을 꿈꾸게 될 것이다.

성하(盛夏)의 계절이다. 온 세상이 푸르다. 도회의 빌딩 숲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자연을 그리워하고, 그래서 그 열섬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은 계절, 여름이다.

요즘 케이블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여기저기에 자꾸만 나오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의 고단한 삶에 지친 40~50대 남성들이 가장 많이 본다고 한다. 필자와 필자의 아내도 본방 사수자이자, 재방까지 챙겨보는 열성적인 시청자다. 만약 지금 시골생활을 하지 않고 도회에서 살고 있었다면,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분명 날마다 도회를 탈출하는 반란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 현상의 연원(淵源)을 찾아 가자면 아마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월든(Walden)〉을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삶을 따라 흉내 내고 실천한 20세기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을 대표적 인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서 그 스콧 니어링의 굴곡졌으나 진실한 삶을 아름답게 기록한 그의 아내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1904~1995)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어드리려 한다.

1904년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은 열일곱 소녀시절 유명한 연주자의 꿈을 안고 유럽으로 진출한다. 남편 스콧과 만나 53년이란 긴 세월 동안 부부의 삶을 살았지만, 사실 남편을 만나기 전 유럽에 머물 때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 사랑에 빠진 바 있다. 둘은 6년 간 사랑을 나눴지만 끝내 헤어졌고, 헬렌은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헬렌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다.

헬렌은 미국으로 돌아온 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 하지만 당시 스콧 니어링과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녀의 회상에 의하면 헬렌은 유럽으로 떠나기 직전, 열일곱 나이에 학교 선생님과 함께 누군가의 가정집에서 열린 어른들 모임에 간 적이 있다. 그 모임은 어린 나이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치토론장이었는데 참석자 가운데 나이가 어린 사람은 헬렌뿐이었다. 그때 모임 장소가 바로 스콧 니어링의 집이었고, 당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루어졌다.

크리슈나무르티와 헤어져 미국으로 돌아온 뒤 헬렌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우연히 스콧 니어링과 전화통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6년 전 모임에서 보았던 헬렌을 기억하는, 아버지 나이의 스콧 니어링에게 끌려 결국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스콧 니어링’은 현대 문명과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에, 현실에 순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했다. 반자본주의적 사고로 인해 반골처럼 살다가 결국 뉴욕 생활을 청산한다. 마치 오래전 데이비드 소로가 적극적으로 도시문명을 떠나 월든 호숫가에서 살았듯, 버몬트 주 숲속에 자리를 잡고 사탕단풍 농장을 일궈 단풍시럽을 생산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남편 스콧 니어링이 100세로 세상을 떠난 8년 후, 그러니까 헬렌의 나이가 무려 87세 때 썼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필자가 이 책을 읽은 시기는 1996년 시골생활을 막 시작한 직후였다.

반골의 외고집 청년 스콧은 대학교수가 되자, 노동문제에 대해 글을 쓰고 강연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득권이 공고하게 다져놓은 거대한 사회 제도를 견뎌내지 못한다. 그는 9년 만에 대학에서 1차 퇴출된다. 그 후에도 겨우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며 간간이 대학 강의 자리를 얻지만 자기의 소신을 꺾지 않는다. 결국 40세가 되기도 전에 교단을 떠나야 했다. 헬렌은 당시 스콧의 상황을 “그는 밑바닥이었다.”고 표현했다.

1932년 가을, 어쩔 수 없는 도회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가서 살 가능성에 대해 처음 이야기 한 사람은 스콧이였다. 수입도 거의 없는 뉴욕생활을 접고, 가진 돈에 맞는 땅을 찾아보려고 미국 동북부 끝자락으로 캐나다 접경지역인 버몬트 주를 뒤지다가 어느 산자락에 허름한 집과 함께 버려진 싸구려 땅 65에이커(약 8만 평)를 발견한다. 오늘날 우리의 기준으로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부러운 넓은 땅이지만, 대공황기였던 그 당시에는 저당권을 설정하고 900달러에 살 수 있는 싸구려 땅이었다. 이듬해 1월, 두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 짐을 꾸려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간다.

헬렌은 버몬트 주의 허름한 집에서 토속음식을 해 먹으며, 낡은 옷을 입고 필요 없는 소유물을 버리는 법을 익힌다. 또 잉글랜드 지방의 추운 겨울을 나면서 난로 피우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봄부터 드넓은 농장을 조금씩 일궈 씨를 뿌려 거두고, 그 산물로 살아가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1935년부터 사탕단풍 재배를 확대한다. 그렇다고 큰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생활에 보탬이 될 정도만 생산했고, 주문이 많이 들어와도 일을 멈추고 여행을 다녀오고는 했다. 진정한 경제학자로서 그는 검소하고 절약하는 확고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중략)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참고로 언급하면 스콧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러다가 1950년대 초에 미국의 경제가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버몬트 주의 오지에도 개발과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스콧은 살던 땅 일부를 지역사회에 기증하고, 일부는 헐값에 팔아서 그 돈으로 다시 동북쪽 끝자락의 메인 주로 이주한다. 그곳에서도 변함없는 시골생활과 함께 집필을 하고, 외부 강연을 하며 살았다. 그런데 1954년에 쓴 〈조화로운 삶〉이 인기를 끌면서 강연을 들은 사람들이 스콧의 삶을 보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국 각지는 물론 심지어 유럽  · 인도  · 일본에서도 찾아왔다. 메인 주에서의 생활은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하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삽화=배종훈>

부부는 사람들이 찾아오자 팔을 걷어붙이고 자연친화적인 자재로 담장을 두르고, 아담한 돌집을 꾸준히 지었다. 그는 당시의 즐거움을 소로가 쓴 〈월든〉의 한 대목으로 대신했다.

“사람이 제 손으로 살 집을 짓고 자신과 식구들을 위해 간소하면서도 꼭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생산한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세월이 흐르면서 스콧의 변함없는 의지가 깃든 삶은 널리 알려졌고,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그 세월만큼이나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늙고 있었다. 스콧은 간혹 사람들로부터 늙음과 건강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답했다.

“늙음은 땅과 죽음 사이에서 순환하는 삶의 내리막길을 가는 겁니다. 늙음은 몸의 기력이 떨어지는 분명한 단점과 아울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이제 큰 언덕을 넘은 것으로, 많든 적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을 해 왔으며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습니다.”

헬렌은 스콧이 아흔여섯이 되자 남편의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고,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아흔여덟 살이 된 어느 날에는 인터뷰를 하면서 ‘아흔아홉 살까지 살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스콧의 푸른 눈이 빛나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100세 생일이 되기 한 달 전 어느 날, 테이블에 여러 사람이 앉아 있을 때 스콧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이후 곡기를 끊고, 신중하게 떠날 시간과 방법을 선택했다. 한 달 정도 목을 축이는 주스류로 연명했고, 다음에는 ‘이제는 물만 마시겠다.’고 선언했다.

1983년 8월 24일 아침. 침상에 누운 스콧의 마지막 가는 길은 거룩하고 경건했고, 아내 헬렌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후에 헬렌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천천히, 천천히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 점점 약하게 숨을 쉬더니 나무의 마른 잎이 떨어지듯이 숨을 멈추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스콧의 마지막 힘없는 한 마디는 “좋~아.”였다. 그리고는 한 번 숨을 쉬고 나서 영면했다.

누구나 이럴 수는 없다. 100년을 산 어느 사람의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스콧의 삶을 두고 트집 잡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그의 마지막은 그렇게 경건하고 거룩하고 아름답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하게도 연명의 의지까지 보였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 ‘다소 과장되고 아름답게 쓰지 않은 전기(傳記)가 세상에 있을까?’ 이 책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굳은 소신으로 한 세기를 산 아름다운 사람의 기록이다.

이계진

방송인.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30년간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제17대, 18대 국회의원. 현재 국방FM 시사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고, 〈무소유〉 읽기 작은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저서로 〈아나운서 되기〉·〈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딸꾹!〉·소설 〈솔베이지의 노래〉·〈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이계진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똥꼬 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3인 아나운서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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