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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손 끝에서 피어나는 마음유종호 선생님, 오월입니다

조팝나무 하얀 꽃이 줄기를 이뤄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침을 먹고 마당에 나가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꿀 내음이 바람에 실려와 향기 그윽한 세상을 펼쳐주고 있습니다. 이젠 봄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남 다 심은 감자를 뒤늦게 심기 위해 서둘러 밭을 갈았던 것이 어제였습니다. 올해는 장인어른 상을 치르느라 며칠 더 늦어졌습니다. 그런들 저런들 조바심은 일지 않으니 이것도 병이라면 병인 듯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긴장을 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푹 퍼져 있습니다. 다만 글에 대해서만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하곤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찌 탈 없이 지내시는지요? 들려오는 소문엔 몸이 편치 않으시다는 얘기도 있어 마음이 좋지 않던 날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엔 네이버에 들어가 뉴스를 검색하던 중 선생님의 수필이 실려 있는 난을 발견하곤 여러 편을 한꺼번에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노년의 여생을 의미 있게 보내시는 모습에 미소 지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새롭고 낯선 것만을 찾는 지금의 문단이나 젊은이에게 오랜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혜안을 전해주시는 발걸음이 무엇보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을 직접 뵈었던 적이 단 한 번 밖에 없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습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한 번이었습니다.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상식 자리였습니다. 허연 머리가 빛나고 있었지요. 강건한 풍모에 흔들림이 없는 눈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한두 시간 뒤로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도 10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책을 보내드릴 때마다 선생님께선 몇 마디 격려의 말을 적어 보내주셨지요. 어느 해인가는 연하우편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써서 더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달라던, 몇 줄의 짧은 편지가 내겐 얼마나 큼 힘이 되어 주었는지는 선생님께서도 짐작하지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산골에 정착해서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는 생활은 뜻대로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사이의 관계를 사근사근 잘 풀어나가는 능력을 갖지 못했던 나로서는 당연히 치렀어야 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땐 암울한 나날이었습니다. 가난한 생활에 머리를 조아리는 능력도 가지지 못했으니 험난할 수밖에는 없는 생이었지요. 농사는 돈이 되지 않았고 원고청탁을 받아 발표한 글은 내 맘에도 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었지요. 그나마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함께 술을 마시는 낙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농사는 식구들 먹거리를 해결하는 선으로 축소하고 이웃과의 관계도 멀리한 채 글을 쓰는 일에만 전념하며 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산골에 박힌 지 10년 전후의 시기였습니다. 그때는 이미 원고청탁이 끊어지고 있었지요. 그나마 생활비가 되어주던 사보의 수필청탁이나 이런저런 산문청탁이 거의 끊어지고, 시도 원고료를 주는 곳에선 대부분 청탁이 오지 않았지요. 산골에 박혀 서울에서의 이런저런 행사나 사람과의 만남에 응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글 쓰는 일에서도 이제 그만 손을 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음자리를 차지하곤 했었습니다.

다행히 책을 내자고 하는 데는 규모가 작은 출판사일망정 끊어지지 않아서 시집과 산문집을 계속 발간할 수는 있었고 선생님께 보내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선생님의 편지를 받아보는 즐거움을 맛보았지요. 그리고 다시 힘을 내어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나가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 나이도 60에 다다랐습니다. 다른 무엇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시기도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요즘 들어 내 작업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선생님의 격려 덕분입니다.

곧 푸르름이 가득한 여름으로 접어들겠지요. 선생님, 푸르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이곳에 한 번 들르시면 어떨는지요. 건강이 허락하고 내가 사는 오두막에서 하룻밤 보내셔도 개의치 않으시다면, 시인이란 보잘 것 없는 이름 하나를 얹어주신 대가를 치루는 것이라 여기시고 찾아주시면 더한 기쁨이 없겠습니다.

부디 하루하루가 꽃들이 가득한 이 봄날 같으시기만을 빌면서 이만 아픈 인사를 드립니다.

유승도

시인. 1995년 <문예중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 <차가운 웃음> 등 다수와 산문집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 <수염 기르기> 등 다수를 출간했다. 현재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글 · 유승도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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