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 경판 <제반문>의 앞면(87장, 위)과 뒷면(88장).

<제반문(諸般文)> 1점…6ㆍ25전쟁 직후 반출
3월 26일부터 신흥사 유물전시관 1층에 전시

6ㆍ25전쟁 직후 미군에 의해 국외로 반출됐던 신흥사 소장 경판(<제반문(諸般文)> 87장~88장 양면 판각 목판) 1점(板)이 6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설악산 신흥사(주지 우송 스님)는 3월 18일 미국 시애틀에 능인사 주지 지상 스님 등을 보내 6ㆍ25전쟁 직후 경판을 반출한 당시 美 해병대 중위 리차드 B. 락웰(Richard B. Rockwell, 92세) 씨로부터 경판을 직접 돌려받았다.

이번에 돌아온 신흥사 경판은 1954년 10월 속초에 주둔하던 미 해병대 중위 락웰 씨가 부대원들과 수색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신흥사에 들러 경내를 살펴보다가 파괴된 전각 주변에서 경판 1점을 수습한 뒤, 같은 해 11월 미국으로 가지고 돌아갔다.

이후 락웰 씨는 신흥사에서 수습한 경판 1점을 자택에 보관해 왔다. 하지만 이 경판이 한국의 중요한 역사자료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 돌려주고자 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후 2018년 1월 락웰 씨는 한국에서 미 해병대 장교 재직(1953~1954) 시절 자신이 직접 촬영한 속초시 옛 사진자료(35㎜ 컬러슬라이드필름) 등 279점을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 의사를 밝히던 과정에서 경판의 소장 사실도 알려 이를 함께 돌려주고 싶다는 의사를 속초시립박물관을 통해 전했다.

이에 속초시립박물관은 2018년 3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에 미국인 소장 기록사진과 경판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등 조사 및 환수업무를 요청했다. 재단은 락웰 씨가 이메일로 보내온 경판 사진을 전문가에 의뢰해 분석하는 한편, 재단 소속 미국사무소 직원을 시애틀에 거주하는 락웰 씨에 보내 경판의 실물 확인과 국외 반출경위 등을 조사하고 신흥사에서 반출된 경판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

이어 2019년 2월 신흥사는 재단으로부터 “신흥사 경판 1점을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는 주한미군 출신 락웰 씨가 보관하고 있으며, 이를 신흥사에 돌려주고자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신흥사는 능인사 주지 지상 스님을 현지에 보내기로 하고, 2017년 문정왕후 어보 환수를 비롯 현재 미국 내 신흥사 불화 환수활동도 적극 나서고 있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장)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려, 3월 18일 시애틀 소재 락웰 씨 자택을 함께 찾았다.

락웰 씨 자택을 찾은 지상 스님과 안민석 의원은 신흥사 경판을 실견하고 경판의 보관 상태가 매우 양호함을 확인했다. 이에 지상 스님은 경판을 잘 보관한 뒤 이를 돌려주기로 결심한 락웰 씨에게 신흥사 주지 명의의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번에 돌아온 신흥사 소장 경판 1점은 ‘사찰에서 수행했던 일상의 천도의식과 상용의례를 기록한’ <제반문(諸般文)> 경판이다. 원래 신흥사에 전해오던 <제반문> 경판은 전체 88장으로 구성된 총 수량 44점 내외로 추정되나, 6ㆍ25전쟁 전후로 대다수가 산실돼 현재 신흥사에는 14점만 전하고 있다. 그중 이번에 반환된 경판은 <제반문>의 마지막 장에 해당하는 88장이 87장과 함께 목판의 양면에 새겨진 형태며, 경판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제반문> 경판은 17세기 조선시대 인쇄술을 보여주는 자료이자 당대 사찰의 경전 간행 사실과 당시 승려들의 생활상, 불교의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특히 87장과 88장에 각각 시주자의 이름이 ‘연옥(連玉)’ㆍ‘김우상양주(金祐尙兩主)’로 확인돼 목판 조성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도 추가로 파악할 수 있어 흥미롭다.

한편 돌아온 경판은 보존 상태를 점검한 뒤 3월 26일부터 설악산 국립공원 소공원 내에 위치한 신흥사 유물전시관 1층에 전시돼 일반에 공개된다.

문의. 유용식 신흥사 종무실장(033-636-7044)

경판을 소유하고 있던 리차드 락웰 씨(가운데)와 지상 스님, 안민석 의원.
락웰 씨가 1954년 10~11월경 촬영한 신흥사 명부전 내부 모습. 시왕상 뒤편의 불화들이 모두 뜯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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