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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제자가 된 왕3_우전왕우매한 왕, 왕비에 감화. 최초로 불상 조성해
  • 글 · 조용주 기자
  • 승인 2019.05.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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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전왕은 부처님을 그리워하여 전단향목으로 불상을 만들고, 뒤에 도솔천에서 돌아온 붓다에게 이 불상을 보였다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불상이라 전하는데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전설로 봐야 한다. 이 작품은 관련 전설의 부조다. 중앙 대좌에 부처님이 앉아 있고, 왼쪽에 선정인을 취한 작은 불상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우전왕이다.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소장. 2~3세기, 편암 440×70×320cm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 두 명의 임금이 있었다. 왕들의 이름은 ‘아라카파’와 ‘베타지바카’였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같은 스승 아래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왕이 된 후에도 친하게 지냈다. 두 왕은 세간의 무상(無常)함을 싫어해 훗날 출가하기로 약속했고, 왕위를 물려준 후 히말라야에 들어가 각기 다른 산에서 수행을 했다. 그리고 보름에 한 번씩 불로 신호를 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어느 날 아라카파왕이 불로 신호를 보냈지만, 베타지바카왕이 머무는 산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다시 약속한 보름이 되었을 때도 연기는 오르지 않았다. 아라카파왕은 베타지바카왕이 먼저 죽었음을 알게 됐다. 먼저 열반에 든 베타지바카왕은 제석천(帝釋天)으로 태어나게 됐다. 신통력을 갖춘 그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라카파왕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혹시 생활하는 데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나그네의 질문에 아라카파왕은 정중히 대답했다.

“제가 수행한 곳 가까이 많은 코끼리가 몰려와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석천은 아라카파왕에게 악기를 연주하며 주문을 외워서 코끼리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었다.

| 매에 물려가 히말라야서 탄생

한편 인도 반사국 푸라판타왕은 임신한 왕비와 함께 수도 코삼비에 세워진 궁전의 높은 누각 위에 올라갔다. 왕비는 귀한 붉은 털옷을 입었고, 순금으로 만든 왕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각 주위를 맴돌던 큰 매가 갑자기 날아왔다. 매는 붉은 털옷을 입은 왕비를 고깃덩어리로 착각한 채 날카로운 발로 채어 히말라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인적이 끊긴 둥지 옆 나뭇가지에 왕비를 내려놓았다.

만삭이었던 왕비는 해가 저물 무렵 진통을 시작하더니,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아들을 순산했다. 왕비는 아들 이름을 ‘해가 솟는다.’는 뜻의 ‘우데나’라고 지었다. 하지만 히말라야 깊은 산속에서 갓 출산한 산모와 아기가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왕비가 머물고 있는 둥지 가까이에는 토굴이 있었다. 바로 고행자 아라카파왕이 머물고 있던 토굴이었다. 명상에 잠겨 있던 아라카파왕은 뜻밖의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고,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모자를 구해주었다. 그는 모자를 토굴로 데려와 정성껏 간호했다. 왕비는 생명의 위험에서 자신과 아들을 구해주고, 돌봐준 아라카파왕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결국 부부의 연을 맺고 우데나를 함께 길렀다.

십여 년이 흘러 우데나는 청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행자 아라카파왕은 하늘의 별을 보고 반사국의 푸라판타왕이 죽은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왕비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왕비는 자신과 아들에 얽힌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사실 반사국의 왕은 저의 남편이고, 우데나는 다음 왕위에 오를 아이입니다.”

왕비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도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슬프게 울었다. 그런 왕비에게 고행자 아라카파왕은 약속했다.

“내가 반드시 우데나가 반사국의 왕이 되게 해주겠소.”

그런 후 과거 나그네로 변신한 베타지바카왕이 가르쳐준, 악기를 연주하고 주문을 외워 코끼리를 부리는 재주를 우데나에게 가르쳤다. 왕비도 우데나에게 그가 반사국의 왕자임을 알려주며, 그 증거로 자신이 입었던 붉은 털옷과 자신이 끼고 있던 왕의 반지를 건네주었다. 또한 반사국 대신들의 이름도 알려주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데나 왕자는 자신을 길러준 아라카파왕과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주문을 외워 코끼리를 거느리고 반사국으로 들어갔다. 결국 자신이 왕자라는 여러 증거를 대신들에게 보여 승인을 받고,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우전왕(優塡王)이다.

| 왕비 수행력 감화, 부처님께 귀의

우전왕은 굉장한 호색한이었다. 그는 사마밧티라는 왕비가 있었지만 아름다운 미인을 좋아했다. 출세에 눈이 먼 신하들은 왕에게 아첨하고자 미녀를 구해 바쳤다. 우전왕은 미녀에게 빠져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새로운 궁전을 지어주고, 수많은 몸종을 딸려 주었다. 또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천여 명을 붙여줘 미녀들이 언제나 감미로운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우전왕은 이미 왕비가 있었지만 미녀에게 빠져 그녀를 새 왕비로 삼을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독화살로 왕비를 죽일 계획을 꾸몄다. 왕비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부처님을 섬기고, 여러 해에 걸쳐 수행해 수다원(須陁洹)과에 오른 상태였다.

어느 날 왕비가 산책을 나가자 우전왕은 독화살을 준비하고 산책로 근처에 숨어 있었다. 이윽고 왕비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우전왕은 독화살을 날렸다. 왕비는 독화살을 보고도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일심으로 염불을 하면서 인자한 마음으로 왕을 향해 꿇어앉아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왕비를 향해 날아가던 독화살은 마치 마술처럼 왕비의 몸을 세 바퀴 돌고나서 도리어 우전왕을 향해 날아와 그의 얼굴 앞에 떨어졌다. 우전왕은 가지고 있던 독화살을 모두 쏘았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왕비의 수행력에 깜짝 놀란 우전왕은 급히 화살을 내던지고, 왕비에게 다가가 자신의 방탕한 생활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며칠 후 우전왕은 왕비가 귀의한 부처님을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자 했다. 우전왕은 흰 코끼리가 끄는 금수레를 타고 궁을 나섰다. 부처님이 계신 곳에 도착한 우전왕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 후 엎드려 참회했다.

“제가 삼존(三尊)께 무거운 죄를 지었습니다. 미녀에게 현혹돼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처님께 귀의한 왕비를 독화살로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왕비는 도리어 무량한 자비심으로 저의 죄를 뉘우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부처님의 높고 높은 법력을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원하옵건대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제가 과거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전왕의 참회에 부처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장합니다, 왕이시여. 악을 깨닫고 허물을 뉘우치니, 이것은 현명한 사람의 행입니다. 나는 왕의 좋은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우전왕은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께 세 번 귀명(歸命)하고,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세 번 받으셨다. 이날 우전왕은 부처님께 계를 받았다.

부처님께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도솔천에 올라가 설법을 하신 후 지상에 내려오시는모습의 부조. 계단 위 가운데 부처님께서 서 있고, 좌우는 제석천과 범천이다. 계단 양옆이빔비사라왕과 우전왕의 일행으로 추측된다.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소장. 2~3세기, 편암620×80×500cm

| 부처님 못 만나 근심병 … 불상 조성

어느 날, 기원정사에 머무시던 부처님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도솔천으로 올라가 어머니 마야부인께 3개월 간 설법을 했다. 세상 사람들은 오랜 기간 부처님을 뵙지 못하자 제자인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간절히 뵙고 싶습니다.”

그러자 아난이 대답했다.

“저도 부처님께서 어디 계신지 모릅니다.”

계를 받은 후 수시로 부처님을 친견했던 우전왕도 아난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아난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우전왕은 늘 찾아뵙던 부처님을 두 달 동안이나 뵐 수 없게 되자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신하들이 우전왕에게 아픈 이유를 물었다.

“어떤 근심으로 아프십니까?”

“부처님을 뵙지 못한 근심으로 병이 들었다. 만일 부처님을 뵙지 못한다면 나는 곧 죽고 말 것이다.”

신하들은 왕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던 끝에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부처님 형상을 만들면, 우전왕이 불상을 예배하고, 공경하면서 근심병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상을 조성하자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우전왕은 나라 안의 뛰어난 장인들에게 명령해 전단(栴檀, 인도 향나무)으로 5척 높이의 불상을 만들게 했다. 우전왕은 완성된 불상에 부처님 대하듯 공양을 올렸고, 마침내 병이 치유됐다.

부처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얘기를 들은 우전왕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불상을 조성한 공덕에 대해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고 답하셨다. 이후 우전왕은 더욱 깊은 신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랐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에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슬퍼했다.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모습을 한 형상을 조성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불상 조성의 공덕을 묻는 우전왕과 부처님의 대화는 실제와는 다르게 후대에 미화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학계에서는 불상이 최초로 조성된 시기를 부처님 열반 후 500년[無佛像時代]이 지난 쿠샨왕조로 본다.

글 · 조용주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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